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미에서 린즈로 돌아간다. 돌아가는 길은 그야말로 아는 길을 되짚어가는 길, 오전 내내 구샹 근처 언덕과 강변 그리고 마을들을 돌아보며 시간을 보냈다. 많은 이들이 살아왔던 아름다운 고향, 유구한 강물을 보며 마을은 얼마나 오랜 세월을 이곳에서 보냈을까, 천국이려니 그냥 살지요.
배웅을 나온 것처럼, 야크를 닮은 덩치가 큰 검은 소 한 마리, 뒤 돌아보며 한참을 쳐다봐도 멀뚱멀뚱 눈만 껌벅거리며 동상처럼 움직이지 않는다. 너는 누구냐.
배웅하듯 서 있는 검은 소 한 마리
꽃길이려니, 그저 걷지요
기다란 나뭇가지 한 개, 가로로 걸어놓은 마을 입구, 들어오지 말라고 하는 신호이니 그냥 돌아가거나 지나칠 수도 있지만, 괜히 나무 빗장 들치고 들어가고 싶어 진다.
강변에는 아름다운 마을들이 복숭아꽃 나무들 사이로 보석처럼 박혀 있다. 병풍 같은 설산만 없다면 마치 평지처럼 보이는 넓은 강폭에는 빙하에서 내려온 물길들이 이리저리 그들만의 곡선을 그리며 자유롭게 강물을 만들어간다.
마을에서 바라본 넓은 폭을 가진 강의 상류, 빙하에서 내려온 물길들은 자유롭게 자신들의 길을 만들어 강물로 흘러 들어간다.
보미에서 한 시간 거리에 있는 구샹에는 여기저기 관광객들을 위한 공사가 한창이다. 지도에는 구샹 호수 뒤편으로 티베트 왕 네치짼뽀가 태어난 집도, 강 건너에는 왕궁 유지도 남아있고 가까이에는 빙하가 지천이다. 작은 마을이지만 볼거리가 많은 지역이다.
얄룽의 중심지 산난 지구
고고학자들은 여러 차례의 발굴과 연구를 통해 티베트 니양하와 얄룽짱보강이 만나는 린즈 지역에서 인류가 아주 오래전부터 거주했으며 얄룽짱보강을 중심으로 한 티베트 얄룽 지역에서 티베트 주류 민족이 시작되었다고 보고 있다. 티베트 선조들은 해발고도가 5,000m 이상, 공기가 희박해서 사람이 살 수 없는 무인지경이 펼쳐진 황량한 고원이 아니라, 평균 해발고도는 약 3,000m, 풍부한 물과 기후로 이루어진 지구 상에서 식물의 종류가 제일 많은 살기 좋은 터에서 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시간이 흐르면서 티베트 고원 서북쪽에 살던 강姜족이 점차 남쪽으로 내려오면서 티베트인과 하나가 되어갔다.
아주 오래전 창세 시대에 오늘날 쩨탕澤當의 동굴에 살던 암컷 원숭이 한 마리가 천신을 만났다. 둘은 오늘날 얄룽 지역에서 아이들을 아주 많이 낳았다. 그들의 자손들이 열여덟 개의 씨족이 되었고 이것이 토번이 되었다고 한다.
이들의 신화에서는 원숭이와 천신이 등장한다. 암컷 원숭이의 존재는 진화론을 떠올리게 하는 대목이며, 아버지 천신은 적어도 티베트인들 본인들이 하늘의 자손임을 인식하고 있음을 말해준다.
네치짼뽀와 융부라캉
토번의 제 1대 짼뽀(왕)는 네치(또는 냐티)짼뽀聂赤赞普이며 기원전 4세기 중기 사람으로 그의 고향은 이곳 구샹故鄕이다. 그는 산난 지역에서 왕으로 추대되었으며 지금의 산난 지구 나이둥현에는 그의 왕궁이 남아있다. 알려진 바에 의하면 네치짼뽀는 정작 고향에서는 환영을 받지 못했다고 한다.
