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 악마의 속임수는 적중하는 법

#9 - 티베트 이야기, 라싸에서 시가체까지

by 그루


신성한 유목민들의 땅, 얌드록쵸Yamdrok Tso


라싸에서 취수이(곡수)현을 지나 2시간 여 약 4,900미터에 가까운 캄파라Kamba la 고개에 접어들기 시작하면 고도가 꽤 높게 느껴진다. 압도하는 풍경이 눈앞에 나타나지만 혹여 고산증세라도 올까 봐 조심스럽다. 하지만 전망대 역할을 하는 고개 정상에서 또렷하게 파노라마처럼 펼쳐진 얌드록쵸Yamdrok Tso(4,480미터)를 보는 순간은 할 말을 잊는다. 기상에 따라 호수의 상징인 터키석 푸른색 호수를 못 볼 수도 있다고 했지만 내 눈을 단숨에 사로잡은 호수의 아름다운 색깔은 심장을 멎게 하고, 설산을 뒤로하고 정지해 있는 듯 여신의 미소를 닮은 turquoise 푸른색은 역시 얌드록쵸의 백미이다. 게다가 호수 주변을 둘러싼 설산들이라니, 호수를 바라보다 보면 나도 모르게 호수 뒤 오른쪽 삼각형의 예쁜 설산 노진 캉짱산Noijin Kangsang(7,179미터)에 눈이 멎어 있다.



캄파라Kamba la 고개에서, 얌드록쵸Yamdrok Tso
호수 뒤편으로 보이는 노진 캉짱산Noijin Kangsang(7,179미터)


호수는 꽤 넓지만 코코노르(칭하이호)나 마뺨윰쵸(마나사로바)처럼 광활한 느낌은 받을 수 없다. 하지만 겹쳐있는 호수 주변의 산들로 인해 우아하고 낭만적이며 어디에서도 전체를 볼 수 없는 호수는 신비스럽기까지 하다. 보는 순간 내 인생의 가장 아름다운 호수로 접수해 버렸다.


파미르 고원의 카라쿨 호수와 쌍벽이다. 카라쿨은 포스가 뿜뿜 넘치는 남성적인 호수인데 반해 얌드록쵸는 도도하면서도 섬세하다. 그래서인지 이곳에는 티베트 최초의 왕비와 선녀 이야기 등 여성에 관한 이야기가 많이 전해지며, 티베트에서 꽤 영향력 있는 유일한 여성 화신을 모신 Samding 곰파가 있는 곳이기도 하다.


지도를 보면 부채꼴처럼 넓게 퍼져 있는 호수는 언뜻 보면 시조새나 발이 많은 전갈을 닮았다. 얌드록쵸는 638 km²에 달하는 넓이로 평균 수심은 30미터, 가장 깊은 곳은 약 60미터로 레이스처럼 요철이 있는 호변의 길이는 약 250킬로미터에 달한다고 한다. 한두 시간 호변을 차로 달려도 여전히 호수다. 10월의 호변에는 수많은 동식물들이 호수와 함께 살아가며 다채로운 식생으로 인해 풍성하고 자유롭다.


얌드록쵸Yamdrok Tso 의 가을


이곳은 티베트인들이 신들이 거주하는 매우 신성한 곳으로 여기는 4대 성호(남쵸, 마뺨윰쵸(마나사로바), 코코노르(칭하이호))중 하나이다. 호수 주변에는 설산들이 병풍처럼 서있고 그곳에서 녹아내린 수많은 작은 하천들이 호수로 흘러들어 가지만 나가는 하천은 오직 하나이다.


호수 안에는 사람이 사는 큰 섬도 있지만 여러 개의 작은 섬들은 온갖 새들의 서식지이며 산란처이다. 게다가 풀이 많고 맹수가 없는 섬은 양 떼들에게 최고의 목장이라고 한다. 녹색의 풀이 섬을 뒤덮는 계절이 오면 주민들은 양 떼를 배에 태워 섬 안에 이동시켰다가 겨울이 되어 호수가 얼면 호수 위를 걸어서 양 떼를 집으로 데리고 돌아온다고 하니, 호수의 이름 얌드록쵸의 의미와 똑같다. ‘신성한 땅, 녹색의 초원은 유목민들의 거처.’


병풍 같은 설산과 높고 푸른 하늘의 구름이 노니는 호수에서 배에 태운 양 떼들은 녹색 융단이 깔린 섬 안에 내려놓자마자 음매음매 뒤섞여 달려갈 것이며, 계절이 바뀌어 언 호수 위를 아장거리며 건너서 잘생긴 티베트 개들과 함께 귀여운 몸짓으로 집에 돌아오는 귀염귀염 한 양 떼들의 모습이라니.

