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린포체(카일라스)

#07 - 티베트 이야기, 카일라스 코라 3일

by 그루


“한 번으로 족해”, 나는 여행지로서는 치명적인 높은 해발고도로 인해 티베트를 향한 마음을 한 번으로 접었다. 샹그릴라처럼 봄날의 꿈같았던 풍경은 이미 꿈에서 깨어 다시는 돌아가지 못할 곳이었다. 하지만 높고, 깊고, 험한 그 땅에 겁도 없이 어느새 내 마음을 주었는지, 그 사이 티베트는 마음속 곳곳에 똬리를 틀고 들어앉아있었다. 라싸 강이 노랗게 물들어가는 가을날, 고향을 찾은 듯 따뜻한 눈빛으로 나는 빛나는 라싸로 돌아왔다. 카일라스를 위해.

10월에 다시찾은 라싸강, 라싸근교와 라싸를 흐르는 라싸강, 얄룽짱보강으로 합쳐진다.


그렇다고 산을 애정 하지도 않으면서 불교도도 힌두교도도 아닌 내가 다른 여행자들처럼 강 린포체(카일라스) 코라를 하기 위해 티베트를 다시 찾은 것은 아니었다. 하늘을 닮은 고원의 호수들과, 지금은 무인지대에 다름 아니지만, 그 옛날에는 활발한 무역로였던 구게 왕국과, 라다크 땅과 닿아있는 판공 호수가 있는 서쪽이 보고 싶었다. 해발고도가 높아 무척 신경이 쓰였던 강 린포체(카일라스)는 구게 왕국을 가는 도중에 들르는 여정일 뿐이라고 굳이 생각했다.

하지만 강 린포체(카일라스)는 분명 내가 경험하지 못한 두려운 자연이며 가보지 않은 정신세계였다. 더구나 해발고도가 티베트 서부와 비슷한 라다크를 여행하다가 고산병에 철수하거나 여행을 중단해야 했던 사람들을 이미 봤던 터여서 출발하기 전 나를 더욱 긴장시켰다.

라싸에서 시작하여 서부티베트로 향하는 20여일간의 여행일정, 히말라야 산맥을 왼쪽으로 바라보며 달린다.


나는 여행을 다니는 사람이니 여행길에 험한 곳이 있으면 이것도 길이려니 생각하고 돌아서지 않는 편이다. 하지만 조건이 좋지 않은데 꼭 정상을 올라가야 한다거나, 나 자신을 극복해야 한다는 생각은 터럭만큼도 갖고 있지 않을뿐더러 오히려 쉽게 판단(포기)하는, 인내심이 조금 부족한 나 자신을 좋아한다. 어떤 일을 포기하는 것이 부정적으로 보일 수 있으나 때로는 다른 길로 인도하거나 새로운 길을 찾아주기도 한다.


많은 한국인들이 그러하듯이 내 주변의 사람들은 목적한 바를 포기하거나 이루지 못하면 잠을 이루지 못할 만큼 부지런하며 강인한 인내심과 체력까지 갖춘 사람들이 많다. 어려움을 극복해낸 몸과 마음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카타르시스와 충분한 동기부여를 받게 될 것이다. 닮아야 할 덕목임에 틀림없지만, 이미 자유롭고 게으른 즐거움을 누리고 사는 맛을 좋아하는 내가 지녀야 할 덕목은 아닌 것이다. 죽을 때까지 부지런하고 강인한 참을성과 육체를 지녀야 한다면 얼마나 고단할까.


이처럼 평소에 일부러 산에 오르는 일은 거의 없다시피 한 사람이 강 린포체(카일라스) 코라를 완주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약 4,700미터 이상의 해발고도에서 숙박은 물론 해발고도 약 5,700미터에 가까운 고개를 넘어야 하며 2박 3일 동안 53킬로미터를 걸어서 주파해야 하는 것이다.

내가 결정한 일이니 내색은 안 했지만 얼마나 걱정이 되던지 출발하기 전 산행에 필요한 등산스틱과 아이젠을 구입했다. 그리고 우습지만 해발고도 250미터에 불과한 서울 양천구의 집에서 가까운 왕복 한 시간 반 코스의 광명 구름산(이름도 멋지다)에 통과의례처럼 세 번을 다녀왔다.



