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대 달라이 라마의 추억

#08 티베트 이야기, 라싸 둘

by 그루


달라이 라마가 사랑한 ‘노블링카’


라싸에 도착하자마자 노블링카Norbulingka 궁의 위치부터 확인했다. “Treasure Garden”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는 아름다운 노블링카의 모습을 보기 위한 것은 아니었다. 비록 폐허로 남아있다고 해도 한 번은 꼭 가보고 싶은 곳이었다.


1956년 캄(쓰촨 성)과 암도(칭하이 성) 지역에서 일어난 티베트인의 반란에 이어 1959년 3월 10일 중국 공산당의 강압적인 티베트 통치에 반발하여 티베트 라싸에서 봉기가 일어났다. 중국군은 마을이나 사원을 무차별 공격하였고 포탈라 궁을 폭격하겠다고 위협하였으며 급기야는 3월 17일 노블링카 궁 근처에 폭격을 가했다. 급박한 상황 아래 놓인 1959년 3월 17일 밤, “가라 오늘 밤 당장 바로 길을 떠나라”는 꾸땐의 신탁(영매가 그린 노블링카를 벗어나 변방 티베트 국경에서 인도로 가는 길이 그려진 지도와 함께)과 함께, 제발 떠나 달라는 백성들의 원성에 의해 변장을 한 청년 달라이 라마는 길고 험한 망명길에 오른다. 노블링카는 달라이 라마를 지키기 위해 궁을 에워쌌던 백성들과 함께 그날 폭격으로 파괴되었다.

떠날 당시 달라이 라마는 납치의 위협에서 벗어나기 위해 국경 근처에서 피신하다가 때를 봐서 돌아올 생각이었으나 국경에서 라싸가 폭격당했다는 소식을 듣고 인도 망명을 결정했다고 한다. 그가 인도에 도착한 것은 3월 30일, 인도 북부 무수리를 거쳐 다람살라에 망명정부를 설립했다. 24세에 티베트를 떠난 그는 2018년 현재 83세이다.

노블링카는 문화혁명이 시작되던 1966년 이후에는 폐허와 함께 공원이 되었으며 현재의 모습은 2000년 이후 중국 정부에 의해 복원된 모습이다. 오른쪽 매표소에서 60위안짜리 입장권을 끊었다.


티베트의 전통적인 건축물은 매우 현대적이며 실용적이다. Kalsang 포당(궁)


노블링카는 포탈라에서 남서쪽으로 3킬로미터, 라싸(키추Kyi Chu) 강가에 위치한다. 궁이 건설되기 전 이곳은 야생동물들이 들끓었던 거친 잡초들이 우거진 불모지였다고 한다. 들어가면 넓은 대지에 티베트 식 전통을 간직한 궁들이 숲과 함께 공존한다. 라싸에서 만나기 쉽지 않은 그냥 산책하기에 좋은 숲이다.
한창 좋은 시절에 이곳에는 라싸에서는 보기 힘든 많은 꽃과 허브, 과일나무들이 있었으며 춤과 노래가 끊이지 않는 축제가 열리는 유쾌하고 밝은 에너지가 넘치는 곳이었다.

고향 암도(칭하이성) 딱체르에서 라싸의 포탈라궁에 온 어린 14대 달라이 라마 텐진 갸초Tenzin Gyatso(1935~ )는 봄이 되어 노블링카로 옮겨 가는 날을 가장 즐거워했다고 한다.


1755년경 건축한 Kelsang 포당(궁)은 몸이 약한 7대 달라이 라마 Kelsang Gyatso(1708–1757)의 휴식공간이었으며 8대 달라이 라마 Jamphel Gyatso(1758–1804) 이후 공식적인 달라이 라마의 여름 궁전으로 사용했다.


이곳은 대체로 13대, 14대 달라이 라마의 추억이 많다. 1922년에 건축된 Chensel 포당은 13대 툽텐 갸초 Tubten Gyatso(1876~1933)의 거처였다. 13대 달라이 라마는 외세의 간섭으로 힘들었던 통치기간 중에도 개혁에 박차를 가한 지도자로 1913년 2월 독립을 선언하고 전기와 전화를 티베트에 들여왔으며 3대의 자동차를 최초로 수입 운행하기도 했다. 개혁가였던 그의 물건들은 어린 14대 달라이 라마의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14대 달라이 라마의 청소년기에 13대 달라이 라마의 자동차를 운전하다가 사고를 냈던 에피소드가 영화 ‘티베트에서의 7년’과 ‘쿤둔’에 그려졌다. 기대를 안 했는데 의외로 멀쩡하게 남아있는 13대 달라이 라마의 자동차도 노블링카에서 볼 수 있다.


