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이드 몐빠가 린즈林芝시 공안 업무 시간에 맞춰 통행 허가를 받으러 경찰서에 들어간 시간이 오전 9시 30분, 시간이 느리게 흐르는 곳이어서인지 업무처리시간도 무척 길게 느껴진다. 10시 가까이 되어서야 나온다.
티베트 여행 현지 가이드가 하는 일 중에 가장 중요한 일은 지역이 바뀔 때마다 통행 허가를 받는 일이다. 라싸에서 발행한 티베트 여행 허가서만 가지고 다니면 될 줄 알았는데, 마을 경계에서 하루에 한두 번, 몐빠는 서류봉투를 들고 폴리스를 들락날락했다. 그는 차 안으로 들어오면서 내 눈과 마주치자, 이곳은 군대 주둔지역이란 말을 흘린다.
평화롭고 화사한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는 곳이지만 이곳은 중국과 인도의 국경(LAC)분쟁지역이기도 하다. 린즈 남쪽의 아루나찰 프라데시는 판공호수 지역, 시킴과 함께 중국과 인도의 심각한 분쟁지역이다. 현재도 분쟁지역에는 중국은 중국대로, 인도는 인도대로 군인들의 숫자를 수 만명 증원시키고 있다.
그들의 탐욕, 맥마흔 라인 McMahon Line
맥마흔 라인은 1913년과 1914년 인도 북부의 Simla 회의에서 영국, 중국, 티베트 3자가 참석해 인도와 티베트 사이에 맺어진 국경으로 실제로는 당시 인도를 식민 지배하고 있던 영국 대표 맥마흔 McMahon에 의해서 결정된 국경선이다. 중국 학자 高洪雷가 쓴 <절반의 중국사> 545쪽에 의하면 “맥마흔 본인이 자기 멋대로 중국과 인도의 국경을 히말라야 산맥 남쪽 산기슭에서 산등성이로 옮기는 바람에 국경이 북쪽으로 무려 100킬로미터가 올라갔다. 이렇게 해 먼위, 뤄위, 샤차위, 등 세 개 지역 9만 제곱킬로미터 중국 영토가 인도로 들어갔다.”라고 한다. 중국측의 주장이지만 일리가 있는 것이 티베트족이 인도의 아루나찰 프라데시에 지금도 많이 살고 있다.
그러나 맥마흔 라인 협정 이후 1962년 인도와 중국의 국경분쟁이 생기기 전까지는 중국은 맥마흔 라인을 국경선으로 지켜왔다고 한다. 현재, 중국의 행보로 보면 남의 것도 삼킬 판인데, 하물며 자신의 옛 땅이라고 하니, 뭔들 못할까.
이처럼 유럽 제국주의자들이 그들의 탐욕 때문에 그려놓은 세계지도의 국경선을 보면 가히 가관이다. 게다가 이것으로 인해 끊임없이 이어지는 2차, 3차 분쟁에서조차도 나몰라 뒷짐 지고 지금도 주판알을 굴리고 있다.
라싸에서 린즈까지 도로가 정비되고, 머지않아 열차까지 운행될 예정인 것은 분명 좋은 소식이지만(2021년 6월 25일, 티베트 라싸와 린즈를 연결하는 철도 개통식이전해졌다), 인도와의 국경분쟁에서 우위를 점해야 하며 자신들의 체재를 안정시키기 위한 기반시설인 것이다. 다른 것보다도 고산증에 대한 위험이 적은 린즈의 환경은 군대 주둔지로서 더할 나위 없이 좋다. 쩝!
라싸에서 보미까지의 일정
몐빠를 기다리면서 주변 건물의 주소를 보니,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 바이구巴宜区라는 지명이 붙어있다. 많이 들어봤던 바이八一가 아닌 바이巴宜인 것이다. 옆에 있는 가이드 몐빠에게 물어보니 린즈 시 바이구巴宜区가 맞다고 한다.