일반적으로 카일라스라고 부르는 강 린포체는 티베트어로 ‘강’은 눈을 상징하고 ‘린포체’는 보석을 뜻하니 눈으로 이루어진 보석이란 뜻이다. 약 6,714미터로 Kailash 산맥의 최고봉이다. 산의 높이는 여기저기 제각각이다. 이 곳은 다른 산과 달리 누구나 쉽게 범접할 수 없는 성산으로 등반을 금기시해 정확한 측정이 어렵기 때문이라고 한다.(어차피 히말라야 지역 산의 높이는 계속 변한다)


강 린포체를 뵌교도들은 또 다른 이름인 강 띠쎄Tise라고도 부르는데 이곳에서 얼마나 많은 물길이 만들어지는지 "water peak" 또는 "river peak"라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고 한다. 수많은 빙하를 껴안고 있는 강린포체(Kailash) 남쪽으로는 호수 한 바퀴 거리가 약 100킬로미터에 달하는 담수호인 마나사로바Manasarovar(마빰윰쵸)와 염호인 락샤스탈Rakshastal(랑가쵸)이 가까이 위치한다. 강 린포체 대부분의 빙하물이 이곳으로 흘러든다. 호숫물은 바르카평원을 적시며 대 하천으로의 여행을 준비한다.


마나사로바(4,556미터)는 남쵸, 암드록쵸와 함께 티베트의 3대 성호이며 세계에서 가장 높은 담수호이다. 작가 임현담의 <강 린포체>에 의하면 마나사로바의 manas는 마음이며 sarova는 호수이니 힌두교인들은 브라흐마가 마음으로 마나사로바를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그의 일곱 아들이 카일라스에서 수행하고 내려와서 씻으면서 아버지인 브라흐마를 찬양했던 곳이 마나사로바이다. 티베트어로 마빰 윰쵸라고 하는 이 호수는 강 린포체와 마찬가지로 힌두교인들에게는 일생에 한 번이라도 보고 싶은 최고의 성지이다.


마나사로바와는 서쪽으로 서로 바라보고 있는 형국으로 있는 락샤스탈 호수는 티베트어로 랑가쵸(또는 량쵸)라고 부르며 때로는 악마의 호수라고도 부른다. 대부분 두 호수를 남성(마나사로바)과 여성(락샤스탈)로 보는 경우가 많지만 미국의 유명한 불교학자 교수인 로버트 셔먼은 강 린포체 순례길에서 이와 반대의 이야기를 한다.

“가부장적 문화에선 남성과 여성이 해와 달, 빛과 어둠, 생명과 죽음을 각각 상징한다고 생각하지만 밀교와 티베트인들은 그와 반대로 여성을 태양으로, 남성을 달로 보거든, 그래서 락샤스 탈과 마나사로바는 결혼한 거야. 둘은 따로 떨어진 채 하나가 되기를 바라고 있지. 그래서 둘 사이를 잇는 마른 강에 물이 차오르면 그것은 정말 좋은 징조지. 또 카일라스를 링가로 마나사로바를 요니로 보는 게 분명하니까. 성스러운 호수는 여성이야.”

마나사로바,호수, 수심이 깊어서일까, 호수는 가까이에서도 짙은 남색을 띤다.
굴라 만다타봉(Naimona'nyi)은 마나사로바, 락샤스탈 호수 남쪽에 위치한다.
마나사로바와 굴라 만다타봉(Naimona'nyi)

이 지역의 강들은 히말라야 산맥으로 생긴 계곡을 따라 흐른다. 히말라야에서 흘러내리는 물길이야 셀 수 없을 정도이겠지만 대체로 19개의 큰 강으로 흘러든다. 그중의 가장 큰 강은 강 린포체(카일라스)에서 발원하는, 티베트 고원을 서에서 동으로 히말라야 산맥과 나란히 흐르다가 얄룽짱보대협곡에서 남쪽으로 내려가 인도 아삼 지역을 적시고 방글라데시 삼각주를 지나 벵골만으로 흘러드는 얄룽짱보 강Yarlung Tsangpo(인도 국경을 넘으면 브라마푸트라 강Brahmaputra으로 부른다)과 북서쪽으로 흐르다가 카슈미르와 라다크를 적시고 파키스탄을 관통하여 2,900킬로미터의 여정을 마치고 아라비아 해로 빠져나가는 인더스 강이다.


강 린포체(카일라스)지역에서 발원한 두 강은 동과 서로 2,900킬로미터를 흘러 벵골만과 아라비아 해가 만나는 인도양에서 다시 만난다. 어린 시절 피치 못할 사정으로 헤어져 온갖 역경을 헤치고 어른이 되어 성공해서 다시 만나는 한 편의 드라마다.


이 외에도 강 린포체(카일라스) 서쪽으로는 수틀레지 강 Sutlej이, 남쪽으로는 갠지스강 Ganges의 원류인 카르날 리강 Karnali이 흐른다. 실제로 강 린포체(카일라스)와 마뺨윰쵸(마나사로바 호수), 랑카쵸(락샤스탈 호수) 주변을 지나다 보면 바쁘게 움직이는 반짝이는 작은 개울물들을 수없이 만날 수 있다. 주변 지도를 확대시켜 보니 주변으로 흘러나가는 물길들이 지천이다.

