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도 마을도 산도 흐른다

#05 – 티베트 이야기, 13대 달라이 라마 그리고 쌍예사

by 그루


린즈에서 얄룽짱보강을 따라 남서쪽으로 방향을 틀면 티베트인 조상들이 문명을 일궈나갔던 고대문화를 엿볼 수 있는 지역이다.

린즈나 보미처럼 삼나무와 소나무로 울창한 삼림은 없지만 米林县을 지나 랑센朗县까지 가는 길도 역시나 아름답다. 복숭아꽃등불 밝힌 길을 따라 강도 마을도 산도 흐른다. 나이를 모르는 고목나무가 된 복숭아나무들처럼 사람도 천수를 누리고 살 수 있는 환경이다. 팔당에서 두물머리를 지나 양평 쪽으로 북한강을 끼고 달리는 옛길과 비슷한 풍경이 스쳐 지나간다.

시안에서 라싸로 들어와 얄룽짱보강 유역을 돌아다녔던 그동안의 일정이다. 숫자는 티베트에서의 숙박 순서이다.


어디에서나 쉽게 볼 수 있는 티베트의 봄
얄룽짱보강을 따라


13대 달라이 라마 툽텐 갸초


숙박을 할 예정인 쟈차加査로 가는 길, 다 왔나 했더니 가이드 몐빠가 가는 길에 유적지가 있는데 보겠냐고 묻는다. 당연한 것을 왜 묻는지, 지상에서 가장 높은 곳으로 꽃놀이를 왔을 뿐인데, 시간이 지날수록 나는 이 뼈대 있는 가문의 삶을 기웃거리게 되었다.

잘 닦여진 주차장에는 차가 한 대도 없다. 그도 그럴 것이 중국인이 티베트인들이 존경하는 티베트 개혁군주의 출생지를 볼 일은 없을 것이며 4월 초, 티베트에 외국인은 별로 없으니 당연하다. 입구에 있는 표지 석에는 13대 달라이 라마 툽뗀 갸초(1876~1933)의 이름이 중국어로 새겨져 있다. 몐빠는 아마도 13대 달라이 라마를 우리에게 알려주고 싶었던 거다. (다른 자료에 의하면 13대 달라이 라마의 출생지는 라싸 동남쪽 닥뽀達布라고 나와있다)

툽뗀 갸초는 티베트의 역사에서 가장 격동기였던 시절을 지혜롭게 이끈 개혁 군주로 청나라 군대를 내쫓고 1913년 2월에 독립선언을 했다. 티베트는 이때부터 중국 인민군이 침략할 때까지 약 40여 년 가까이 사실상 독립국을 유지하였다.

러시아와 영국, 중국의 이해다툼 속에 놓였던 소용돌이치던 시기에 외교 및 안보를 강화하고, 법률은 물론 조세법을 제정하고 경찰을 양성하는 등 티베트를 근대적으로 개혁해 나갔다. 부패의 요인들을 제거하고 열린 정부를 지향했으며 전기와 전화, 자동차를 처음으로 들여왔다.

따뜻한 담벼락 옆에서 마작 비슷한 놀이에 몰두하던 안내인이 표지 석 앞의 우리를 보고 부스스 일어서더니 돌연 열심이다. 역시나 안내하는 어깨에는 힘이 들어있고 설명하는 눈빛은 진지하다.


아무도 찾지 않는 티베트의 정신적 지주인 13대 달라이 라마의 출생지 근무자와 마을 사람들
중국어로 달라이 라마의 이름이 새겨져 있어 놀라웠다.
소박한 달라이 라마의 출생지, 옥상에서 바라보이는 앞산이 인상적이다.


영화 ‘티베트에서의 7년’에서 하인리히 하러와 친구가 티베트 국경을 넘어 첫 마을에 당도했을 때 마을의 행정관이 벽에 걸린 13대 달라이 라마의 예언서를 읽어준다.(당시 14대 달라이 라마는 칭하이성에서 라싸의 포탈라 궁에 온 지 몇 년 밖에 안 된 어린아이였다)

“우리 13대 달라이 라마의 예언서요, 언젠가 우리 티베트는 외국인의 침략을 받게 될지니 미리 예방하지 않았다간 우리 모든 승려와 사원들은 외세의 지배 아래 놓일 것이며 달라이 라마까지 외국을 떠돌며 유랑생활을 하게 될 것이다. 당신들을 반기지 않는 건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오.”


1,900년에서 1,950년까지 티베트에서 일어난 사건만 알아도 툽뗀 갸초의 예언서에는 티베트 민중들을 위한 가련한 마음이 담겨있는지 짐작이 간다.


달라이 라마의 말씀이 곧 법이던 시절에 그의 예언서는 티베트인들의 행동지침이 되었다. 중국의 치명적인 발톱을 막아주지 못한 그는 티베트인들의 앞날이 걱정이 되어 어찌 눈을 감았을까.


