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페르시아 20화

속삭임도, 호탕한 웃음소리도, 흐느낌까지도......

# 테헤란 팔레비왕조의 궁 니여바런 팰리스와 사드아바드 콤플렉스

by 그루


오늘은 테헤란의 북쪽에 있는 팔레비 왕조의 정궁이었던 니여바런궁과 인근에 있는 사드 아바드 뮤지엄 콤플렉스를 가기 위해 테헤란 북쪽으로 향했다. 좀 멀긴 하지만 인근에 타즈리시 Tajrish 메트로 역이 있으니 가기에는 어렵지 않다.


니여바런 뮤지엄을 먼저 보고 나서, 테헤란 시민들의 휴식처인 다르반드산에 올라가 점심을 먹고 오후에는 사드 아바드 뮤지엄을 들렀다가 메트로를 타고 숙소로 돌아오는 일정이다. 오늘은 아무래도 발품을 많이 팔아야 될 것 같다.

Tajrish메트로역 부근은 꽤나 복잡하고 사람들의 왕래가 많은 곳이다. 거리가 짧아 보이지만 메트로에서 목적지까지는 택시를 이용했다.


Niyavaran Palace Museum


니여바런궁은 카자르 왕조(1794~1925) 때 만들었지만 팔레비 왕조 때에는 정궁으로 사용한 곳이다. 아름다운 정원의 장미들이 먼저 눈을 끄는, 그렇게 넓어 보이지 않는 뮤지엄에는 5개의 박물관과 갤러리 등 각종 부속건물들이 아늑하게 자리 잡고 있다. 꽃잎에 맺혀있는 이슬방울들을 닦아주듯이, 아침 바람은 기분 좋게 서늘하다. 이곳은 팔레비 왕조(1925~1979)의 영화와 몰락을 확인할 수 있는 곳이다.


카자르 왕조의 무능과 혼란을 틈타 근대화와 개혁의 기치를 내 걸고 쿠데타를 일으킨 레자 칸은 터키의 국부 케말 파샤처럼 왕조가 아닌 공화국을 만들려고 했다. 왕정을 고집한 보수파의 주장으로 왕조를 만들었지만 그의 통치기간은 끝없는 성직자와 보수와의 싸움이었다.

레자 칸은 성직자와 보수파를 견제하면서 근대화를 위해 학교를 만들고, 여성에게 굴레였던 차도르를 벗겼다. 그는 수 없이 많은 긍정적인 개혁을 시도했지만 부의 잘못된 분배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의 편에 섰던 잘못된 판단의 외교는 지속적인 근대화의 끈을 놓쳐버리게 만들었다. 연합군에게 폐위당한 레자 샤는 아들인 레자 팔레비에게 왕위를 물려주었다. 그의 아들 레자 팔레비는 1979년 이슬람혁명으로 무너지고 만다.




Ahmad Shahi Pavillion의 가늘고 우아한 흰색 석주가 눈에 띄는 파빌리온이 숲 속의 정자처럼 섬세하면서도 간결하다.

안으로 들어가면 각 나라에서 선물로 받은 물건들과 팔레비 가족의 일상 생활상을 볼 수 있다. 축재와 사치로 나라를 난국에 빠지게 한 팔레비 왕조의 모습은 어디 가고 대체로 검소한 모습이 어느 곳을 가든지 일관되게 나타난다.(오후에 갔었던 사드아바드 콤플렉스에서마저도)


이곳저곳 전시실을 돌다가 열서너 켤레 정도 전시되어 있던 지금의 디자인과도 별로 다르지 않은 파라왕비의 구두 중에 앞코가 뾰족한 북아프리카 모로코 스타일의 구두 한 켤레가 눈에 들어왔다. 문득 파라왕비가 북아프리카 이집트 출신이라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Ahmad Shahi Pavillion
모로코스타일의 파라왕비의 구두


니여바런 궁


니여바런 팰리스는 간결한 현대식 석조건물처럼 보인다. 하지만 페르시아의 건축은 원래 외관은 매우 간결한 것이 특징이다. 그로피우스나 미스 반 데어 로에 등 근대 서양의 건축가들이 페르시아의 건축물들을 경험하거나 봤더라면 현대인이 거주하는 현대건축으로의 이행은 적어도 수십 년 이상은 빨라졌을 것이다.

인디고 블루의 사방 대칭형의 아라베스크 무늬로 수를 놓은 것 같은 정면을 바라보며 들어가면 넓은 공간배치에 엔틱 한 분위기의 샹들리에와 화려하지는 않지만 격조 있는 가구 등이 단순하게 쭉 뻗어 올라간 늘씬한 기둥과 어우러져 멋진 분위기를 자아낸다.


이란의 경제가 호황이었을 당시를 대변하는 것처럼 피카소는 물론 샤갈과 앤디 워홀 등 유명 작가들의 작품이 많다. 옵틱아트의 거장 바자렐리의 작품도 다수가 소장되어 있다.


궁의 내부
사무실에서 일하고 있는 이라니안들


정원을 거닐다 보니 한쪽 건물에서 복원사들이 작업하는 사무실이 보인다. 흘깃거리는 관광객을 고맙게도 친근함을 표시하며, 일하는 중에도 타인을 내치지 않는 모습이 신선하다.