강 린포체와 마나사로바, 락샤스탈 호수 주변의 물줄기를 그리면서 핏줄같다고 느꼈다. 분홍색은 카일라스코라 루트


코라 1일째 - 20 km

새벽 3시나 4시경밖에 안된 캄캄한 새벽, 티베트 서쪽 다르첸의 시계는 베이징의 시간과 같은 아침 7시다. 불이 들어오지 않는 숙소에서 보온 장비를 갖추고 숙소 옆 밥집에서 따끈한 흰 죽 한 그릇 비웠다. 보온병에 따뜻한 물도 채우니 마음이 든든하다. 예전 5,000미터를 넘나드는 라다크 여행에서 별 무리 없이 지낸 것은 카페인이 없는 우엉 연근차와 둥굴레차 등을 항상 마시고 다녔던 덕도 있는 것 같아 그 후로 고산 여행에서는 따뜻한 차에게 의지를 많이 한다.

2박 3일 동안 필요한 침낭과 보온재킷 등을 넣은 배낭 하나를 포터를 하시는 동네 아저씨에게 1,000위안에 맡겼다. DSLR 카메라도 놓고 가는 짐 안에 넣어놓으니 평소보다 몸은 가볍다. 하지만 막상 코라에서 돌아와 핸드폰 안에 있는 사진을 보고 있자니(실제로 핸드폰 사진도 많이 찍지 못했다) “카메라를 가져갔으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설핏 들기도 한다.

첫날 코라는 약 20킬로미터에 달하는 길로 고산에 적응만 잘한다면 서서히 올라가는 평지와 다름없다. 다르첸의 고도가 4,575미터이니 디라푹Drirapuk 곰파가 있는 숙소까지 하루 종일 삼사백 미터를 오르락내리락하면서 가는 것이니 평지와 비슷한 가파르지 않은 높이는 고산 적응을 하기에 가장 좋다. 출발은 10명이 했지만 한 명은 이미 라싸에서 고산병으로 철수를 해 버렸다.

강 린포체(카일라스)를 가운데 두고 남쪽을 지나 서쪽 방향으로 출발 즉 시계방향이다. 힌두교와 불교도들은 시계방향으로 코라를 하고 뵌교와 자이나교는 반대방향으로 돈다. 긴장감 때문인지 묵묵히 걸어가는 사람들의 어깨에 힘이 잔뜩 들어가 있다. 코라 입구에 도착하니 많은 티베트인들 속에 간간히 서양인들과 중국인들이 보이지만 기온이 낮으니 많다던 인도인들은 없다. 출발은 9명이 같이 했지만 한두 시간만 걸어도 일행은 휴게소에서나 만날까 찾기가 힘들어진다. 오히려 티베트 순례자들이 지쳐가면서 괜찮은지 돌아보는 경우가 더 많다.

코라 시작하는 길, 하늘이 이리도 좋을까 생각하는 것은 잠시.

걷다 보면 청량하지만 건조한 공기로 인해 호흡은 더욱 힘들어지는데 자주 입술을 적셔줄 따뜻한 차와 에너지를 위한 간식이 꼭 필요하다. 특히 인내심도 부족한 데다 에너지까지 형편없는 나 같은 경우에는 더더욱 열량이 높은 간식거리는 필수이다. 하지만 배낭의 무게가 있으니 넘치도록 챙길 수는 없다.

얼마나 걸었을까, 넓은 셀숑Sershong 평원(넓은 계곡)이 나타난다. 세 시간가량 지나니 오른쪽으로 둥근 피라미드처럼 생긴 서쪽 사면의 강 린포체(카일라스)가 앞서가고 강니 초르텐(탑)과 오색 깃발이 휘날리는 달포체를 지나면서 신성한 강 ‘라추Lha Chu’도 길 옆으로 따라온다.

달포체(또는 Tarboche)는 티베트에 최초의 불교사원인 삼(쌍)예사를 건립한 파드마삼바바가 살아있는 나무에 오색 다르쵸(깃발)를 걸어놓은 곳이다. 달포Darpo는 깃발을, 체Che는 크다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 뵌교의 세력이 강한 강 린포체에서 파드마삼바바는 뵌교 세력을 굴복시키고 뵌교에서 다르쵸와 룽다, 뵌교의 주요 신들을 불교의 한 요소로 받아들인 의식이며 융합의 상징이다. 지금도 해마다 달포체에서는 붓다가 태어난 날, 새로운 나무를 세우고 타르쵸로 장식하며 그날의 의식을 성대하게 거행한다고 한다.

