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뉴스원 칼럼
https://www.news1.kr/articles/?3997870
안녕, 언니야.
딱 요맘때 피는 물레나물꽃을 아니? 다섯 장의 노란 꽃잎이 동화 속 물레처럼 달린 꽃인데, 유럽에선 여름의 시작을 알린단다. 영어명은 ‘세례자 요한의 꽃(Great St. Johnswort)’이야. 유럽인들은 이 꽃을 꺾어 현관 위에 걸거나 그림을 붙였어. 만물을 성장하게 하지만 광기와 불행이 함께 찾아오는 계절, 여름을 경계하기 위해서지.
마루야마 겐지의 단편 ‘여름의 흐름’에선 주인공의 성찰이 여름날의 태풍과 함께 묘사돼. 관성적으로 사형집행을 해온 교도관인 주인공은 첫 사형집행을 앞두고 죄의식에 시달리는 후배에 공감하지 못하지. 그에게 사형수의 죽음은 업무처리일 뿐이야. 무더운 주말, 가족과 함께 해변에 놀러간 주인공은 저 멀리 태풍이 몰려오는 모습을 보면서 처음으로 자신의 안일한 삶에 공포를 느끼고, 무딘 감각으로 살아온 스스로를 자책하지.
한 사람의 죽음이 백 명의 삶보다 가벼울 수 없어. 그의 죽음을 ‘처리’하지 않고 예를 다하려는 마음이 그에게 시달려온 누군가의 4년을 덮어버릴 수 없는 것처럼. 그는 자신이 일궈온 삶을 스스로 부정하고 길고 긴 형벌의 여름을 남겨놓았어. 권력형 성폭력 피해자의 고발이 ‘피해호소인’ ‘가해지목인’의 괄호 안에 머무른다면 성폭력으로 보호받기 위한 우리의 갈 길은 더 멀어질 거야. 오기된 업계용어는 오독을 낳고, 오독은 광기를 부르지. ‘외삼촌의 멘탈이 흔들릴 때마다 비서가 잡아준 듯’이라는 유족의 글은 또 얼마나 창대한 오독을 부르는지.
애도가 끝났으니 이 계절 내내 광기와 오독의 음모가 검은 구름처럼 퍼질 거야. 벌써부터 등에 후텁지근하게 땀에 고이는 것 같지 않니? 산뜻한 여름을 위해 힘껏 노력할 밖에. 모두들, 화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