14대 달라이 라마가 디자인하고 1956년에 완공한 2층 건물 Dadan Mingjur 포당으로 들어가면 거실과 집무실 옥좌 등이 주인이 곧 돌아올 것처럼 사람의 냄새가 나는 것 같다. 시계는 9시에 정지되어 있는데 1959년 3월 17일 밤 9시 달라이 라마가 망명길에 오른 시각이다. 내부는 소박하지만 현대적인 시설을 갖추고 있어 그의 실용적인 성격을 짐작케 한다. 그가 애용하던 러시아산 대형 라디오와 앤티크 한 78 rpm records 필립스 턴테이블도 볼 수 있다.


무엇보다도 거실의 벽 한면에 한눈에 볼 수 있는 티베트의 역사이야기가 그려져 있는 것이 인상적이다. 그의 어린 시절 모습을 찾아볼 수 있으며 상상할 수 있는 곳이다.

달라이 라마의 요청에 의해 하인리히 하러Heinrich Harrer(티베트에서의 7년의 저자)가 만든 작은 영화관도 이곳에 있다.

어린 시절 동물들을 사랑했던 달라이 라마 때문이었을까, 옆에는 동물원이 있다. 1950년경 14대 달라이 라마 당시에도 공작과 백조 등 많은 동물들이 궁 안에 있었다고 하니 대한민국의 창경궁처럼(일제가 동물원으로 만들어 창경원이라는 공원으로 조성했다) 애써 달리 볼일은 아니다.

14대 달라이 라마의 거처였던 Dadan Mingjur 포당, 내부는 사진을 찍을 수 없다. 하지만 생각보다 많은 것을 볼 수가 있다.

티베트 라싸 3대 사원


티베트 불교는 크게는 4개 종단으로 분류한다. 티베트에 처음으로 사원을 세운 파드마삼바바를 스승으로 하는 닝마파, 마르빠(또는 인도인 스승인 틸로파)를 스승으로 하는 까규파, 13세기 원나라의 쿠빌라이 시절 막강한 세력을 떨쳤던 샤카파, 총카파(1357–1419)가 스승이며 달라이 라마가 속한 겔룩파이다. 티베트 불교의 4개 종파를 분열이라고 볼 수도 있으나 하나의 줄기에서 뻗어나간 가지일 뿐이다. 스승을 법맥으로 여기는 티베트 불교는 스승만 다르지 수행의 목적은 동일하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깨달음!


그러므로 현재 규모가 큰 사원들은 겔룩파 사원인 경우가 많다. 옛 영광에는 다가설 수 없지만 라싸에는 교육기관을 포함한 거대한 규모의 겔룩파 사원 3개가 있다.

라싸 시내 지도



티베트 최대 불교대학 세라 사원 Sera Monastery


서부 티베트 여행을 마치고 라싸로 돌아온 다음날 오후에 포탈라 궁 북쪽 언덕에 있는 세라 사원을 찾았다. Sera라는 예쁜 이름은 ‘Wild Rose “의 의미가 있다고 한다. 사원을 건립하기 전 사원의 뒷동산에는 야생 장미로 덮여있었다고.


세라 사원은 1419년에 겔룩파의 스승인 총카파의 제자에 의해 건립되었다. 라싸의 3대 겔룩파 사원이며 티베트 최대의 교육기관(대학)이었던 사원은 14대 달라이 라마가 인도로 망명하던 해인 1959년 티베트 민중들과 함께 심각한 피해와 고통을 겪었다. 많은 수의 학승들은 달라이 라마의 뒤를 따라 망명길에 올랐으며 일부는 남인도 마이소르에서 약 80킬로미터 서쪽에 있는 바일라쿠페Bylakuppe로 망명하였다.