코라의 시작길을 오른쪽에서 강 린포체가 지켜보는 것 같다. 왼쪽에 흐르는 작은 강줄기 '라 추'

걷기에 급급하지만 않다면 13세기 괴창빠가 만들어놓은 첫날 코라는 충분히 아름다운 길이 펼쳐진다. 자연스럽게 오른쪽에 있는 보석처럼 말쑥한 강 린포체(카일라스)를 바라보며 걷다 보면 내가 걷는 행위는 트레킹이 아닌 이미 순례이다. 나도 ‘연꽃 속의 보석’이라는 뜻이 있다는 저들의 진언(mantra)을 따라 해 본다. “옴 마니 파드메 홈”

첫날은 강 린포체(카일라스) 모습을 많이 볼 수 있다. 날씨만 좋다면
산 기슭에 비둘기집처럼 달려있는 추쿠 곰파


왼쪽의 넨리Nyenri산 기슭에 미끄러지듯 걸려있는 Chuku곰파 부근에는 저렴한 가격으로 차와 컵라면을 파는 유목민 텐트가 있다. 점심 먹을 시간은 이미 지났지만 텐트에서 다른 순례자들처럼 티베트식 의자에 앉아 늦은 점심을 먹었다. 이미 비워진 보온병의 물을 채울 수 있으니 난로에서 펄펄 끓고 있는 뜨거운 물은 얼마나 반가운지, 천막은 그야말로 순례자들에게 필요한 최소한의 쉼터이다.

강 린포체는 힌두교와 자이나교, 불교와 티베트 토속신앙인 뵌교의 성지이다. 힌두교 3 신중의 하나인 시바신과 그의 아내 파르바티가 살고 있는 곳이며, 불교에서는 세상의 중심인 수미산須彌山(고대 인도인들은 세상의 중심이 수메루Sumeru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이를 불교에서 수용, 소리 나는 대로 적은 것이다)이라 여기며, 티베트 뵌교의 교주가 하강했다가 하늘로 올라간 곳이며 또한 자이나교의 교주가 해탈한 곳이다.

해마다 여름이 시작되면 주변 국가의 순례자들이 국경을 넘는다고 한다. 특히 인도에서 들어오는 순례자들은 티베트 푸란 현을 지나 강 린포체까지 제일 가까운 우타라칸드 주 국경이 유일했지만 2015년부터 시킴주에 있는 나투라 패스Nathu La path 국경이 추가로 열렸다. 하지만 이곳은 국경을 넘어도 카일라스까지의 거리가 너무 멀다. 기원전 1,500년에서 시작해 1,000년경에는 이미 최초의 기록인 <리그베다>가 형성될 만큼 오래전에 완성된 힌두교와 기원전 6세기에 만들어진 불교와 자이나교를 생각하면, 2,000년 전에도 순례자들은 히말라야를 넘었을 것이다. 나귀나 말을 타고 혹은 걸어서.

예나 지금이나 더운 곳에서 살던 순례자들은 고도가 급격히 높아진 티베트에서 카일라스까지 찾아가는 것도 고단하겠다 싶다

신성한 강 '라 추'를 따라 걷는 길

오후가 되면서 맞은편에서 오는 순례자들의 숫자가 늘어난다. 멋진 중절모를 쓰고 알록달록한 오색 치마를 입거나 제법 차려입은 이들은 뵌교 신자들로, 계단처럼 보이는 날개 방향이 다른 만卍자가 새겨진 강 린포체 남벽 앞에서 기도를 올린다. 하늘에서 뵌교의 교주가 강 린포체 남벽 계단을 통해 세상에 내려왔다는 곳이다.

디라푹 곰파를 조금 앞두고 걷는 길에서는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는 순례자들의 모습은 이미 지쳐있으며 쉬어가는 빈도도 잦다. 띄엄띄엄 짝을 지어 오체투지를 하는 티베트인들 곁을 지나칠 때는 미안한 마음에 발끝에 힘을 모으고‘짜시델레~’목례를 하며 먼지가 나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지나온다. 그러나 1박 2일에 순례를 대부분 마친다는 티베트인들은 역시 발걸음이 가볍다. 티베트인들은 강 린포체를 만다라 궁으로 생각하고 걷는다고 한다. 만다라는 진언, 다라니 등과 함께 티베트 불교의 수행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상징적인 요소이며 하나이다. 뒤따라오던 젊은 티베트 남자가 내 발걸음이 무거워 보였는지 내 등에 짊어진 배낭 아래를 손바닥으로 슬쩍 들어본다. 고마운 마음에 “짜시델레~”,“투제체~”

뵌교 순례자들이 기도를 많이 올리던 곳, 만자가 역으로 새겨진 것처럼 보인다.
디라푹에 가까워지면 고도가 약간 올라간다.
다르쵸로 장식한 다리를 건넌다. 디라푹 곰파로 향하는 순례자들

1,580미터의 직벽이 서있는 강 린포체의 북벽 아래 캠프에 도착했다. 어쩌면 디라푹 곰파에서 숙박할 수도 있겠다 생각했지만 숙소의 고도는 사원보다 훨씬 높지만 오히려 사원이 아니어서 좋다. 어둠이 드리울 즈음에야 하루 종일 모습이 안 보여 걱정했던 일행 두 명이 캠프로 합류했다. 강 건너에 위치한 디라푹 곰파가 한참 낮아 보이니 숙소의 고도가 장난이 아니다.