이들에게는 생활이지만 먼발치에서 바라보는 나는 그저 행복한 상상이다.


구불구불한 호안선은 끝이 없이 이어져 있다.


드록쵸를 지나 서쪽으로 1시간 30분 정도 6,000미터가 넘는 고산준봉들 사이를 지나다 보면 오른쪽으로 Noijin Kangsang Peak아래 카로라Kharola 빙하(5,560미터)가 나타난다. 높은 산 밑동 바로 위에 걸려있는 순백의 빙하는 바로 눈앞에 있어 더 경이롭다. 빙하가 녹은 물은 물줄기를 이루어 흘러내린다. 최근 카로라 빙하가 녹는 속도라면 2035년이면 빙하 전체가 없어질 거라는 이야기에는 마음이 답답할 뿐이다.


카로라Kharola 빙하
빙하에서 흘러내리는 물


간체Gyantse(江孜)


간체는 티베트에서 역사적으로 네팔과 인도, 윈난과 서부 티베트까지 아우르는 차마고도의 중요한 거점 도시였으며 송첸감포(재위 630년~650) 이후 약 200년 동안 중앙아시아의 강국이었던 토번이 분열된 후 왕조의 마지막 왕 랑다르마Langdarma( ~842)의 자손들이 터를 잡았던 곳이었으며 사캬파가 득세하던 13세기와 14세기에는 영향력이 있는 강력한 지방정부의 중심지였다.


사캬와 충선왕


티베트의 4대 불교의 하나였던 사캬파는 사원 이름이며 지역 이름이기도 하다. 사캬 사원은 1073년 곤촉겔포(1034-1102)에 의해 건립되었다. 스승을 법맥으로 발전시켰던 다른 종파와는 달리 사캬파는 집안과 핏줄을 중심으로 발전하였다. 특히 사캬 판디타(1182∼1251)는 원의 궁에 초청되었고 그의 조카 초겔 팍파Chogyal Phakpa (1235∼1280)는 쿠빌라이 칸의 스승이 되었다. 원나라의 세력을 업은 13세기와 14세기에 사캬파는 티베트의 통치권을 장악하여 강한 정치적 세력을 형성했다.


한국과 티베트는 역사적으로 관련이 없지만 고려시대 원나라 불교를 통해 간접적인 영향으로 티베트 불교(금강승 불교) 요소가 남아있다고 한다. 하지만 유일하게 직접적으로 교류한 흔적이 남아있는 사캬 사원은 고려 26대 충선왕의 유배지였던 곳이다. 쿠빌라이의 딸 제국 공주와 충렬왕 사이에서 태어난 충선왕은 고려왕 외에 원에서 심양왕(후에는 심왕)의 직함을 지닐 정도로 원나라에서도 실질적으로 막강한 힘을 지녔다고 한다. 하지만 1302년 원나라의 정쟁에 휘말린 충선왕은 대도였던 베이징에서 탁주, 석가장에서 낙양, 시안에서 란저우, 도스마, 라싸를 지나 6개월을 걸어서 티베트 남부 사캬 지역에 도착했다고 한다. 너무나 고생스러웠던 유배 길은 따르던 수행원들조차 도망을 갔다고 할 정도이니 여정 자체가 수행이다. 그는 2년 6개월 후 도스마 지역으로 옮긴 후 베이징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당시 티베트와 원나라(몽골)는 종교적으로는 하나였으며 사캬 지역은 원나라의 왕족과 승려들은 물론 충선왕의 아들까지 유학을 왔던 곳으로 정치 종교의 중심지였다.


1904년, 영웅들의 땅이라고?


하지만 불행하게도 간체는 19세기 말과 20세기 초, 티베트를 향한 영국의 침략 경로이기도 하였다.

영국은 인도와 네팔, 부탄과 시킴을 그들의 영역으로 만든 후 티베트로 향했다. 1866년에는‘티베트를 문명시대로 진입시킨다’는 것을 구실 삼아 1차 침략한다. 1903년 맥도널드J. Macdonald(1862~1927)소장과 영허즈번드F. Younghusband(1863~1942) 대령은 네팔, 인도, 영국인으로 편성된 군인 3,000여 명을 데리고 2차 침략을 일으켰다. 영국군은 열흘 동안 시킴 북쪽의 야동亞東을 비롯한 여러 지역을 함락시킨 후, 추미센고曲眉仙果에서 티베트 군대의 기습과 갑자기 내린 큰 눈으로 인해 길이 막혔다.


