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라쉬트
테헤란에서 라쉬트
해발 1200m 고원에 위치한 테헤란에서 북쪽으로 달리면 카스피 해가 나온다. 카스피 해를 보러 간다는 생각에 마음은 기대만발이다. 가는 길은 몇 시간째 완만한 경사로를 계속 내려가고 있는데 4시간여를 지나니 평지에 가까워졌는지 차 안의 기온도 점차 후덥지근해지는 것이 습도가 높은 우리나라의 여름 날씨다. 하늘은 비라도 오려는지 잔뜩 찌푸려있다. 테헤란에서 출발한 지 5시간, 길란주의 주도 라쉬트 시내로 접어드니 사람들도 제법 많고 분주하게 오가는 모습들이 상업이 발달한 도시 같다. 도심에 도착하니 비가 추적추적 내려주는 것이 거의 내 고향 한국의 모습이다.
라쉬트 Rasht는 이란의 카스피해 연안에서 가장 큰 도시이다. 사파비왕조 때는 비단과 섬유산업으로 호황을 누렸던 도시로 지금도 카프카스 지역과 러시아를 대상으로 하는 무역이 활발한데 가까운 반다르에 안잘리 Bandar-e Anzali항을 이용한다. 게다가 여행객들이 많이 찾는 마술레를 가기 위해서는 라쉬트를 꼭 거쳐야 한다.
기온이 높아도 건조해서 그늘만 들어가면 시원한 테헤란과는 달리 이곳은 5월인데도 한여름의 장마철처럼 후덥지근하다. 라쉬트는 이란에서 논농사가 발달한 곳으로 기후는 우리나라의 기후와 비슷하다. 카스피해와 테헤란 사이에는 알보르즈 산맥이 가로막고 있는데 산맥에 가로막혀 카스피해 쪽 사면은 비가 많은 반면 테헤란 이남 이란고원에는 비가 거의 없는 현상이 생긴 것이다.
그래서 높은 산에 가로막혀 생긴 열대우림 같은 습지가 생길 수밖에 없는 환경이 형성된 곳이 람사르 습지지역이다.
검은 모래의 카스피해와 자원전쟁
바다를 동경하는 것은 어느 누구에게나 있는 그리움이랄까, 내친김에 제일 급했던 카스피 해를 봐야만 했다. 반다르에 안잘리 Bandar-e Anzali비치 쪽으로 향했다. 카스피해를 얼마나 많이 상상해왔던가? 비가 올 듯 말 듯 한 날씨이니 하늘도 바다도 우중충하지만 그렇다고 카스피해가 아니던가, 진흙처럼 고운 검은 모래의 비치가 길게 이어져있다. 그렇다. 석유와 천연가스가 나오는 카스피해는 중동과 서시베리아에 이어 세계 3위의 매장량을 가지고 있다.
이곳의 맞은편에 있는 아제르바이잔에는 불타오르는 땅이 있는가 하면, 석유가 고여 있는 웅덩이도 있고, 땅이 출렁거려 누르면 검은 석유가 배어나오는 땅도 있지만 이 곳의 비치는 예사롭지 않은 검은 모래이다.
카스피해는 시계방향으로 카자흐스탄, 투르크메니스탄, 이란, 아제르바이잔, 러시아에 해안선이 접해 있다. 아직도 호수로 할 것인지 바다로 할 것인지의 협의는 계속되고 있다. 바다로 볼 경우 러시아와 카자흐스탄이 긴 해안선을 차지하고 있는 관계로 유리하며 호수인 경우에는 해안선 길이와 상관없이 접한 5개 나라가 똑같이 나누어 갖는 것이다.
미국과 친하지 않은 러시아와 이란 두 강대국이 있어서 미국의 세력이 카스피 해까지 와 있을까 싶지만 이미 미국은 이 곳에서의 자원경쟁을 하고 있었다. 미국과 유럽은 러시아에 의존하는 자원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아제르바이잔의 바쿠에서 조지아의 트빌리시를 거쳐 터키의 세이한항까지 연결되는 BTC 송유관을 완공시켰다.