티베트 최초의 불교사원 쌍예Sangye사


얄룽짱보강은 좁아졌다 넓어졌다를 반복하지만 유난히 넓은 강폭이 나타난다. 티베트인의 고대 수도인 쩨탕澤當이 있던 곳으로 넓게는 산난 지역이다. 최초의 궁인 융부라캉 외에도 최초의 티베트 불교사원인 쌍(쌈)예사가 위치한다.


쌍예사 입구


779년, 티베트 첫 불교사원인 쌍예사가 완공되기까지 뵌교와의 갈등으로 우여곡절이 많았다고 한다.

산난 지역은 불교가 도입되기 전, 뵌교의 세력이 강했던 곳이다. 사실상 종교와 밀착된 토착세력이 득세하던 지역으로, 뵌교는 세상 만물에 영혼이 있다고 믿으며 천신과 미신을 숭배하는 토착종교이다. 송첸감포는 수도를 이곳에서 라싸로 천도한다.


티베트 역사를 보면 토번 제국을 통일한 송첸감포 재임 시 불교가 도입된 후, 불교와 뵌교와의 싸움으로 정권 장악을 위해 틈만 생기면 서로를 와해시키곤 했다. 이어지는 그들의 싸움은 나라를 분열시켰으며 자신들의 힘을 약화시켰다. 하지만 이런 와중에도 불교는 뵌교의 영향을 받아 깊고 심오하며 독특한 티베트 불교로 발전하였으며 뵌교 또한 불교의 영향으로 뵌교를 체계적으로 발전시켜 나갔다.


티베트 고원을 다니다 보면 가장 쉽게 마주치는 것이 다르쵸이다. 이것은 불교 경전이 인쇄된 오색 천을 매달아 놓은 것이다. 이것은 뵌교의 유산으로 바람에 의해 경전이 사람들에게 미치기를 기원하는 의미인데, 바람은 곧 뵌교이며 경전은 불교이니 문화적 융합이 멋지게 일어난 증표이다. 사원은 물론 높은 고개나 마을의 입구 등에 알록달록 매달아 놓으며 돌무더기에 장식하기도 한다. 넓고 황량하거나 거친 티베트 고원에서 마치 살아있는 생명체처럼 지나가는 길손들을 맞이준다.

지금은 많이 사라졌지만 영화나 사극에서 곧잘 나오는 우리의 서낭당과 같은 느낌을 받기도 한다.


사원의 입구에는 엄청 높은 룽다風馬가 시선을 끈다. 긴 천들이 바람에 날릴 때 말의 갈기처럼 보여서 생긴 이름인가, 이름이 낭만적이다. 룽다란 우리나라의 솟대와 비슷한 개념으로 주로 마을 입구나 중요한 곳에 세운다. 높은 장대에 경전이 쓰여 있는 긴 오색 천을 매단 것으로 룽다 역시 다르쵸와 마찬가지로 뵌교에서 왔다. 티베트 동부의 구채구에는 마을 입구에서 엄청나게 많은 룽다를 볼 수 있다.

쌍예사 입구의 룽다
쌍예사 입구


이곳에 오니 가이드 몐빠는 평소와는 달리 너무나 진지해져서 나를 붙잡고 대법당 3층까지 도는 동안 8세기 후반의 유물부터 최근 것 까지, 그 많은 불상 하나하나를 전부 설명해준다. 3층까지 보고 나니 보물창고라는 별관 박물관까지 데리고 가서 설명을 하니, 웬만하면 빨리 지나치는, 빠릿빠릿한 나는 힘들다. 이것은 불심으로 다가가는 사람과, 지식으로 다가가는 사람의 차이다. 아무리 특별해도 나는 늘 주마간산인걸. 몐빠가 나를 잘못 봤다.


티쏭데짼(742-797)왕이 불교를 국교로 공표한 후 세운 티베트 최초 사원으로 전체적인 모양은 원형으로 만다라(우주)를 상징한다. 설립에 참여한 인도 승려인 산타락시타와 파드마삼바바의 이야기가 서려있는지라 코끼리 같은 인도풍의 장식물도 눈에 들어온다. 대법당의 형식은 1층은 티베트식, 2층은 중국식으로 지어졌으며 3층은 통풍이 잘되는 인도식 불교사원의 양식으로, 향과 어둠으로 가득한 1층과 2층보다 훨씬 좋다. 불상의 종류나 표현에서 티베트 불교의 종파인 밀종密宗이 강한 닝마빠 티베트 불교의 흔적들이 자주 보인다.




돌아가는 길, 차창의 강물과 더없이 투명한 하늘을 보니 다소 혼란스러웠던 마음이 좀 가벼워진다. 수많은 지류가 반짝이는, 넓은 하곡이 드러난 봄날의 얄룽짱보강을 지나 라싸 강으로 들어서니 내 집에 거의 온 것 같은 느낌이다. 밤이 와도 이 도시를 좀처럼 떠나길 싫어하는 태양이 가득한, 빛의 도시 라싸에 돌아왔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