특히 니여바런 정원의 한 쪽 구석에 있어서 스쳐지나 갈 수도 있을 Jahan Nama Museum은 니여바런에서 발견한 백미, 서양의 근, 현대작가들의 작품들이 유럽의 어지간한 미술관보다도 많다.

여러 개의 박물관이나 뮤지엄을 보는 격이니, 커피도 생각나고 배가 고프다. 다르반드산 기슭에 멋진 레스토랑들이 있다는 말을 들은 터라 택시를 타고 다르반드산으로 향했다.


엘부르즈 산맥이 지나가는 테헤란은 여름에도 설산을 볼 수 있는 곳이다. 대도시의 바로 옆에 높은 산맥이 지나가는데 그 산맥의 기슭까지 아무런 자연보호장치도 없이 유원지처럼 끝없이 레스토랑과 상가들로 이어져 있다.

멋진 산의 녹지를 이처럼 훼손하는 이 도시를 이해할 수 없었고, 거의 물 값처럼 값도 싸지만, 낙후된 정유기술 때문에 저급한 기름을 사용하는 테헤란 시내의 심한 매연이 떠올랐다.


레스토랑의 양갈비


불편한 마음도 잠시, 다르반드산의 계곡에 자리 잡은 서양식 인테리어를 한 레스토랑에서 눈 딱 감고 테헤란의 부유층처럼 맛있는 점심을 감탄을 연발하며 후딱 해 치웠다. 다르반드산을 내려오는 길에 타즈리쉬광장의 아이스크림집에서 아이스크림을 먹고 제법 가까운 사드 아바드 뮤지엄 콤플렉스로 향했다.


Sad Abad Museum Complex


콤플렉스는 입구에 있는 사자 한 마리가 이란왕조의 왕궁임을 말해줄 뿐 바라보면 그냥 숲이 울창한 거대한 공원처럼 보인다. 이 안에는 18개의 작은 궁전들이 들어앉아 있는데 너무 넓어서 지도의 방향을 잘 보면서 가야만 자신이 가고자 하는 목적지를 찾을 수가 있다.


화이트 팰리스는 레자 샤가 1930년 8년에 걸쳐 지은 궁으로 매끈한 기둥이 간결해 보여 좋다. 현대적인 건축양식의 화이트펠리스의 오른쪽에는 레자 샤의 동상이 있다. 지금은 다리와 장화 부분만 댕그라니 남아 있는 모습으로 남았는데 이슬람 혁명 당시 군중들에 의해 잘려나갔다고 한다. 누군가는 흉물스럽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보기 나름, 내 눈에는 멋진 작품이다. 만약 잘려나가지 않았더라면 이런 예술적인 작품으로 보이진 않았을 것 같다.


레자 샤의 잘린 동상


오늘 하루, 팔레비의 시간이 지나간 방들을 그림자처럼 스쳐 지나간다. 속삭임도, 호탕한 웃음소리도, 흐느낌까지도 말없이 새겼을 카펫을 밟으며, 모든 걸 없애고 오직 서구만을 향한 개혁을 추진해서 옛날 페르시아의 영광을 실현시키고자 했던 팔레비 왕조의 외투만이 손님을 맞는 것 같다.


화이트 팰리스에서 그린 팰리스로 가는 길은 내 기억 속에 남아있는 잊을 수 없는 아름다운 산책길 중의 하나이다. 꽤 먼 길이어서 전동차를 타고 화이트 팰리스에서 그린 팰리스까지 갈 수도 있지만 울창한 원시림 같은 하늘까지 뻗어 있던 나무들과 이름 모를 꽃들이 도열해 있던 숲길을 걸어갔던 기억은 나를 줄곧 그 길에 머물게 해준다.


그린 팰리스는 사드아바드 콤플렉스에서는 물론 이란 내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궁으로 손꼽힌다. 아름다운 숲길에 취해서 걷다 보면 지나칠 수 있을 만큼 눈에 띄지 않으니 신경을 써서 걸어야 한다.


레자 샤가 7년 동안 공들여 재건축한 이 아름다운 궁은 남쪽으로는 테헤란 시내가, 북서쪽으로는 Alborz 산맥이 보이는 고즈넉한 언덕 위에 위치해 있다. 과연 말 그대로 어디에서도 보지 못한 단아한 모습의 녹색대리석으로 만들어진 작은 궁이다.


실제로 보면 대리석의 질감이 정말 아름답다.


희귀해서 구하기 힘든 녹색대리석은 '잔잔' 에서 가져온 것이며 정면과 기둥들은 '호라산'에서 가져온 대리석으로 꾸몄다. 궁의 사방을 둘러보면 이렇게 보아도 저리 보아도 너무 멋진 자태를 가지고 있다. 이라니안들이 자랑할 만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숲이 울창해서일까, 살짝 비라도 뿌릴 것 같은 날씨다.

너무나도 화려한 내부 인테리어 때문에 차분한 느낌의 외관이 더 와 닿는다. 화려함은 나를 감동시키지 못한다. 이란 왕궁을 나타내는 사자가 입구에 앉아있다. 너무나 공들여 퍼머를 한 사자의 머리웨이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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