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5일, 라싸 공항에서 차로 한 시간 여, 호텔에 도착하자마자 점심은커녕 그냥 뻗어버렸다. 앞이마를 깨뜨리고 싶을 정도로 두통이 엄습한다. 흐릿한 내 동공에 객실에 비치한 길쭉한 산소통 2개가 들어오지만 그것을 내가 사용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한족처럼 보이는, 체격이 좋은 호텔 주인이 보기에도 내가 힘들어 보였는지 방으로 산소통과 휴대용 수액 그리고 티베트에 주둔하는 군인들이 먹는다는 홍경천을 갖다 준다.
고도가 높은 여러 곳을 가봤지만, 한 번도 어려움을 겪은 적이 없었다. 게다가 1년 전, 라싸보다 해발고도가 더 높은 티베트 동쪽인 쓰촨 서부를 한 달간 여행했을 때도 별 증상을 느끼지 못했었다. 고산증에 대한 걱정스러운 마음에 긴장감이 더해 시안에서 라싸로 오는 기내에서, 벌컥벌컥 물처럼 마신, 아침으로 먹은 멀건 죽에 심하게 체했던 것 같다. 감기에 걸리거나 몸이 약한 상태로 고도가 높은 곳에 가는 것은 위험하다는 소리를 많이 들었는데, 체기로 몸이 무력해지니 고산증이 내 몸에 쉽게 들어앉은 것이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라싸에 들어온 환영식을 끝내기라도 하는 것처럼 끈적끈적하게 달라붙어있던 두통이 조금씩 사라지면서 멀리 창밖으로 포탈라궁의 야경이 들어온다.
라싸에는 칭짱 열차를 타고 갈까?, 비행기를 타고 갈까?
칭짱열차 4인실, 항공기값과 별 차이가 없지만 다른 곳에서 만날 수 없는 창밖 풍경은 시간을 지쳐 지나간다. 시설도 생각보다 안락한 편이다.
칭짱열차에서, 철새들
열차에서 누리는 대자연의 파노라마
많은 사람들은 라싸로 들어갈 때 항공기보다 열차를 선호한다. 칭짱열차靑藏列車를 이용하면 30시간 이상 시간 차이를 두고 서서히 고도를 높여가기 때문에, 짧은 시간에 고도가 높아지는 비행기보다는 1박 2일 기차를 타고 가는 것이 조금 더 안전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돌아올 때 칭짱열차를 타기 전까지는 나도 역시 그랬다. 그래서 그런지 시안에서는 라싸행 칭짱열차표를 구하기가 어렵다고 하나보다. 반대로 라싸에서 시안행 칭짱열차표는 구하기가 어렵지 않았다.(라싸의 조캉사원 부근 우체국이나 기차역에서 구할 수 있다) 결론을 말하면 도긴개긴이다.
지구 상에 유난히 우뚝 솟아있는 티베트 고원(칭짱 고원靑藏高原)은 얼마나 넓은지 가늠하기가 힘들다. 인더스강, 브라마푸트라강, 장강, 황하, 메콩강, 살윈강 등 수많은 강의 발원지이기도 한 고원의 경계는 동쪽으로는 쓰촨 성 서쪽, 서쪽으로는 중앙아시아, 북쪽은 쿤룬산맥, 남쪽은 히말라야 산맥이다.
칭짱열차의 전 구간의 평균 해발 고도는 약 4500m로 2,200m인 시닝 역을 출발, 거얼무 역부터는 해발고도가 쑤욱~ 올라가 줄곧 4,000m 이상 5,000m의 고원지대를 지나 라싸까지 내달린다. 그러나 기차에 있는 승객들은 고산증세를 느끼는 사람이 없다. 항공기에 있는 시스템인 여압 장치가 칭짱 열차에도 있기 때문이다.
여압 장치는 항공기가 고도 1만 피트(약 3,000m) 이상 운항할 때 기내의 압력을 조절하는 설비이다. 항공기의 여압 장치는 우리 몸에 산소가 모자라지 않도록 조종실과 객실 그리고 화물칸의 기압을 일정하게 유지하도록 만든다. 그러므로 4,000m 이상 5,000m 이상 고원을 달리는 칭짱열차에 여압장치가 있는 것은 당연하다. 여압장치뿐이겠는가, 열차에는 사고를 대비하여 모든 승객에게 산소 튜브가 무료로 제공된다고도 한다.
평균 고도 1만 6000피트(약 4877m)인 티베트 고원을 통과하는 항공기에도 여압장치 고장에 대비해 22분 이상 승객에게 제공할 수 있는 산소를 보유할 수 있는 항공기종만 운항을 할 수 있다고 하니 칭짱열차야말로 하늘을 달리는 기차임에 분명하다.
