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2019년 스탠포드 소셜이노베이션 리뷰에 실린 <관계 행동주의로 고착 상태에서 벗어나기>라는 칼럼의 원문과 한글번역본(by 양혜란 타임뱅크 코리아 사무국장님)을 읽고 쓰는 요약 겸 리뷰입니다.
관계 행동주의(Relational Activism)는 한국에 아직 거의 소개되지 않은 '사회를 변화시키는 한 가지 방법'입니다. 하지만 그 정의를 보면 우리가 이미 경험하고 있는 변화의 방식일 겁니다.
소개할 글에서 관계 행동주의는 정치적 분열과 사회적 대립의 고착 상태를 풀 수 있는 변화의 시작점으로 언급되었고, 저는 다양한 분야, 특히 복지 정책이나 심리 상담만으로 완벽히 해결할 수 없는 정서적인 영역에서도 관계 행동주의가 힘을 발휘할 수 있다 생각합니다. 행정 지원이나 심리치료가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면이 분명 있겠으나, 일상을 공유하는 이웃이나 친구와의 관계에서 주고받는 도움과 연결감은 인생의 진정한 행복을 완성하는 마지막 퍼즐조각이 아닐까 싶구요. 관계는 개인의 배움과 성장, 사회적 성취와 기여로 가는 긍정적 변화의 촉매가 되기도 합니다.
제가 좋아하는 책, '본질에서 답을 찾아라'에서 세계 최고의 리더 150명을 인터뷰하고 18년간 연구하여 사회 변화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한 오토 샤머 교수는 이런 얘기를 합니다.
마음이 움직이지 않으면, 진짜 변화는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리고 마음을 움직이는 가장 큰 힘은 관계로부터 올 때가 많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시스템 전환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변화는 마음의 변화'라고 오토 샤머는 말합니다. 그러고 보면 제가 이 글을 쓰는 이유는 더 많은 분들이 '관계'라는 단어에 마음으로 형광펜을 칠하고, 열린 마음과 연결된 마음으로 살아가기를 바라기 때문입니다. 제가 살고 싶은 곳이 그렇게 서로 연결되고 따뜻한 세상이라서요.(그래서 만든 회사 = 커뮤니티 문화기획사 소셜커뮤니티랩)
정치와 사회적 분열 속에서,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는 그리 중요해보이지 않는다. 우리는 고립감과 무기력함을 느낄 수 있는데, 사회적 변화는 거시적 차원에서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서로에 대한 공감과 관계에 대한 바람이 무에서 유에 가까운 변화를 만들어낸다.
동네에 '사랑', '희망', '자신감'이라는 종이 포스터를 붙였던 소녀나, 주민들이 실제로 할 수 있는 기후변화 대책을 마련하기 위한 주민대화 모임을 조직한 캠던 의회 등의 사례에서 공통점은 골치아픈 사회적 문제 때문에 마비되지 않고, 연결과 개인적 관계에 집중하는 것이다. 행동(Action)하기 위해 관계(Relationship)를 활용한다는 뜻에서, 우리는 이것을 관계 행동주의라고 부른다.
관계행동주의는 개인적/비공식적 관계를 통해 변화를 일으킨다. 정치가 분열되고 마비될 때, 중도층인 “지친 다수”에게는 새로운 출발점이 필요하다. 관계행동주의자의 목표는 연민의 마음으로(원문에서는 compassionately; 'pass=고통'을 'com=함께'하며) 우리가 닿을 수 있는 만큼의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이다.
다음은 일상적인 관계와 직장에서 실천할 수 있는 관계행동주의자의 3가지 가치와, 그 가치가 어떻게 사회적 행동을 이끌었는지의 예이다.
확신은 사람들을 서로 틀어지게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우리는 '무기를 지닌 젊은이'는 위험하고, 사람을 해치고 싶어한다고 가정한다. 그러나 의식적으로 다른 사람에 대한 호기심을 유지하는 일은 우리가 그런 편안하고 양극화된 의견에 머무는 것을 막아준다. "저 젊은이는 왜 무기를 가지고 다닐까? 나는 왜 그런 결론에 이르렀을까?"라고 질문해보면서, 우리는 다른 방식으로 생각하는 법을 배울 수 있다.