디라푹 사원은 코라를 완성한 까규파의 승려 괴창빠Gylwa Gotsangpa(1189~1258)가 수행한 동굴에 지어진 사원으로 ‘암 야크 뿔 동굴’이란 뜻이다. 강 린포체 입구에서부터 괴창빠 앞에 어디선가 나타난 암 야크(디)가 괴창빠를 동굴(푹)로 인도하여 들어갔더니 동굴 안에 야크는 없고 어지럽게 난 뿔(라)의 흔적과 발자국들이 흩어져있었다는 것이다. 신령한 무엇인가가 괴창빠를 인도한 것이다.

힌두교와 자이나교, 불교와 뵌교든 간에 티베트 땅을 변화시킨 가장 중요한 종교에 얽힌 인물과 사상 그리고 의미는, 나무 한 두 그루의 줄기에서 뻗어나간 가지처럼 다양하다 못해 산만하기까지 하지만 이들은 깨달음이란 하나의 목표와 뿌리를 가지고 있다.

깨달음과 해탈에 관해 관심조차 없는 나는 이들의 어려운 종교를 들여다보는 것만으로도 많은 인내를 요한다. 하지만 그들이 지나왔던 기나긴 시간들을 존중한다. 오늘은 내가 걸어왔던 땅을 지나갔을 디라푹 곰파의 고승 괴창빠만 떠올려도 족하다.

10월에 해발고도 5,000미터가 넘는 곳이니 준비한 옷을 다 입어야 할 만큼 춥다. 세수는 언감생심 꿈도 못 꾼다. 을씨년스러운 주방에 가서 돈을 주면 뭔가 먹을 수 있겠지만 주방을 찾아왔다 갔다 하는 것도 고산에서는 아주 위험한 에너지 낭비다. 준비해 간 죽으로 저녁을 때우고 물수건으로 대충 닦고 핫 팩을 붙인 침낭 안으로 들어가니 꼼짝하기가 힘들다. 다행히 고산증세가 없다. 개인마다 다양하게 찾아오는 고산증은 아무리 많이 준비하고 조심하고 또 조심해도 부족하다.

이곳은 강 린포체의 북벽 사면, 서구 불교학계의 대표적인 지성인 라마 고빈다Lama A. Govinda(1898~1985)는 강 린포체(카일라스)를 순례하면서 “세계의 행복을 기원할 때 가장 효과적인 곳이 바로 여기”라고 말했다고 한다. 세계의 행복까지 빌기에 내 그릇은 너무 작아. 그저 먼지 같은 작은 소망 하나 품고, 문밖까지 와있는 별들이 마음을 두드리는 밤.

코라 2일째-21 km

별들만이 움직이는 강 린포체의 하늘, 어둠을 뚫고 숙소 주방에서 희멀건 연기가 빠져나온다. 작은 전구 하나에 티베트 난로가 있는 주방의 긴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낯선 서양인 동양인들이 묘한 동료 감으로 서로 마주 앉았다. 흰 죽 한 그릇 들이키고 습관처럼 보온병에 뜨거운 물을 집어넣었다. 오늘은 처음부터 오르막길을 가야 하니 내가 긴장한 만큼 등산화 끈도 적당히 조여진다. 오늘도 어제와 비슷한 거리지만 5,660미터인 될마라를 넘어야 한다. 많은 사람들이 이곳에서 고산증으로 포기를 하는 곳이며 다르첸으로 돌아가는 지프차를 구하는 시점도 중요하며(산을 오르기 전) 구한다고 해도 경비도 꽤 비싸다고 한다. 건강과 목숨이 돈보다 중요할까.

9명의 일행이 낙오 없이 일단은 출발했다. 다들 밤새 안녕하겠지 하면서 서로를 생각하는 것이지 어두운 새벽에 출발하니 얼굴을 봐도 남의 사정을 살피기는 쉽지 않다. 서서히 동이 터오면서 아침 햇살이 드리워지기 시작한 강 린포체의 얼굴이 천천히 점점 더 크게 웃는 것처럼 느껴진다.

강 린포체(카일라스), 아침햇빛에 웃는모습처럼 느껴졌다.


오르막길을 오르면서 가끔 뒤를 돌아보며 일행들의 모습을 확인했지만 어찌 된 일인지 일행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가이드 몐빠도 뒤에서 다른 일행들과 같이 오고 있으니 길은 외길, 길지 않은 시간에 될마 고개까지 고도 430미터 이상을 올려야 하며 어쨌든 우리는 무사히 될마 고개를 넘어야 한다. 한걸음 오를수록 산소는 희박해지고 산소를 끌어들이려는 깊은 호흡은 더욱 거칠어지며 서로의 거친 호흡소리를 들을 수밖에 없는 같은 길에 있는 낯선 사람들은 무언중에 서로를 격려한다.