1904년 3월, 눈이 녹자 추미센고에서 영허즈번드는 영국군은 물론 티베트 군에게 총과 무기를 내려놓기로 하고 몰래 군대를 매복시키는 한편 평화 담판을 진행했다. 언제나 악마의 속임수는 적중하는 법, 담판이 진행되던 중 매복했던 영국군은 무방비상태의 수 천 명의 티베트 군인들을 몰살시켰다. 마치 칼을 들고 있는 군인과 돌을 던지는 어린아이로 비교가 가능할까, 티베트인들에게 추미센고의 대학살에 이어진 간체종에서의 방어전은 기억하고 싶지 않은 쓰라린 아픔이었을 것이다.


라싸, 얌드록쵸, 카로라빙하, 간체, 시가체 그리고 사캬 맵



간체를 지나면 오른쪽 위로는 라싸, 왼쪽으로는 제2의 도시 시가체가 위치했다. 간체를 점령당했으니 라싸는 바람 앞의 촛불이었다. 당시 28세였던 13대 달라이 라마는 러시아에 도움을 요청하고자 말을 달려 몽골로 달려갔다. 라싸를 점령한 영허즈번드는 달라이 라마를 대리한 섭정과 불평등한 라싸 조약을 체결했다. “영국은 티베트를 영국의 세력 범위에 둔다.”


얌드록쵸와 카로라 빙하를 품고 있는 간체는 과거 상인들이 지나던 세월 위로 여행자와 순례자들이 오고 간다. 나도 그들처럼 긴 하루의 여정에 잠시 쉬어가듯 간체 종Gyantse Dzong 아래 잠시 몸을 내렸다. 언덕에 세워진 간체종Gyantse Dzong은 라싸 어디에서도 보이는 포탈라 궁처럼, 간체 주변 어디에서도 보인다. 사방으로 둘러싸인 마을을 내려다보고 있는 성채의 모습은 티베트 최초의 궁성인 윰(융)부라캉이나 포탈라 궁처럼 전통적인 궁의 입지 조건을 그대로 갖추고 있다.


10월의 티베트는 겨울로 들어가는 시간인 듯 여행객이 없어 더욱 을씨년스럽게 느껴지는 넓은 주차장도, 아이러니한 영웅 탑도 낯설다.

간체는 영웅들의 땅이 아니라 의미 없이 죽어간 젊은 영혼들로 인해 깊은 상처를 안고 있는 땅이며, 언덕 위에 걸려있는 멋진 모습의 성채는 티베트 병사들의 시신들이 낡은 빨래처럼 걸려있던 곳이었으며, 비명소리 가득했던 주검의 장소일 뿐이다.


간체종Gyantse Dzong


시가체Shigatse(日喀则), 달라이 라마와 판첸 라마


티베트를 떠올리면 제일 먼저 생각나는 티베트 상징의 대명사처럼 알려진 달라이 라마와 판첸 라마 제도는 의외로 그리 오래된 제도가 아니다.


티베트의 통치자이며 원수인 달라이 라마는 몽골의 알탄 칸이 3대 달라이 라마 쇠남 갸초(1543~1588)에게 올린 존호였으며, 17세기에 비로소 정치적 종교적 최고 통치자가 되었던 5대 달라이 라마 롭상 갸초Lobzang Gyatso(1617~1682)가 겔룩파의 시조 총카파의 제자인 겐덴 툽빠(1391~1474)를 1대 달라이 라마로 정하고 소급해서 적용시킨 후, 현재까지 14대 달라이 라마에 이르고 있다. 달라이 라마는 관세음보살의 화신으로 여긴다.


달라이 라마에 이어 이인자로 인정되는 판첸 라마Panchen Lama는 5대 달라이 라마 롭상 갸초(1617-1682)가 스승 롭상 초키 겔첸Lobzang Chokyi Gyeltsen(1570-1662)에게 판첸 라마라는 직함을 내린 것이 시작이다. 이후 총카파의 제자인 케도프제를 1대 판첸 라마로 소급하여 지정하고 이때부터 달라이 라마와 판첸 라마는 5대 달라이 라마와 그의 스승(4대 판첸 라마)처럼, 나이에 따라 서로 스승과 제자 관계가 성립이 된 것이다. 판첸 라마는 아미타불의 화신으로 여기며 짱(창으로도 표현하며 시가체는 짱의 중심도시) 지역에 있는 타시룬포 사원에 머물게 하였다. 타시룬포 사원은 1대 달라이 라마 겐덴 툽빠(1391~1471)가 1447년 창건한 사원으로 판첸 라마는 라싸에 비해 겔룩파가 상대적으로 약한 짱 지역을 통치해 왔다.


