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차 하는 사이 더워져버려서 해가 완전히 기울어야 가능하지만, 여름의 시작과 함께 내가 포기 못하는 것 가운데 하나가 해질녘 편의점 파라솔에 턱 괴고 한들거리는 일이다. 어느 모로 보나 어엿한 백수가 되었으니 마음가짐이야 순도 100%에, 고쟁이를 간신히 면한 핫바지에 쓰레빠 질질 끌어도 뭐랄 사람 없는 중후한 나이가 되었으니 앞으로 해마다 여름이면 나는 신날 일만 남았네?
나와 비슷한 처지의 지인과 맥주에 쥐포를 뜯어먹으며 낄낄대다가 어느 대목에선가 "난 내가 너무 소중해"하고 말했다. 들장미소녀캔디처럼 두 손을 가슴에 엑스자로 모으기까지 하고. 그 모양이 어찌나 참신했던지 지인이 씹던 쥐포를 내 얼굴에 쏴주었다. 놀라운 것은 잠시 후 내가 또 한번 저 대사를 쳤던 것인데, 농담 아니고 진짜 나는 내가 소중해졌나보다. 지인이 방금 그 태도는 아낀다는 거에요, 막 산다는 거에요, 라고 물었다. 불친절한 인간 같으니.
굿 포인트다. 아낀다는 것이기도 하고, 그래서 살고 싶은 대로 살겠다는 것이기도 하다. 그러려면 얼마나 많은 밑밥을 깔아놔야 하려나. 두번 째 연애에 실패하고 오비맥주 한 병에 취해서 중랑천에서 잠실까지 오던 새벽 네시의 택시 안에서였을까. 언니는 살던 대로 살면 돼, 볼 거 없으니 돌아가세요 라는 말이 황당해서 젊은 무당이랑 한바탕 입씨름을 하고 고양이처럼 등을 말아 나오던 반지하 무당집 앞에서였을까. 창밖은 분명 아침인데 의식은 저 멀리 해저 이만리에 머물러 모든 것이 아래로 아래로 가라앉던 어느해 여름이었을까.
신이 허락한다면 죽을 때 꼭 이렇게 죽고싶다 라고 간절한 소망을 넘어 결기에 찬 다짐이 선 것은.
과거의 어느 모퉁이에서 시작된 것인지 모르겠다. 하여간 어떤 순간부턴가 이미지 한 컷이 계기적으로 떠올랐다가 사라진다. 이미지의 얼개는 변함없이 주변 풍경이 조금 달라지거나 난데없이 음악이 떠오르거나 앵글이 바뀌면서- 다행인 건 내 무의식이 만들어낸 이 한 컷의 희망가가 나는 심장이 뻐근하도록 좋다. 그렇게 죽고 싶다는 것은 그렇게 살고 싶다는 것이니까.
요즘은 여름방학 탐구생활을 푸는 기분이다. 중간고사나 월말고사처럼 배운 문제라면 자신있는데 '쓰잘데 없이' 시간을 보내야 하는 시스템말이지. 곤충채집, 자연보호 포스터, 슬기로운 학교생활을 위한 표어 다섯 개, 삼십일치 일기. 다 끝내고나면 방학도 끝나있는 그런 거. 1학기 과정의 끝은 여름방학 탐구생활 마지막 장에 있지. 인생의 1학기가 마침내 끝나간다.
몇 개의 계절을 건너면 오십살이 된다는 것이 믿기지도 않지만 놀랍지도 않다. 아끼기도 하고 막 살기도 하겠다는 이 호랑방탕함은 어디에서 오는가.
추신.
오늘처럼 더운 날 집에 콕 박혔어야 해서 문득-
콧구녕만한 집을 여행하듯 낯설게 둘러보았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로만 점점이 박혀있는 것이, 좋으네.
청소를 마친 집안을 맨발로 돌아다니면서 좋아하는 곡을 들었다.
허브 앨퍼트, 아랑훼즈(몬 아무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