시안에서부터 2864Km의 열차를 1박 2일 타고 왔던 승객들이 여압장치가 설치된 열차에서 라싸역에 내리면(항공기보다 긴 시간으로 인해 긴장감은 덜하지만), 산소가 희박한 고원에 바로 노출되는 것은 항공기를 타고 오든지, 칭짱 열차를 타고 오든지 마찬가지란 생각이 든다. 하지만 다음에 티베트에 간다면 항공기보다는 칭짱열차를 타고 갈 것이다.
10월에 만난 칭짱열차에서 바라본 탕구라산맥 풍경
10월, 커커시리 부근, 왼쪽 아래 , 점으로 보이는 야생당나귀 두 마리가 지나간다.
10월 티베트 서부, 무인지대와 가까운 곳에서 찍은 야생당나귀
4월 5일 시안에서 출발한 라싸행 비행기는 해발고도 약 3,000m인 간쑤 성甘肃省 간난티베트족자치주 샤허夏河공항에서 많은 티베트인(칭하이성, 간쑤 성 일부와 쓰촨 성 서부는 티베트 땅이었다)들을 내려놓고, 빈자리에 다른 이들을 태운다. 비행기에는 외국인은커녕 한족으로 보이는 중국인 관광객도 거의 보이지 않고 한국인과 흡사한 듯 다른 모습의 전통의상을 차려입은 장족들로 빈자리 하나 없이 빼곡하다. 아마도 샤허에는 라브렁스拉卜楞寺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라브렁스拉卜楞寺는 세계 최대의 티베트 불교 학원이다. 1709년 청나라 강희 48년에 세워진 사원은 겔룩파의 6대 사원 중 하나로 순례객과 관광객까지, 사람들의 왕래가 많은 것은 당연하다.
4월 초의 샤허공항, 멀리 설산이 보이고 활주로에는 눈 녹은 물이 흐른다.
해마다 술렁이는 티베트의 3월
봄날에 티베트 여행허가서(Tibet Entry Permit)를 받는 것은 꽤나 어려웠다. 티베트를 여행할 수 있는 증명서인 여행허가서는 티베트 현지 차량과 티베트인 현지 가이드를 포함하여 티베트 여행사를 통해 발급이 되는데 일찌감치 3월에 신청을 했지만 늦게 나오는 여행허가서로 인해 이유도 모르고 몸이 달았었다. 티베트인 가이드 몐빠에 의하면 3월에는 거의 외국인의 여행허가서가 나오지 않는다고 한다. 그 이유는 3월에 티베트인들에게는 가슴 아픈 사건들이 많이 일어났기 때문이란다.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이 세워지면서 중국은 티베트와 타이완을 포함한 중국의 옛 영토를 회복하겠다고 공표를 한다. 1950년, 세계의 시선이 한국전쟁으로 쏠려있는 틈을 타 중국군은 티베트를 침공했다. 이후 티베트 동쪽지역인 캄과 북쪽지역인 암도에서는 영향력 있는 승려들이 공연에 초대되었다가 실종되는 일이 잦아졌다. 1956년부터 캄과 암도(칭하이성 지역)에서 시작된 민중들의 저항이 전국적인 티베트인들의 봉기로 확산되자 중국군은 티베트를 강경하게 진압한다.
1959년 3월 10일 중국군 사령부에서는 달라이 라마에게 공연 관람을 제안하면서 무장 경비대를 동행시키지 말라는 조건을 달았다. 공연을 핑계로 납치를 당할, 누가 봐도 위험한 제안이었다. 달라이 라마가 납치당할 것을 우려한 티베트인들은 노블링카 여름궁전 주변에 몰려들어 달라이 라마의 공연 참석을 막았다.
근처에 포탄이 떨어지고 티베트인들의 희생을 염려한 14대 달라이 라마는, 결국 3월 17일 밤 9시 변장을 하고 측근들과 함께 인도로 피신한다. 결국 중국군은 라싸의 주요 사원에 포격을 시작하였으니 남아있는 티베트인들의 생사는 상상 그 이상이었을 것이다.
1974년 이후에 티베트인들의 게릴라전은 잠시 주춤했으나, 1989년 3월 5일, 라싸에서 일어난 독립시위에서는 기관총과 화염방사기로 250명 이상의 사상자가 났으며, 티베트 독립운동 49주년이 되는 2008년 3월 10일에 라싸에서 일어난 시위에서 중국정부는 탱크와 장갑차를 동원하여 시위대를 강제 해산시키는 과정에서 심각한 유혈사태가 벌어졌다. 혹자는 1989년 톈안먼 사건 이후 가장 큰 규모라고도 했다.
이처럼 라싸에서 3월에 벌어진 일련의 사건들로 인해 해마다 티베트의 3월은 술렁이며, 지난한 삶을 이 땅에서 살아내고 있는 티베트인들이나 이들의 숨통을 조이려는 중국 정부의 당국자들이나 마주 보고 지내기에는 힘겨운 시간임에 틀림없다.
따시델레~ 티베트!
