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테헤란 내셔널 뮤지엄과 보석 박물관
박물관이나 전시장을 볼 때는 에너지가 훨씬 많이 필요하다. 두 발로 다 하는 것 같지만 알게 모르게 머리는 많은 것을 저장하고, 이미 알고 있는 정보와 열심히 연결시켜야 하기 때문이다. 요는 배가 고프니 먹어야 한다는 얘기다. 레스토랑 밖에 그려진 음식 그림만 봐도 침이 꼴깍꼴깍 넘어간다. 골레스탄 팰리스 주변은 우리나라 서울의 소공동이나 정동 정도 되는 위치여서 퓨전 레스토랑들도 많다.
피자집에 들어가 햄버거와 그라땅을 시켰는데 그라땅엔 치즈가 정말 많이 올라와 있다. 이란에서 늘 먹어왔던 닭다리나 양 갈비 같은 헤비한 고기를 안 먹으니 기분이 좋다. 오랜만에 고향 음식을 먹는 것처럼 게걸스럽게 비워냈다.
Teheran National Archaeological Museum
내셔널 뮤지엄이라고도 하는 테헤란 고고학 박물관은 페르세폴리스의 유물들을 볼 수 있는 곳이다. 말렉뮤지엄과 가깝지만 쉽게 길을 찾지 못해 조금 헤맸다. 일반인들은 내셔널 뮤지엄에 갈 일이 많지 않아서인지 행인들은 박물관 코앞에서도 알지 못했다.
이 곳에서 꼭 봐야 하는 것은 고대 페르시아의 유물들이다. 붉은색 벽돌 건물로 지어진 차분한 느낌의 뮤지엄 입구 왼쪽에는 키루스대왕의 인권선언이 새겨져 있는 원통형의 실린더가 전시되어 있다. 페르시아가 인류에 공헌한 것을 말하자면 바로 떠오르는 것만 해도 많다. 하지만 키루스실린더보다 더 대단한 것이 있을까.
키루스는 자신을 죽이려고 한 외할아버지였으며 메디아의 왕인 아스티아게스를 물리치고 메디아와 리디아를 차례로 복속시켰다. 바빌론은 백성들이 성문을 열어 키루스를 맞이하였다고 한다. 이로써 그는 기원 전 6세기에 인류 역사상 관용과 자비가 근본이 되는 제국을 탄생시킨다.
복속된 신민들의 종교를 보장하고, 그들의 신전을 파괴하지 않고 지어주었으며, 복속된 땅의 행정체제는 지속되었고, 그들의 언어를 사용하도록 했으며, 관리들은 지속적으로 그들의 위치에서 계속 일할 수 있도록 해 주었다. 이로서 페르시아는 아카드어, 페르시아어, 바빌로니아어 등 여러 문자들을 비문에 새기고 기록하였는데 이후의 군주들에게까지 이어진 관용의 페르시아는 다양한 문화와 언어가 융합된 위대한 국가가 되었다.
키루스실린더에 새겨진 명문은 미국의 독립선언서와 유엔헌장 등의 기초가 되었으며 실로 인류의 존엄에 대한 선언이며 명령이라고 감히 말할 수 있다.
“모든 인류는 자유롭고 평등한 존엄성과 권리를 가지고 태어났다. 천부적 양심과 이성을 지니므로 형제애로 서로를 대해야 한다.”
유엔이 채택한 인권선언의 이 내용은 키루스실린더의 명문에 기초를 한 것이라는 것을 알리기 위해 유엔빌딩 2층에는 키루스실린더 복제품이 놓여 있다고 한다.
전시실로 들어서면 바로 그 유명한 함무라비 법전이 보인다. 1901년에 프랑스탐험대-말이 탐험대지 유물도둑떼라고 해야 마땅하다-가 이란의 남서부 지역 수사에서 메디아왕조 이전의 이란 땅에 있었던 고대엘람왕국의 유적을 발굴하던 중 발견했다. 수사는 엘람왕국의 수도였다. 기원전 13세기경 엘람왕국이 메소포타미아 지방을 정복했을 당시 약탈해 온 것으로 보인다. 박물관 전시실에 있는 함무라비법전은 프랑스에서 복제품을 보내준 것으로 진품은 루브르에 있다.
기원전 1750년경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이 비문의 윗부분에는 신에게 법전을 받는 함무라비의 모습이 새겨져 있고 인류사에 나타난 가장 오래된 법령 282개 조가 쐐기문자로 빽빽하게 새겨져 있다.
다리우스의 충성맹세도 앞에서 페르세폴리스를 떠 올리며 서 있는데 고개를 돌리고 뒤를 보는 순간, 키가 큰 파르티아왕자가 전시실 가운데 햇빛을 등지고 나를 바라보고 있다.
