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쉬트에서 잔잔으로
라쉬트에서 3시간 30분 정도 버스를 타고 북서쪽의 도시 잔잔에 도착했다. 테헤란에서 북서쪽으로 340km에 위치하는 잔잔 Zanjan은 잔잔 주의 주도이다. 사산왕조의 아르다시르 Ardashir 1세(224–242)가 세운 도시인 걸 보면 역사가 만만치 않은 고도이다.
짐을 내려놓자마자 달려 나온 시내는 말 그대로 잔잔하고 조용한 도시이다. 사실 이곳 사람들은 어디에서나 밤에 쏟아져 나온다. 낮에 돌아다니는 사람들은 여행자이거나 바쁜 상인들 뿐.
시내 중심가에 있는 라카트쇼르 카네 Rakhatshor (traditional laundry house)는 카자르 왕조 시절의 빨래터 박물관이다. 카펫과 직물공업이 발달했던 잔잔에서 염색한 직물을 빨던 장소이다. 직물 공업이 발달하려면 도시 옆에는 강이나 수로가 꼭 필요하다. 그렇다면 잔잔이 예로부터 수량이 풍부한 곳이라는 말이기도 하다.
깊은 지하로 내려가 보니 카레즈를 이용하여 흐르는 물에 직물을 계속 헹궈야 하는 작업을 하기에 적합한 구조로 만들어져 있다. 직물만 헹궜을까, 동네 아낙들이 틈틈이 빨래를 하러 가는 발걸음도 퍽 즐거웠을 것 같다.
빨래터 옆에는 시신 박물관이 위치한다. 잔잔 근처에 있는 Chehr Abad 수금 광산을 채굴하다가 2800년 전쯤으로 추정되는 시신 4구가 발굴되었는데 박물관에 안치시켰다.
카자르 왕조시절의 라카트쇼르 카네/ 잔잔의 자메 모스크
이란의 바자르에는 대체로 구리로 만든 제품들과 수준 높은 수공예품들이 많은데 잔잔의 바자르도 마찬가지이다. 전통신발도, 은제 접시도 멋진 제품들이 너무 많다. 게다가 갖고 싶어 질 정도로 섬세하게 만들어진 예쁜 칼들이 많다. 상인의 말로는 다른 공예품들도 뛰어나지만 잔잔의 칼이 이란에서 최고란다.
이란에서는 모든 생활이 바자르를 중심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을 보여주듯 차이하네, 모스크, 하맘 등 필요한 생활시스템이 바자르와 연결이 되어 있다. 바자르와 연결되어 있는 찻집은 레스토랑까지 겸하여 운영하는데 대부분의 찻집에서는 여성을 찾아보기는 쉽지 않다. 이란에서 찻집은 물 담배를 피우거나 차를 마시면서 사교활동을 하는 남자들의 공간이지만 여행 내내 다녔던 도시의 찻집에서 거절을 당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바자르 근처에서 호텔을 가기 위해 정류장에 서 있으니 주변에 대학이 있는지 학생들이 갑자기 많아진다. 버스에 올라타니 버스 뒤쪽엔 검은 옷의 여학생들이 호기심에 찬 눈으로 바라본다. 앞쪽에는 남자들이, 뒤쪽에는 여자들이 탄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무심코 앞으로 탔다가 뒤로 이동했다. 빛나는 눈빛들의 세례를 받으며 뒤쪽으로 가니 터지는 웃음으로 환영해준다. 물어보니 대학생이란다.
퍼붓는 질문 공세는 여기서도 마찬가지, 대답도 다 듣지 않고 이어지는 적극적인 질문들은 정말 난감하다. 호텔 앞에서 내리려고 하자 한 학생이 자신의 폰에 있는 이민호의 사진을 보여준다. 이민호를 사랑한단다.
술타니예 돔 Dome of Soltaniyeh
술타니예Soltanieh는 잔잔에서 동쪽으로 43Km로 위치한 곳으로 14세기 몽골 일칸국 Ilkhanate(1256~1335/1353)의 마지막 수도(1306~1335)였던 곳이다. 잔잔 지역에서 제일 중요한 볼거리가 있는 곳이기도 하다.
잔잔에서 테헤란 쪽으로 하늘에는 먹구름이 장막을 드리우고 있지만 직선으로 뻗은 길은 쾌적하기까지 하다.
30여분, 도시 가까이 가니 술타니예 돔으로 더 많이 부르는 올제이투Oljeitu(Sultan Mohammad Khodabandeh,1304–1316) 칸 영묘의 푸른 돔은 하늘보다도 더 짙은 푸른빛을 띤다.
술타니예 가는 길에 만난 잔잔의 아름다운 다리/ 술타니예로 가는길에 만난 먹구름과 빛, 빗방울이 한 방울씩 떨어지고 있었다
외벽의 화려함은 사라졌지만 여전히 장엄한 술타니예 돔 엄청난 크기의 돔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파이앙스 채색타일로 장식하였다/ 술타니예 돔 옆의 시설물들의 폐허
이스파한의 자메 모스크는 841년부터 현재까지 시대별로 표현된 이슬람 건축양식의 발달을 보여주는 건축물이다. 돔 설계의 원형으로 알려진 자메 모스크의 이중 셀(double-shell) 구조의 돔은 자메 모스크에서 혁신적으로 처음 시도되었다. 이후 자메 모스크의 돔은 모스크 설계의 본보기일 뿐 아니라 각 지역의 건축물들에 영향을 미쳤다.