2015년부터 행정 개편한 주소를 말하자면 예전의 린즈 지구(구글 지도에는 린즈 지구가 신주소와 함께 병행 표기되어있다)가 바뀐 린즈시林芝市에는 바이구巴宜区와 보미波密현를 포함한 6개의 현으로 구분되어있다. 관공서와 호텔 등이 집중되어 있는 다운타운은 린즈 시 바이구巴宜区 바이진八一镇이며 린즈 시와 같은 이름인 린즈 시 바이구 린즈진林芝镇은 시내에서 약간 떨어진 318번 국도변에 위치하고 있었다. 지도를 보면서 확인하고 나니 얽혔던 실타래가 한꺼번에 풀리는 것 같다. 열흘 가까이 돌아다녀야 할 곳이 라싸와, 가는 길에 들리는 산난지구를 제외하면 대부분 린즈 시 구역이다.
린즈 시 바이구 바이진 중심가를 빠져나오나 싶더니 그림 같은 풍경이 동화 속처럼 펼쳐진다. 왼쪽으로 世界柏树王园林 간판이 보인다. 수령이 무려 3200년이 넘는다는 나무가 있다는 곳으로 신기할 따름이다.
인가가 있는 마을을 빠져나오자 해발고도가 점점 높아지면서 서늘한 기운이 스며든다. 써지라산色季拉山 고개이다. 알록달록 천에 적혀있는 불경이 바람에 날아가 세상에 전해지도록, 산을 덮은 다르쵸를 보니 반갑다. 어제는 미라산커우에서 보고, 오늘은 써지라산 고개에서 만난다. 동부 티베트(쓰촨)에서는 흔했던 다르쵸가 시짱 티베트에서는 생각보다 귀하다.
써지라산 고개에서 오랫만에 만난 다르쵸
이곳은 난자바와봉南迦巴瓦(7,782m)을 감상하기에 가장 좋은 뷰포인트다. 하지만 지형 상 수시로 변하는 기후조건으로 인해 난자바와봉南迦巴瓦봉의 모습을 보기란 쉽지 않다고 한다. 하얀 눈을 이고 있는 병풍처럼 펼쳐진 산맥이 보이지만 생각보다 멀다. 난자바와봉은 지진과 눈사태가 많고 기후변화가 심한 곳으로, 등반에 여러 번 실패했던 미답의 봉이었다가 1992년 10월30일 중일연합등산대가 처음 올랐다고 한다.
난자바와봉을 감상할 수 있는 관경대애서/ 난자바와봉이 있는 산 줄기 뒤로 얄룽짱보대협곡이 위치한다.
써지라산色季拉山을 지나면 짙은 녹색의 향연이 펼쳐진다. 삼나무와 소나무들이 있는 숲은 빽빽하다 못해 검다. 습기가 많은 곳에서 서식하는 한약재로 사용하기도 한다는 이끼류는 높은 나뭇가지에서 커튼처럼 내려와 있다. 겨울철 식량공급이 어려울 때 이곳에 서식하는 원숭이들의 먹을거리라고 한다.
린즈 지역은 풍부한 식물군락이 압축되어 생태계가 형성된 곳으로 세계 제일의 식물박물관으로 불린다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동서로 뻗어있는 녠첸탕글라念靑唐古拉 산맥과 히말라야 산맥이 린즈 지역 동쪽에서 헝뚜안橫斷산맥으로 인해 수직으로 막히면서 생성된 곳이 얄룽짱보대협곡이다. 린즈 지역은 ‘뒤집어진 ㄷ자’ 모양으로, 3개의 산맥 품에 안긴 황홀한 유토피아다.
게다가 평균 해발고도 약 3,000m인 린즈 지역은 티베트의 다른 지역보다 고도가 상대적으로 낮아 사람이 살기에 적합하다. 설산과 빙하와 원시림으로 덮인 녹음이 어우러진 풍광은 아름답기가 그지없다. 빙하가 녹은 수많은 지류들은 사시사철 수많은 식생들을 가능케 하며 대부분 얄룽짱보강으로 합쳐진다. 티베트 수목의 80퍼센트가 이곳에 있어 예전에는 라싸에서 집을 지으려면 린즈의 나무가 라싸로 갔지만, 지금은 자연보호구역인 이 지역에서 집을 지으려면 오히려 라싸 지역에서 나무를 가져와야 한다고 한다.