구샹호, 네치짼보의 고향집과 거리가 꽤 가깝다.
이틀 후, 네치짼뽀의 왕궁으로 알려진 융부라캉雍布拉康을 보기 위해 산난지역으로 들어갔다. 이곳은 티베트의 초기 문명이 남아있는 얄룽 지역으로 융부라캉을 비롯해, 가까운 곳에 최초의 사원인 쌍예사桑耶寺 등이 있다. 세차게 흐르던 얄룽짱보강은 산난 지역을 들어오면서 물줄기가 수많은 가닥으로 나뉘며 하천의 폭이 넓어지기 시작한다. 티베트에서 보기 드문 평야에 들어앉은 산난 지구 나이둥현 쩨탕진, 라싸보다 더 시간이 지나간 오래된 도시에 왔다. 건조한 공기 탓일까, 지나치게 무심해 보이는 사람들, 청소하는 아주머니가 쓸고 지나간 거리에 이는 먼지조차 무거워 보인다.
티베트 최초의 왕궁인 융부라캉은 산난 지구 나이둥현에 위치한다. 궁은 암사슴을 닮았다는 자시츠르산扎西次日山 꼭대기에 작은 망루처럼 서있다. 오색의 다르촉은 올라가는 좁은 길을 따라 달리는 말의 갈기처럼 펄럭인다.
당시 얄룽 부족의 왕(짼뽀)이 거주했다는 왕궁은 소박하다. 한 눈에도 언덕 꼭대기에 세워진 것과, 위로 올라갈수록 경사가 있는 망루 형식의 건축양식은 송첸감포가 세우고, 달라이 라마 5세가 재건, 증축한 라싸에 있는 포탈라궁과도 같으며 일반적인 티베트 불교 사원의 모습과도 많이 닮아있는 것이 융부라캉은 티베트 건축의 원본인 것이다.
오색다르쵸를 따라 지그재그로 올라간다.
초기 티베트인들의 역사에서 척박한 산지가 많았던 지역의 사람들보다 평야를 많이 확보하고 있던 얄룽 인들이 세력을 키웠던 것을 보면 강을 끼고 있는 넓은 농경지와 관련이 있었을 것이다. 주변의 평지에 우뚝 솟아있는 융부라캉은 어디에서도 보인다.
이곳에서 점심을 먹었다. 순례객들일까, 바빠 보이는 얼굴들이 중국요리점 안에 앉아있다. 티베트에서 우리 네 명, 아니 기사와 가이드 포함 여섯 명은 여전히 중국요리를 먹고 다녔다. 음식점은 거의 한족이 운영하는 것처럼 보였다. 현지 음식에 관심이 많은 나는 인도를 여행할 때 먹어봤던 우리의 수제비, 칼국수와 비슷한 뗀뚝이나 뚝바 등 티베트 음식을 먹고 싶었지만 한족 기사와 티베트인 가이드와 같이 밥을 먹어야 했으므로 선택권이 없었다. 두 사람이 잘 먹어야 우리도 편해지니 말이다.
보미를 가기 위해 강을 건너니 봄이면 티베트 고원의 산야를 물들이는 우아한 두견화와 귀여운 꽃들이 이제야 눈에 들어온다. 구간 속도 30킬로미터를 지키기 위해 가끔 쉬어가야 하는 이들에게 덤으로 주는 선물이다. 관광단지 조성을 서두르고 있는 루랑을 지나고 난자바와봉이 보이는 써지라산 고개를 돌아 니양하가 흐르는 린즈로 다시 돌아왔다.
쉬어가는 길에 만난 두견화, 이름이 두견화이지만 한국의 진달래와는 다르다.
보미로 돌아 오는 길에 만난 꽃, 쓰촨성 서부, 공가산에서도 4월이 되면 솟아오르듯 피어난다. 혹자는 앵초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