이후에도 세라 사원 승려들의 이주는 바일라쿠페로 계속해서 이어졌으며 다람살라 다음으로 티베트 밖에 있는 두 번째로 큰 티베탄 마을을 이루었다. 그리고 그곳에 다람살라 망명정부의 도움을 받아 그들이 떠나온 세라 사원과 대학을 그대로 만들었다.



Sera Monastery 입구


티베트 불교 수업에는 토론형식을 차용한 교리문답 Chora 수업이 있다. 질문자는 다양한 주제를 질문할 수 있지만 답변자는 4가지 답변(그렇다, 왜 그런가, 논거가 성립되지 않는다. 필연 관계가 없다)만 가능하다고 한다.
학승들의 수는 줄었지만 Debating Courtyard라고 붙어있는 뜰에서 매일 오후 3시에서 5시까지 100여 명에 가까운 학승들의 교리문답이 이어진다. 질문자가 발을 구르고 왼손으로 쥔 염주를 아래에 놓고 오른손을 올리는가 하면, 손바닥을 힘차게 쳐 올리고 하는 동작들은 춤과도 같다. 가끔 시무룩한 표정도 짓지만 질문자 못지않게 답변하는 자도 만만치가 않다. 제대로 된 답변이 나왔는지 파안대소하는 학승도 있다. 열띤 에너지가 살아 숨 쉬는 떠들썩한 정원의 모습은 티베트 불교가 강력하게 살아있는 증거이다. 나는 어떤 주제를 가지고 이처럼 토론하고 결론을 얻는 수업을 한 번이라도 받아본 적이 있는가 싶다.


낙제하지 않는 한 정규 수업기간인 16년에서 박사학위(게쉐)까지 받는 20여 년 이상의 시간을 사고하고 토론한다니 티베트 승려들은 누구나 철학자들이다. 학승들 하나하나가 달리 보이기 시작했다.

떠들썩한 Debating Courtyard, 질문하고 대답을 경청한다.


티베트 사원 건물에 들어갈 때마다 늘 한 번씩 갈등하고 들어간다. 켜켜이 쌓인 어둠과 누릿한 야크버터 향 그리고 아름답지만 때로는 괴이하고 험상궂게 생긴 불상의 모습들과 눈을 맞추기에는 아직도 쉽지 않다.

티베트 불교 사원은 다른 나라의 불교사원과 달리 유난히 많은 종류의 불상들을 모신다. 능력 있는 힌두교의 신들이 티베트 불교에 흡수되었으며 티베트 토속종교인 뵌교의 신들도 합세를 했다. 그래서 티베트 불교를 조금이라도 알려면 힌두교부터 들여다봐야 한다.



인도 베다 시대의 강력한 번개의 신이며 최고의 신 인드라는 제석천帝釋天으로, 창조의 신 브라흐마는 범천梵天으로 붓다를 양쪽에서 보좌하고 있으며 브라흐마의 아내인 사라스와띠는 변재천辯才天으로 들어와 있다. 힌두교 시대의 최고신 쉬바도 부동명왕不動明王이나 대흑천 등으로 등장하고 있는 것을 보면, 불교가 인도의 브라흐만교와 힌두교에 뿌리를 두고 있음을 말해준다. 지금도 큰 의미의 힌두교에는 불교와 자이나교 등을 포함 시키고 있다. 티베트에서 인기가 가장 많은 관세음보살의 아내인 타라 여신도, 귀여운 가네샤까지 티베트 불교에 만날 수 있다.

다른 사원보다 유난히 많이 안치된 불상들을 보며 갑갑한 마음에 앞사람 꽁무니를 쫓아가지만 빨리 나가고 싶어도 나갈 수가 없다. 순례자들과 뒤섞여 있는 아이들의 의식이 있기 때문이다. 본당 중앙에 있는 무섭게 생긴 불상 앞에서 승려는 의식을 끝내고 아이들의 콧잔등에 검정 칠을 해준다. 15세 이하 아이들이 참여한다고 하는데 부모 품에 안긴 갓난아이를 보니 교회의 유아 세례의식이 스쳐 지나간다.


티베트에서 검은색은 금강저를 상징하며 또한 에너지를 의미하기도 한다. 그러니 콧등에 검정 칠은 적어도 힘을 상징하니 부적의 역할로는 최고이다. 콧등에 검정 칠을 하고 사원 밖에 나온 아이들의 얼굴은 통과의례를 무사히 마친 것처럼 발그레 상기되어 있다.