하지만 1995년 5월 14일 달라이 라마는 초에키 니마Gendhun Choekyi Nyima를 10대 판첸 라마의 환생자로 인정했으나 사흘 후인 5월 17일, 6살의 어린 판첸 라마는 환생자 조사단 및 가족과 함께 중국 정부에 의해 납치되었다. 그리고 중국 정부는 그해 12월 기알첸 노르부Gyaltsen Norbu를 11대 판첸 라마로 정해버렸다.

6살에 납치당한 판첸 라마가 살아있다면 벌써 20대 후반의 나이가 되었다.


이에 다람살라 티베트 망명정부를 이끌던 14대 달라이 라마는 600년 이상 지속된 달라이 라마 환생 제도는, 이미 그랬듯이 정치적으로 악용될 소지가 있으므로 머지않아 민주적인 방식을 비롯한 다른 방법으로 후계자를 찾을 것이라 언급했다.


그는 2001년 정치 지도자로서의 은퇴를 했으며 현재는 투표로 뽑힌 총리가 임시정부 수반을 담당하고 있다.




간체에서 얼마 지나지 않아 Nyang Qu(강)와 얄룽짱보강이 만나는 곳에 남부 티베트 짱Tsang(창)지역의 중심지이며 티베트 제2의 도시 시가체가 위치한다. 시가체 남서쪽에 위치한 사캬Sakya가 티베트를 통치하던 시기인 13세기에서 14세기 이후(1268~1365), 라싸가 5대 달라이 라마에 의해 통일이 되어 수도가 될 때까지 시가체는 남부 티베트의 중심지로 동쪽에는 라싸와 린즈 지역, 서쪽의 아리와 라다크, 남쪽의 네팔과 인도, 부탄 등 히말라야 남쪽에 위치한 지역들을 아우르는 거점도시로 사실상 티베트 수도였다고 한다.


초모룽마(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에서 라싸로 가는 길, 여행의 막바지에 들린 타시룬포 사원은 라싸의 3대 사원만큼이나 거대한 복합공간이다. 티베트에서 사원은 마을의 중심체 역할을 하는 곳으로 학교는 물론이고 생활에 필요한 모든 것과 관련이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사원의 큰 규모에 버릇처럼 경기를 일으킨다.


사원에 들어오면, 더구나 규모가 큰 사원이라면 더더욱, 몸도 마음도 외면한다. 커다란 사원이나 화려한 모스크 또는 교회 안에, 자비로운 불상이나 예수와 성모, 시바와 비슈누 등의 모습에, 사람의 본성을 가두고 복종시키려는 위협과 위선이 느껴진다.


타시룬포 사원 입구에서, 흰색 구조물은 대형 탕카를 걸어놓는 곳이다.


라싸의 3대 사원만큼 커다란 규모를 자랑하는 타쉬룬포Tsahilhungpo Monastery에는 사원을 건립한 1대 달라이 라마와 역대 판첸 라마의 영탑들이 있으며 사원의 정문에서 보면 오른쪽에는 불교대학이 있다. 가이드 몐빠의 설명에도 고개만 끄덕끄덕, 1914년 9대 판첸 라마 시절 만든 어마어마한 미륵불을 보면서도 시큰둥, 향을 피해 빛을 찾아 나와 버렸다. 그러다가 창문에 빼꼼히 얼굴을 드러낸 어린 학승과 눈이 마주치니 쏙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가 나오기를 반복한다.


어린 학승과 마주쳤던 창가, 티베트 건축에서 흰 벽은 관세음보살, 자비를 상징하며 창문 주변 검은색은금강저, 힘을 상징


그림자가 나른한 늦은 오후, 타시룬뽀 사원을 빠져나와 호텔을 찾아 걸어가는 길, 공원 모퉁이에서 아주머니 한 분이 창Chhaang을 팔고 계신다. 창은 칭커(청보리)나 수수로 만드는 티베트 전통술로 서너 번 마셔 본 경험으로는 발효가 많이 된 것처럼 맑은 신맛이 먼저 느껴지는데 술의 도수와 맛은 다 제각각이다. 보리가 주식인 지역이라, 나는 보리로 만든 라싸 맥주가 좋다.


라싸 드레풍사원 부근 밥집에서 시켜 먹었던 공장에서 제조한 '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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