윈난 - 사시구전(沙溪古鎮)
차마고도는 지금도 통행하는 마바리꾼들의 길로, 말의 고장인 서역에서 차의 고장인 중국의 서남쪽과 자연스럽게 이어진 도로로 국제 무역 통로이다. 당나라(618~917) 때 발전하여 명, 청 시대에 흥했던 사시 마을은 실제로는 2차 세계대전 시기에 가장 번성했다고 한다. 리장 고성의 서쪽에 위치하여 바이족을 중심으로 이족과 회족이 어울려 사는 사시구전은 차 교역로에 발달한 마을 중에서 아직까지 옛 모습을 가장 잘 간직하고 있는 마을이다.
1박 2일 호도협 트레킹을 하고 조금은 피곤한 몸으로, 여느 마바리꾼처럼, 길 옆에 객잔이 즐비한 사시 마을에 들어왔다.
마을의 중심에 있는, 지금의 광장쯤으로 발달한 사방가(四方街)는 사람들이 모이던 장터였다고 한다. 포석이 깔린 광장에는 마방들을 위해 공연을 하던 무대가 있는 아름다운 지붕을 가진 누각(古戱台)이 있고 마방들의 안녕을 기원하던 절집인 흥교사가 연극무대 맞은편에 위치한다.
지금도 장이 선다는 장터와 무대가 마을의 중심이라니, 흔히 생각했던 오지마을은 먼 옛날부터 사람이 세상의 중심이었던 곳이다.
500년 전에 만들어졌다는 돌로 만들어진 아치교인 옥진교가 마을 앞을 흐르는 흑혜강(黑惠江)에 걸려있다. 먼길을 떠나거나, 들어 오는 상인들은 소박하지만 아름답고 낭만적인 이 돌다리를 건넜을 것이다.
다리 건너편에는 흰색으로 칠해진 바이족이 사는 마을이 보인다.
바이족이 살았던, 흰색의 회벽은 반쯤 떨어진 흙벽돌이 그대로 드러난 집의 속살을 느낄 수 있는 골목길을 두어 시간 걷다 보면, 왔던 곳에 다시 도달할 정도로 아담하다. 나무와 흙만으로 지어진 집들은 시간을 거슬러 올라오니 더욱 빛이난다. 객잔과 점포에 걸린 비엔나 소시지 같은 붉은 불빛 , 성문과 성 밖 풍경 등, 마을은 그 옛날에도 다르지 않았을 물길과 함께 나이를 먹었다.
그저 주인과 지나는 길손만 바뀌었을 뿐.
활기가 넘치는 사시 장날
옛 명성은 지금도 여전한지, 마을 외곽까지 상인들과 장을 찾는 사람들로, 없는 것이 없을 정도로 규모가 큰 것이 교통이 혼잡할 정도이다. 여기저기서, 바구니를 업고 장을 보러 온 손님과 손님이, 손님과 상인이, 서로 아침인사를 건네는 풍경이 심심찮게 눈에 들어오는데, 아! 내가 몰랐던 신선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