일 칸 국의 건축물로 온전하게 남아있는 유일한 건물인 술타니예 돔(1304~1313)은 자메 모스크에서 시작된 이중 쉘 돔으로 지어진 것이다. 엄청나게 커 보이는 높이 약 49m(때론 50/51m 이상이라고도 한다)의 건물은 200톤으로 추정하는 돔의 무게를 지금까지 견디고 있다. 이후에 만들어진 피렌체 성당의 돔, 이스탄불의 Hagia Sophia의 돔과 함께 지금까지도 벽돌로 만들어진 돔 중 세 번째로 큰 돔이다.
칭기즈 칸의 죽음 이후에 4개의 칸 국으로 세계를 하나로 묶었던 몽골은 세계 역사상 유례 없는 문화의 융합을 이루었다. 올제이투는 몽골어로 ‘축복받은’ 이란 뜻으로 칭기즈 칸의 훌라구 Hulagu가 원정으로 정복한 일 칸 국의 8대 칸으로 훌라구의 손자이다. 올제이투는 일칸국의 수도를 타브리즈에서 술타니예로 옮긴다. 수도 천도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그는 기독교인인 어머니의 영향으로 어릴 적에 세례를 받고 니콜라라는 세례명을 받기도 했는데 이유야 어찌 되었건 무슬림인 페르시아 여인과의 결혼은 올제이투가 무슬림으로 개종하는 계기가 되었다.
잔잔 지역을 다니다 보면 몽골의 평원을 다니는 것 같은 착각이 들기도 할 정도로 하늘의 구름과 넓게 펼쳐진 초원까지 몽골의 땅을 닮아있다. 말을 키울 수 있는 넓은 목초지와 풍부하게 생산되는 농산물이 수도 천도의 한 가지 이유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스코틀랜드 역사학자 William Dalrymple에 의하면 “올제이투는 술타니예로 수도를 옮기면서 세상에서 가장 크고 아주 위대한 도시를 지으려고 했다. 하지만 그가 죽은 후 모든 것이 파괴되어 지금은 사막처럼 되어버렸다”라고 말했다. William Dalrymple의 말대로 지금의 술타니예는 넓고 넓은 시야가 탁 트인, 올제이투의 영묘만이 뎅그러니 남아 그날의 영화를 말해준다. 남아있는 통치자의 웅대한 무덤은 가장 인상적으로 그를 떠올리게 만드는 것 중의 하나이다. 올제이투의 무덤은 웅장하다 못해 거대하다.
아름다웠던 장식은 사라지고 벽돌만이 보이는 외벽은 푸른 채색 타일로 장식한 장엄한 돔을 여전히 떠받치고 있다. 내부를 들여다보면 대공사 중인데 가림막 때문에 아름답다고 전해지는 내부의 화려한 타일 장식과 무카르나스는 볼 수가 없다. 그런대로 모자이크와 벽화들이 온전하게 남아있다. 타지마할 내부의 느낌을 떠올리면서 바라보면 구조가 상상이 간다. 술타니예 돔을 본 사람들은 “anticipating the Taj Mahal.” 이렇게 탄식했다고 한다. 조너선 블룸과 세일라 블레어가 지은 <이슬람 미술>에 의하면 ‘베네치아의 상인 마르코 폴로(1254~1324)는 중국을 가는 길에 이곳에 들러 이곳의 시장에 중국의 옷감과 인도의 향료, 쉬라즈의 면화와 카스피해의 비단, 걸프 만의 진주 등이 산더미처럼 쌓인 시장을 보고 일한국(이란)의 풍요로움을 실감 나게 묘사하기도 했다’라고 한다. 그야말로 당시는 유럽의 다뉴브강에서 고려까지 ‘팍스 몽골’의 시대였다.
내부를 들여다보면 수리중이어서 먼지로 뒤덮여 있지만 아름다운 문양은 그대로 남아있다.
탁테 솔레이만 Takht-e Soleiman
Takab이라는 작은 도시를 거쳐야만 갈 수 있는 곳으로 대중 교통수단으로 가기에는 많이 힘든 곳이다. 다행히 차를 빌렸지만 가는 길이 험하기는 정말 험하다. 초원에는 꽃들이 만발이다.
잔잔에서 3시간, 계속 고도가 높은 곳으로 오르다 차가 숨이 가쁜 듯 멈춘다.그저 멀리서 보면 흔한 폐허의 성채로 보이지만 가까이 가니면 제법 규모가 크다. 찾아오는 사람들의 수가 많지 않아서인지 음료수라도 팔 것 같은 건물의 문은 굳게 닫혀 있다.
탁테 솔레이만으로 가는 길/ 탁테 솔레이만 건축물들의 폐허 하늘에서 찍은 탁테 솔레이만의 성채와 호수/ 밖으로 흘러 나가면서 항상 같은 수량을 유지하는 크레이터 호수의 물
솔로몬의 왕좌란 뜻의 탁테(왕좌) 솔레이만은 솔로몬과는 관계가 없으며 아랍의 침략을 조금이라도 피해가기 위해 이슬람과 관계된 이름인 솔로몬이라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이곳은 페르시아 사산왕조 시절인 3세기 조로아스터교의 중심지였으며 온천수가 솟아나오는 화산의 분화구에는 지금도 샘물이 솟아나는 크레이터 레이크로 지름이 30m 정도의 넓은 호수엔 맑은 물이 넘실대며 양 쪽 성 밖으로 콸콸 흘러나간다.
화산이 폭발한 곳이니 불이 있는 곳이며 온천수가 솟아나는 것은 물이 있음이요, 흘러 넘치는 물은 생명의 원천인 땅으로 흘러내리며 높은 곳에 위치하니 바람은 얼마나 잘 불어줄까, 조로아스터교의 4가지 중요한 요소(물, 불, 땅, 바람)를 바로 만날 수 있는 곳, 이 곳은 탁테 솔레이만이다.
크레이터 레이크에서 양쪽으로 흘러나가는 물과 유네스코 명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