하지만 여유는 그만, 호흡이 너무나 곤란해진 어느 시점부터는 “100미터만 가서 쉬자”아니 “10미터만”, “파란 바지 중국 남자 앉아 있는 곳까지만”, “3미터만 가자”그러면서 걷다가 5,500미터 고도를 확인하고 난 뒤에는 그저 3걸음씩 걷고 나서 호흡은 3분 이상은 한 것 같다. 타르쵸로 뒤덮인 될마라 정상 능선에서는 걷기보다는 쉬는 시간이 더 많다. 누구나 할 것 없이 한두 걸음 걷다가 한참을 쉬기를 반복한다.

몇 시간이 지났을까, 시계를 보거나 사진을 찍는 여유도 생기지 않는다. 다르쵸가 알록달록 고개를 덮고 있는 될마 언덕은 독수리 못지않게 위엄을 보이는 티베트 까마귀들이 날아다니는 까마귀들의 동네, 고개를 지나는 생명들이 버리고 간 산소통들이 모여 있는 죽음의 축제장이다. 산자와 죽은 이들의 머리카락이 나뒹구는 천장대를 지나고, 외투 하나가 바위에 사람처럼 앉아 있는, 업(까르마)을 높고 간다는 업경대를 지난다. 한 발짝을 오를 때마다 하늘은 을씨년스럽게 변하고 기온은 내려가며 눈발까지 날린다. 정상 가까이에 다다르니 도사를 닮은 승려 한 분이 뭔가를 읊어댄다. 오늘은 특별한 날인지 고개에서는 많은 수의 티벳탄들이 음식들을 놓고 제를 지내는 분위기다. 산을 덮은 타르쵸의 색깔이 유난히 산뜻한 것이 다르쵸를 새로 장식하는 의식을 오늘 마쳤을지도 모르겠다.

들리는 말로는 주로 여름철에 이곳을 찾은 많은 인도인 순례자들은 어 고개를 넘다가 죽기도 한다는데, 그들 중에는 이곳에서 생을 마감하기 위해 강 린포체를 찾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스친다.

천장대 위를 날아다니는 까마귀들, 까마귀는 티베트에서 길조다.
될마 고개에서

그리고 티베트에서 어디든 존재하는 타라를 다시 만났다.

13세기의 승려 괴창빠는 코라를 완성하기 위해 강 린포체 주변을 동분서주 가보지 않은 길이 없을 것이었다. 그는 늑대 21마리의 도움으로 이 험한 언덕을 올랐으며 정상에 오르자 늑대 무리는 하나의 바위로 변했다고 한다. 21마리의 늑대는 괴창빠를 인도해준 타라Tara여신이었으며 그녀의 티베트 이름은 될마Drolma이다.

타라를 처음 본 것은 오래전 몽골의 울란바트르 자나바자르 Zanabazar미술관에서 만난 녹색 타라이다. 단순히 이름과 어울리는 아름다운 자태만으로 한눈에 반했으나 곧 그녀를 잊었다.

그리고 티베트에서 어디든 존재하는 타라를 다시 만났다.

타라Tara는 산스크리트어 이름으로 힌두교에서 불교로 들어오면서 타라 보살이 되었다. 티베트어로는 될마Drolma로 관세음보살의 아내이다. 관세음보살의 눈물에서 피어난 연꽃에서 나왔다고 한다. 즉 관세음보살의 여성적인 모습의 화현이라고 볼 수 있으며 중생들과 가까워 티베트에서는 관세음보살에 못지않게 대중들에게 인기가 많다. 자연스럽게 될마(타라)는 티베트 여자 이름으로 가장 선호하는 이름 중의 하나라고 한다.

괴창빠를 도와준 늑대들이 바위로 되었다는 곳 5,660미터 될마Drolma 고개La에서 아침에는 남자 친구(편)와 같이 오다가 이제는 혼자가 된 중국 여자가 사진을 찍어 달랜다. 그녀 덕분에 나도 정상에 오른 사진 한 장 찍을 수 있었다. 될마라를 넘는 일은 누구나 혼자 몫이다. 친구이거나 연인 혹은 부부라도 같은 페이스를 유지하기란 매우 어렵기 때문이다.

정상을 지나면 바로 가파른 내리막길이다. 부족한 산소를 끌어들이기 위해 거친 호흡을 그만 해도 되니 긴장감이 풀어진 내리막길에서는 더욱 조심해야 한다. 한참을 내려가니 먼저 내려간 남편이 기다린다. 얼마나 반가운지, ‘먼저 내려갔겠지 “ 생각했지만 외길이라 해도 낯선 길에서 가이드도 없이 동행이 보이지 않으면 걱정이 된다. 일행 9명은 새벽 출발 후, 될마라를 넘을 때까지 가이드 몐빠를 포함해 아무도 만나지 못했다. 일단은 우리 두 명만 확인이 된 것이다.