곧게 뻗은 나무들 뒤로 마을이 숨어있다.
루랑린하이魯朗林海라는 낭만적인 이름이 무척 궁금했었다. 써지라 산을 보고 통마이쪽으로 가다 보면 나타나는 풍경이 루랑린하이魯朗林海다. 바라만 보면서 그냥 지나치기에는 오래전 짝사랑하던 연인을 길에서 우연히 마주친 기분이라고 해야 할까, 안부라도 한마디 건네고 가야 할 것처럼 아쉽다.
짙은 숲으로 가려졌던 풍경이 영화 속 장면처럼 나타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한다. 연둣빛이 섞인 녹색의 능선에 얼기설기 엮은 나무 울타리가 초원을 감싸고, 소박한 너와집들과 점점이 박힌 침엽수림들, 어느 집, 밥 짓는 연기는 아지랑이처럼 설산으로 올라가고, 울타리 안으로 고개를 기웃 하더니, 삐그덕 사립문을 밀치고 들어가는 소들과 송아지들, 그제야 멀리서 바쁜 듯 달려오는 돼지 한 무리, 부드럽게 쏟아지는 햇살로 부서지듯, 안개가 휘감을 것 같은 꿈속의 고향은 그림처럼 지나간다.
동글동글한 모양의 귀엽게 생긴 복숭아나무 군락, 나무들은 가까이 가서 보면 나이가 많다.
용(Yiong) 강과 파룽泊龍강이 만나는 곳에 최근에 세워진 듯한 통마이대교通麥大橋가 있다. 현대적인 교각이 이곳의 풍경 안에서 어설프고 낯설다. 통마이를 지나면서 파룽泊龍藏布강이 흐르는 318번 국도변은 온통 복숭아꽃 마을이다. 대부분의 복숭아나무는 가까이 보니 오래전부터 대대손손 이 땅에 터 잡고 살았다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수령이 꽤 많아 보인다. 설산과 어우러진 복숭아꽃이 있는 마을길을 따라 천천히 걸어도 참 좋겠다.
베이징여유국(관광국)에서 린즈 여행을 적극적으로 알리는 것과 동시에 라싸에서도 2월부터 4월 30일까지 대대적인 할인 행사로 화답했다. 이 기간에 티베트를 여행하는 사람들은 입장권이 무료라고 하니 입장료가 비싼 중국에서 대단한 이벤트다. 3성급 이상 호텔도 50퍼센트 할인에 항공기와 열차 등 교통요금까지 낮춘다고 하니 이 기간에 들어오지 못하는 외국인에게는 비지떡이다. 하지만 우리도 알게 모르게 할인된 가격을 체감하지 못하고 돌아다녔을지도 모르며, 마지막 날 라싸에서 입장권을 구하기 어렵다는 포탈라궁에 무료로 들어간 것은 그나마 즐거운 수확이다.
구샹 근처, 보미현까지 이어진 아름다운 길
보미波密현 중심지에 가기까지 이어져 있는 복숭아 꽃길을 걷다가 차를 타고 가기를 여러 번, 가다 보니 대대적인 홍보 때문인지 한 마을에는 임시 주차장까지 있고, 여기저기 카메라를 든 중국인 관광객들이 몰려다닌다. 이 마을은 가축들에게 피해를 막기 위해 쳐 놓은 나무 울타리 앞에서, 복숭아꽃이 활짝 핀 청보리가 심어있는 자신들의 텃밭에 돈을 받고 들여보내고 있었다.
대기 중에 가득 찬 복숭아꽃 향기 때문인지 정신 줄을 놓고 가다 보니 구샹故鄕이다, 티베트 왕의 고향이라는 마을에는 여기저기 공사가 한창이다.
피곤한 줄 모르고 다녔지만 시계를 보는 순간, 나른한 피곤함이 밀려온다. 중천에 해가 있어도 이곳은 밤 시간이다. 갑자기 나른해지는 몸을 기대고 파룽짱보강을 따라 한 시간도 채 되지 않은 곳 보미波密로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