아침에 눈을 뜨니 나는 분명 살아있었다. 어젯밤 고산증으로 인해 고통스러웠던 시간은 어둠과 함께 사라지고 산소는 희박할지언정 맑다 못해 건조한 느낌의 쨍한 공기를 흡입하며 야생 복숭아꽃이 흐드러진 꿈같은 풍경을 그리며 깃털처럼 차에 올랐다. 따시델레~ 티베트!
9인승 차량에 4명의 한국인과 장족 가이드 그리고 한족 기사님 포함 여섯 명이 타니 좌석까지 쾌적하다. 외국인의 티베트 여행은 규정상 장족 가이드와 드라이버가 함께해야 한다.
티베트로 떠나기 며칠 전인 3월 말경, 베이징 여유국 사이트에 올라온 ‘복숭아꽃이 만발한 린즈’라는 제목의 황홀한 사진 한 장은 나를 더욱 달뜨게 만들었다. 기대감과 함께, 꽃이 3월 말이 한창이라면 내가 티베트에 가는 4월 5일경에는 끝물이면 어쩌나 하는 생각 때문에 마음만 바빠졌다.
해발고도 5013m의 미라산커우
흐드러진 야생복숭아꽃을 보기 위해 티베트 남쪽에 위치한 얄룽짱보雅鲁藏布강줄기를 따라 형성된 린즈와 얄룽짱보협곡이 있는 보미波密 지역을 돌아볼 예정이다. 이렇다 할 목적지를 가는 것이라기보다는 복숭아꽃이 꾸밈없이 피어있는 예쁜 곳을 찾아다니는 여정이다.
라싸 시내를 동쪽으로 빠져나가 해발고도 5013m의 미라산커우米拉山口를 지나면 잘 닦인 318번 도로의 양편에는 동화책에서나 나올 것 같은 풍경이 펼쳐진다. 감탄사를 내보이니 기사님이 한 말씀 거드신다. “이건 아무것도 아니야, 여행내내 복숭아꽃은 신물 나게 볼 것이야”
간간히 분홍빛의 복숭아꽃들이 있지만 산야를 하얗게 밝히는 복숭아꽃들은 모르고 보면 배꽃이라 해도 될 만큼 하얗다. 자세히 꽃을 들여다봐도 꽃잎의 안쪽이 복숭아빛처럼 붉은 것을 빼고는, 내가 아는 배꽃에 가깝다. 아무튼 야생에 가까운 복숭아나무라고 하는데 열매는 크진 않지만 먹을 수 있다고 한다.
한국의 과수원에서 봤던 복숭아꽃과는 생김새가 다르다.
린즈 보미 지역은 험난하지만 윈난의 리장을 지나 중뎬(샹그릴라)쪽의 육로로 접근이 용이하다. 윈난 북쪽은 원래 티베트의 땅이었으며 예부터 발달한 차마고도이다. 하지만 육로로 3월과 4월 초에 티베트시장자치구로 들어가는 것은 불가, 항공이나 기차로 들어오라고 한다.
이 지역은 티베트의 강남(중국에서 장강 이남의 따뜻한 지역을 강남江南이라 부른다)이라 부를 정도로 기후가 온화하고 티베트의 스위스라 불릴 정도로 설산을 뒤로한 원시림이 넓게 분포되어 있으며 식생의 종류가 풍부하다.
실제로는 내가 알고 있는 스위스의 풍광보다 원시적이며, 겹쳐 펼쳐진 산줄기로 인해 훨씬 다이내믹하고 풍부한 볼거리를 제공한다. 경치뿐일까, 사람들과 마을은 순전하며 평화롭고 아름답다. 게다가 얄룽짱보강과 그 지류를 따라 사이사이 펼쳐진 평원은 티베트에서 가장 비옥하다. 또한 이곳은 티베트의 조상을 알 수 있는 역사적 고고학적 고향이기도 하다.
강물이 흘러가는 골짜기의 폭은 대체로 넓게 형성이 되어있어 농작물 재배를 한다.
티베트의 도로, 특히 국도는 잘 닦여있다. 하지만 차량도 별로 없는 뻥 뚫린 길에서도 구간 제한속도는 30킬로미터인 경우가 많아, 지나치다가 만난 작은 호숫가 옆에서 방싯빙싯, 오물거리며 다가오다가 우리를 보고 한껏 위엄을 차리고 지나가는 소떼들과 사진놀이, 나이먹은 복숭아나무가 우거진 마을에서 노닥노닥, 큰길에서 약 46킬로미터 북쪽으로 올라가 초승달을 닮은 바송춰에서 소풍 나온 것처럼 한나절, 그렇게 쉬엄쉬엄, 예쁘고 단정한 린즈林芝에 도착했다. 느지막한 오후, 아니 밤 8시가 다 되었는데 해는 아직도 중천이다. 티베트에서는 하루가 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