가우리 쿤드Gauri Kund


요기를 하기 위해 바람을 막아주며 햇살이 비치는 곳 가우리 쿤드Gauri Kund를 바라보며 앉았다. 여름에 오면 녹색 타라의 몸처럼 에메랄드그린의 호수를 볼 수가 있다고 했다. 10월의 호수는 납덩어리처럼 하얗게 얼어있다. 실제로 가우리는 하얀 모습의 파르바티를 부르는 말이니 하얀 연못이라는 말이 맞다

힌두교 신화에 따르면 시바신과 그의 아내 파르바티는 그를 태우고 다니는 소 ‘난디’와 카일라스에 살고 있다고 한다. 타라 고개를 넘어오면 나타나는 둥근 호수를 가우리 쿤드라고 하며 그곳은 파르바티의 수행처이며 전용 목욕탕으로 그녀의 아들 가네샤가 태어난 곳으로 당연히 중요한 힌두교의 성지다.

“어느 날 시바의 아내 파르바티는 목욕을 하다가 그녀의 몸에서 나오는 때로 아이를 만들어 생명을 불어넣고 가네샤라고 이름을 지었어. 시바는 아내 파르바티를 만나기 위해 가우리 쿤드에 왔는데 어린아이 하나가 길을 막는 것야. 누구냐고 물으니 파르바티의 아들이라는 대답에 화가 머리끝까지 난 시바는 그 자리에서 가네샤의 머리를 날려버리고 말았어. 이를 본 파르바티의 반격에 급한 나머지 가장 가깝게 지나가는 생명의 머리를 가져와서 붙인 것이 코끼리의 머리였던거야. 그것이 인도에서 가장 사랑받는 신중의 하나인 코끼리 머리에 아이의 몸을 가진 우리가 알고 있는 가네샤의 모습이야.

‘가우리 쿤드’ 이야기를 나누면서 둘이 앉아서 비스킷을 먹고 있으니 동네 새들이 무작정 우리 앞으로 다 모여든다. 될마라를 넘었다는 기쁨에 들떠 노닥노닥 시간을 보내버렸다.

하얗게 얼어붙은 가우리 쿤드

내리막길은 넓은 시야와 함께 매우 아름다운 풍경이 펼쳐진다.

쉬엄쉬엄 남은 간식으로 에너지를 보충해가며 바위에 앉아서 사과 한 알을 깨물어먹는 순간, 가이드 몐빠의 목소리가 들린다. 새벽에 헤어지고 오후가 되어서야 얼굴을 보니 이렇게 반가울 수가, 그러나 몐빠가 가지고 온 소식은 오 마이 갓! 20대에서 60대 대원까지 5명은 고산증으로 지프를 타고 다르첸으로 철수하고 남은 두 명은 올라오고 있다고 한다.

20대 일행 두 명은 제외하고 나머지 5명은 히말라야와 고산등반을 많이 다닌 산악 베테랑들이다. 결과는 산에는 문외한이어서 항상 초보라고 생각하는 우리 둘과 암벽을 하시는 한 분과 등산 베테랑 한 분 이렇게 4명만 될마라를 넘은 것이다. 산악인이거나 전문 산악인에 가까운 그들이 볼 때는 어이없지만 고산증으로 인해 이처럼 의외의 결과가 만들어졌다.

몐빠는 조금만 더 내려가면 흰색 텐트가 있으니 그곳에서 기다리겠다고 내려간다. 그때까지도 어려운 것은 이제 끝이라고 생각했다. 약 1킬로미터가 못 미치는 하산길은 여유를 즐기며 내려가기에 좋은 거리였다. 조심하지 않으면 다소 위험한 내리막길이었지만.

Shabje Drakthok 휴게소(유목민 텐트)에 도착해 될마라를 넘어온 4명이서 물을 부어 라면을 먹는 순간, 이곳에서 오늘 우리가 묵을 숙소인 주툴푹 곰파까지는 10킬로미터(나중에 알아보니 11킬로미터였다)가 남았다고 한다. 에너지를 다 소진한 상태에서 오후 2시가 넘었는데 다시 10킬로미터를 가야 한다고 생각하니 눈앞이 캄캄하다.

종추(강)가 가운데를 흐르는 평지를 걷지만 이미 무거워진 두 발은 의욕과 힘을 잃었다. 이제 거친 호흡이 필요가 없는 해발고도 4,900미터에서 4,800미터 정도의 길에서 될마라를 넘을 때도 느끼지 못한 무기력감까지 밀려왔다. 지나가는 오토바이 한 대가 지나가니 여행을 할 때 가끔 도움을 받았던 히치하이킹을 하리라 마음먹었다. 하지만 이것도 보이지 않은 누군가와의 약속, 몇 대의 오토바이와 지프차가 먼지를 날리며 지나갔지만 뒷모습만 바라본 채 결국은 그들을 향해 손을 들지 않았다. 어둠이 내리는 시간, 울상이 되어 드디어 주툴푹 곰파에 도착했다. 가장 힘들다고 생각한 될마라를 넘는 것보다 유목민 텐트 이후 11킬로미터의 거리가 나를 가장 시험에 들게 한 것이다.