엄마 아빠와 함께 의식에 참여하기 위해 들어가는 꽃단장한 아이들
세라사원은 탕카도, 불상도 유난히 많다. Debating Courtyard에서 나오는 길, 벽화를 그리는 화공, 총카파를 그리는 듯


달라이 라마의 왕궁이었던 드레풍 사원Drepung Monastery

1416년 세워진 드레풍 사원은 포탈라 궁 서쪽에 위치하며 사원의 흰색 건물들이 산기슭에 거대한 마을처럼 포진해있다. ‘드레풍’은 티베트어로 ‘하얀 쌀 더미(포대)’라는 뜻이라고 한다. 멀리서 보면 흰색 건물들이 엄청난 쌀 포대가 포개진 것처럼 보일 수도 있겠다.


드레풍 사원은 라싸 겔룩파 3대 사원 중에서 규모가 가장 크며 17세기 전성기에는 7,000명에서 최고 1만 명의 승려들이 거주하고 있었다고 한다. 포탈라 궁 건립 이전에는 달라이 라마가 이곳의 간덴 궁에서 기거하였다고 하니 당시에는 라싸의 중심이었으며 포탈라 궁처럼 왕궁이었던 셈이다.
사원 입구에서 왼쪽으로 언덕을 따라 올라가면 길이 30m, 폭 20m 크기의 탕카(티베트 불교화)를 걸어놓는 장소가 나온다. 원래부터 티베트의 중심이었던 드레풍은 Shoton축제의 시작을 알리는 사원으로 티베트의 음력 6월 30일 이곳에 거대한 탕카가 걸리면서 축제가 시작된다고 한다.


티베트의 모든 사원은 1959년을 기점으로 몰락하기 시작하며 1966년 문화혁명을 지나면서 몰락의 극을 치닫는다. 사원뿐일까. 드레풍 사원에 속한 4개의 대학에서 수학하던 학승들의 일부는 드레풍을 떠나 히말라야를 넘었다.

드레풍사원에서 보이는 라싸시내, 역시 왕궁의 입지를 지녔다.
Shoton축제(요구르트 축제)의 시작을 알리는 대형 탕카를 걸어놓는 곳


겔룩파의 총본산 간덴 사원Ganden Monastery


간덴Ganden사원의 이름은 "joyful" 또는 미륵불이 사는 도솔천이라는 의미로 라싸 북동쪽으로 40여 킬로미터 밖 다쯔 현에 위치한다. 라싸(키츄) 강을 따라가는 길이 티베트의 가을을 만끽할 만큼 아름답다. 사원은 겔룩파의 스승인 총카파Tsongkhapa(1357–1419)가 1409년 건립한 겔룩파의 총본산이며 당연히 간덴사원의 주지는 티베트 불교에서 막강한 정치적 권력을 지닌다.

600년이 넘는 시간을 따라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이 다녔던 아름다운 능선을 따라 입구에 도착하면 해발고도 약 4,300미터에 달하는 간덴 사원 군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1959년 이후 티베트에 불어 닥친 불행은 겔룩파의 총본산인 이곳을 철저하게 파괴시켰다. 이어진 약탈은 겔룩파의 스승 총카파의 유골마저 흩어져버렸다고 한다.

1985년 찍은 사진으로 본 간덴사원의 폐허는 상상 이상이다. 이후 하나씩 재건하고 있지만 몇 만 명이 거주했던 그 옛날의 부와 권력은 추억일 뿐, 현재의 평화가 가장 소중하다.

간덴 사원 오르는 길에서, 멀리 라싸강이 보인다.
산자락에 편안하게 옹기종기 사원군이 앉아있다.


1959년 이후 3대 사원은 모두 망명지에 다시 세워졌는데 드레풍 사원과 간덴 사원은 남인도 카르나타카 문곳Mundgod에, 세라 사원은 바일라쿠페에 다시 건립되었다.




생각하지 못했다. 이주지에 다시 세운 사원과 대학이라니 그것도 거대한, 티베트에서 가장 강렬하게 자주 만나는 문양인 검은색의 매듭 문양을 떠올렸다. 돌고 돌아도 어차피 만나는 것을, 궁극에는 하나인 것을.


드레풍 사원 본전의 검은 매듭무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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