파르티아는 247년~224년 까지 이란 땅에 있었던 왕조였으며 로마와 중국 사이에서 실질적인 실크로드를 활성화시킨 나라로 보고 있다. 중국에서는 안식국이라 불렀던 곳이다. 건장해 보이는 왕자의 옷매무새가 그냥 툭 털고 나올 것만 같다.
누구라도 갖고 싶지 않았을까, Golden Rhyton, 실제로 보면 너무 멋지다. Rhyton은 동물의 형상이 있는 컵으로 실제로 사용했다고 한다. 의식용으로 사용되지 않았을까 한다. 이란을 떠나오기 전 마지막 여행지인 하마단에서 이것을 사려고 온 바자르를 돌아다녔다. 하지만 이것처럼 멋진 것은 찾아볼 수 없었다.
다음 날 비쉬툰에 갔을 때 입구에서 팔고 있긴 했으나 금속의 흉내만 낸 것 같은 조악한 제품뿐이다. 이란의 생활용품들의 수준은 매우 높아서 기념품조차도 조악한 제품을 만나기는 어려운데 아쉽게도 찾으려고 하니 없다.
박물관에는 고대 아케메니아와 사산조 페르시아의 유물들이 많다. 당시의 문자들이 새겨져 있는 귀중한 자료부터 페르세폴리스를 건설한 다리우스의 흔적까지, 페르세폴리스를 다녀왔다면 의미가 더해지는 곳으로 꼭 봐야 할 유물들이다.
소금인간의 모습이야말로 놀라운 것은 아닌데 사람들이 많이 찾는다. 발견하지 못했을 뿐이지, 지구상에서 자연스럽게 미라로 될 환경은 매우 많기 때문이다. 소금인간의 얼굴과 남아있는 머리카락보다 가죽부츠 안에 뼈가 그대로 들어있어 움찔했지만, 요즘 신어도 될 만한 롱부츠의 디자인이 맘에 든다.
아른거리는 소금인간의 가죽부츠를 떠 올리며 진지해져서 박물관을 나왔다. 모퉁이를 도는데 저만치서 이라니안이 부른다. 설마 이 곳에서 날 부르는 이가 있겠는가, 생각하며 고개를 돌리니 내게 머리에 쓰는 스카프인 루싸리가 벗겨졌다고 계속 알려주는 거였다.
아뿔싸, 머리를 만져보니 머리카락이 만져진다. 박물관 안에서 이러고 다녔나보다. 어떤 사람은 종교경찰에 붙들려가서 각서를 쓰고 나왔다던데.
보석박물관
오늘 하루 중요한 볼거리는 다 봤겠다, 처음에는 이스탄불의 톱카프궁에 있는 보석박물관 정도를 생각하면서 꼭 봐야 한다는 사람들의 말을 뒤로 하고 안 봐도 그만인 곳이라고 생각했다. 그래도 왔으니 단지 내셔널 뮤지엄과 가까우니 가는 거였다. 입장료가 꽤 비쌌다. 멜리 은행 옆의 문으로 들어가면 카메라나 핸드폰은 물론 몸에 지닌 것은 모조리 맡겨야 한다. 박물관은 내가 경험한 어떤 곳보다도 3중 4중으로 철통 같은 경비를 하고 있다.
평소에 보석을 돌같이 보는 성격이지만(이건 진심이다) 보석으로 세상의 아름다움을 응축해 놓은 것 같은 인간의 손재주에 눈이 휘둥그레지고, 보는 순간 정신을 똑바로 해야 했다. 저장할 수 있는 것이 없으니 꼭 머릿속에 저장을 해 놓고 가야겠다는 생각이 밀려온다.
그냥 하루 종일 전시장에 있어도 다 못 볼 것 같은 놀라운 작품들이다. 하나하나의 유물에는 사건과 흥미를 끄는 이야기들이 들어있어 보석만으로도 페르시아뿐만 아니라 근동, 아니 세계의 역사가 녹아있다. 보석들에 얽혀있는 이야기만 찾아도 아라비안나이트를 읽는 것처럼 꽤 흥미롭겠다.
여행자들이 꼭 가보는 내셔널 뮤지엄과 골레스탄 팰리스와 가까이 있어서 관심이 적을 수도 있으나 이곳은 세계의 어느 곳과도 비교할 수 없는 보석의 세계를 경험하게 된다. 단지 개관일과 관람시간이 짧다고 해야 하나, 개관을 해도 하루에 1회나 2회 정도 개방 하는 것 같으니 개관일과 시간에도 신경을 쓰고 꼭 방문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