코라 3일째 -12 km

주툴푹Zutulpuk 곰파(4,835미터)를 찾아 길을 걷다 보면 넓은 계곡의 양쪽 절벽에는 무수히 많은 수행자들의 동굴들이 숭숭 뚫려있다. 암벽등반으로 올라가지는 않았을 터, 좋았던 시절에는 밥을 넣어주기 위해 절벽마다 긴 사다리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었을 것 같다.

인도의 학자인 나로파(1016~1100)와 나로파의 스승인 틸로파(988~1069)로 이어진, 학자이며 역경사인 마르파(1012~1097)는 티베트 까규파의 초조이며 밀라레파는 그의 법맥을 발전시키고 꽃 피운 까규파의 대표적인 고승이다. 강 린포체 지역은 주로 까규파 승려들이 수행한 지역으로, 주툴푹 곰파는 티베트 최고의 시인인 밀라레빠 Milarepa(1052~1135)가 수행한 사원으로 뵌교 사제와 한판 승부를 벌여 제압시킨 곳이기도 하다. 밀라레파는 서부 티베트에 세력으로 남아있던 뵌교를 굴복시킨 것이다.

주툴푹 곰파, 사원 왼쪽은 순례자들의 숙소. 오른쪽에 밀라레파의 동굴이 있다고 한다.


스승을 붓다만큼 중요하게 생각하는 티베트 불교는 스승에 따라 크게 4개 종단으로 분류한다. 티베트에 처음으로 사원을 세운 파드마삼바바를 스승으로 하는 닝마파와 마르빠를 스승으로 하는 까규파, 13세기 쿠빌라이 시절 막강한 세력을 떨쳤던 샤카파와 총카파가 스승인 겔룩파이다.

까규파는 검은 모자를 써서 흑모파라고도 한다. 까규파의 수장은 까르마빠로 달라이 라마, 판첸 라마와 더불어 티베트 불교의 대표적인 지도자이다.

까규파의 총본산은 티베트에 있지만 중국의 침공을 예견한 16대 까르마빠는 1959년 부탄을 거쳐 시킴으로 피신하여 룸텍 사원을 재건하고 공식적인 거처로 삼았다고 한다. 룸텍 사원이 까르마빠의 본산이 되는 셈이다. 현재 17대 까르마빠는 14세의 어린 나이로 2,000년 1월 중국의 삼엄한 경계망을 피해 히말라야를 넘어 다람살라의 달라이 라마에게 피신한 오겐 틴레 도르제(1985~ )이다.



주툴푹 곰파, 해가 뜨려면 두세 시간 이상은 있어야 하는 새벽 7시, 하늘에 손을 올리면 별 하나 잡을 수 있는 시간이건만 가이드 몐빠는 랜턴 하나 들고 100미터를 달리듯 앞서간다. 어둠 속에서 낙오할 수 없지, 뒤 따르는 4명의 발걸음도 깃털같이 가벼운 몐빠 못지않다.

어슴푸레 동이 터오기 시작하니 오체투지를 하는 사람들이 하나둘씩 보이기 시작한다. 강 린포체 오체투지를 하는 사람들은 대체로 부부가 같이 하는 경우를 많이 보았다. 내 길 가기에 바빴던 이틀 전에 비해 부담이 없으니 오늘은 오체투지 하는 이들을 살필 수 있는 여유가 생긴다. 강 린포체 코라를 오체투지로 돈다는 것은 생업을 길게는 수십일 일정기간 접는다는 뜻이다. 여유가 있는 사람들이 이들을 돌보는 것은 티베트인들의 의무이자 예의라고 한다. 나도 마음을 담아 티베트인처럼 이들에게 작은 지폐 한 장 건넨다.

이들의 오체투지도 우리처럼 곧 끝나길 바라며
3일째 걷는 길에는 타르쵸도, 마니석도 많아 기분이 좋아진다.
마니석, 마니란 보석이란 뜻이다.


마지막 날의 협곡과 대지는 아침 햇살을 받아 금색으로 빛나며 알록달록 장식한 타르쵸와 마니석들이 코라 길을 축복해준다. 협곡을 지나면 바르카 평원이 나오며 사흘 전에는 그토록 누추해 보였던 다르첸이 반가운 모습으로 다가온다.


멀리 아스라히 산 아래 보이는 마을이 다르첸이다.
다르첸 시내, 이렇게 삭막한 모습의 다르첸도 2박 3일 코라를 돌고와서 다시 보니 너무 반가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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