아제르바이잔에는 현 대통령의 아버지인 전 대통령 사진이 도시마다 즐비하다. 도시의 공원은 모두 현 대통령 일함 알리예프의 아버지인 전 대통령의 이름을 딴 공원이다. 믿고 싶지 않지만 대통령의 사저에서 집무실까지 일반인이 지나다니는 횡단보도가 없는, 세습대통령 체제를 유지하는 기막힌 곳이기도 하다.
미국과 유럽은 그런 나라의 엉덩이를 두드려주면서 송유관 건설을 했던 것이다. 철권통치나 독재체재여야만 자신들의 입맛대로 주무를 수가 있는 것이다. 당연히 송유관에 대한 지분은 미국과 영국이 가지고 있다. 이 송유관은 자원 강대국 러시아 땅을 거치지 않는 세계 최장의 송유관(1760Km)으로 2005년 완공되어 카스피해의 원유를 서방세계로 공급하고 있다. 중국은 또 어떤가, 카스피해에서 석유 매장량이 제일 많은 카자흐스탄에 이미 지대한 공을 들이고 있다.
검은 긴 비치에는 드문드문 가족끼리 이른 카스피해를 즐긴다.
마슐레 Masuleh
마슐레는 라쉬트에서 남서쪽으로 대략 60Km에 위치한다. 해발고도 1,050m의 Alborz 산맥 기슭에 형성되어있는데 마을 자체가 100m 정도의 경사에 이루어져 있다. 10세기경 시작되었다고 보는 이 마을은 1006년 이곳에서 북서쪽으로 6Km 떨어진 최초의 마을에서 이웃마을들의 공격과 전염병인 폐스트를 피해서 이주했다.
Alborz 산맥 기슭이어서인지 물이 매우 풍부해 보인다. 마을길로 접어들자 수로를 통해 산에서부터 콸콸 흐르는 풍부한 물이 길손을 먼저 맞아준다. 마슐레는 이란에서도 유명한 휴양지인 듯 엠티를 온 대학생들이 보인다.
마을의 주차장 입구에서 왼쪽으로 올라가서 마슐레 폭포를 지나 오른쪽으로 접어들면 어도비 adobe양식으로 지어진 집들이 계단으로 오르면 집이 나타나고 마당 아래는 다른 집 지붕이다. 시간의 두께처럼 단단해 보이는 지붕엔 굴뚝 겸 통풍구로 사용하는 듯한 지붕 구조물들이 제각각 다르다.
지붕 위에는 젊은 부부 두 가족이 둘러앉아 차를 마시며 물 담배를 피우고 있다. 눈을 마주치니 내려오란다. 늘 가족단위로 움직이는 이란인들은 이유야 어쨌든 보기 좋은 모습이다.
가족을 굴레라고 생각했던 적이 있었다. 가족은 어떤 이에게는 벗어나고픈 굴레이지만, 다른 이에겐 바람을 막아주고 방패가 되어주는 포근한 품속이다.
5월의 따가운 아침 햇살 아래 따끈한 차이 한잔, 외부인에게 지나친 환대를 하는 사람들인지라 차 한 잔 대접받고 바로 일어서니 이내 서운한 기색을 비친다. 20여일 이란 여행을 하면서 느낀 이란 사람들은 따뜻함이 뼛속까지 배어있는 사람들임에 틀림없다.
람사르 Ramsar
람사르는 여행 계획에는 없었지만 즉흥적으로 욕심을 내어 가보기로 했다. 람사르는 1971년 습지 보호를 위한 국제 협약이 개최된 곳으로 2008년 대한민국 창원에서도 회의가 열렸던 터라 팔레비 왕의 여름 별장도 있다고 하니 볼 것도 없는 썰렁한 라쉬트 시내를 돌아다니는 것보다 나을 것 같았다.
차량을 빌려 출발을 했지만 드라이버는 길을 모르고, 급하게 결정했던 터라 론리플래닛마저도 확인하지 못하고 출발한 것이 화근이었다. 가다가 묻고 또 묻고.... 람사르해변까지 도착은 했지만, 엘보르즈산맥의 장관을 상상할 수 있는 어마어마한 먹구름이 덮여있는 어둠만 보고 와야 했다. 굳이 얻은 것이 있다면 람사르 습지는 카스피해와 바로 맞닿아있는 람사르시에 존재한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