사람 도서관(Human Library)은 그런 호기심을 개발하는 좋은 예다. 20년 전, 덴마크에서 처음 만들어진 이 도서관에서는 독특한 삶(자폐증, 양극성 장애, 노숙자, 실업자, 난민지위 등)을 살아온 자원봉사자들이 '책'의 역할을 하며 자신의 삶을 이야기한다. 평소에는 서로 대화할 가능성이 없는 사람들이 안전하게 대화할 공간을 만들고, 금기나 비난의 두려움 없이 질문을 나눌 수 있게 하는 것이다.
공감 박물관(Empathy Museum)의 '내 입장에서 1마일 걷기(A Mile in My Shoes)' 프로젝트는 참가자들이 다른 사람의 신발을 신고 걸으며 그 신발 주인의 이야기를 헤드셋을 통해 듣는다. 신발이 불편하겠지만 그것이 핵심이다. 우리의 크기(Size)에 맞지 않는 이야기를 듣는 것이 중요하다.
일상에는 힘이 있다. 관계행동주의자들은 의식적으로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들을 확인한다.(=분노를 유발하는지, 존중하는지, 또는 목소리의 톤이 도전적인지, 열린 마음으로 느껴지는지 등) SNS에 올라온 글에 화내며 반응하기 전에 그저 한 번 호흡을 고르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그 글이 나에게 왜 그런 반응을 일으키는지, 다른 관점으로 볼 수 있는지 성찰할 수 있다. 일상을 조사하는 일은, 우리의 행동을 사람들이 어떻게 느낄지 의식하고, 하나 이상의 아이디어(관점)에 열려 있고, 우리의 행동 방식에 스스로 책임지도록 돕는다.
Interfaith Philadelphia의 '정중한 대화의 해 프로젝트(The Year of Civil Conversations Project)'는 우리가 격렬히 싸우는 주제에 대해서 관계를 맺으며 대화할 수 있도록 한다. 이 프로젝트는 학교나 일터 등에서 수백 명의 사람들을 훈련시켰고, 2,000명 이상의 퍼실리테이터, 참여자, (정중한 대화의 기술이 적용된) 행사 참가자를 끌어들였다. '더 나은 대화' 가이드북은 참여자들에게 관대한 경청, 겸손, 인내, 환영, '모험적인 정중함'을 연습하도록 권장한다. 이것은 '그저 정중하고 점잖음'이 목적이 아니라, '우리가 직면하는 어려움과 인간의 복잡성'을 존중하도록 한다.
관계 행동주의자들은 스토리텔링과는 다른, 무언가 강력한 이야기를 공유한다. 스토리텔링은 공감으로 이어질 수 있는 반면, 화자와 청자 사이에 장벽을 세울 수도 있다. 이와 대조적으로 스토리쉐어링은 상호적이다. 당신이 누군가와 연결되고자 한다면, 자신의 일부를 공유하며 열린 채로 있어야 할 것이다. 취약성을 보여줌으로써 서로를 이해하는 것이, 새로운 장벽을 쌓기보다는, 장벽을 허물고 공감을 쌓는 일에 도움이 된다.
2019년 4월 캠든 의회에서 진행한 '변화를 만드는 관계(Relationships Making Differential)' 행사에서는 다양한 그룹들이 모여 퍼실리테이터의 안내에 따라 '어항(fishbowl)' 형태로 이야기를 공유했다. '어항'은 소수의 참가자들이 내부 서클로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나머지 참가자들은 외부 서클에서 내부를 관찰하며 듣고 느낀 것을 성찰하는 구조다. 내부와 외부 서클이 자리를 바꾸며, 각 참가자는 화자에서 청자로 역할을 바꾼다.
인간을 위한 서비스가 때로는 인간을 '대상화'하여, 도움을 주고받는 사람 사이에 분열과 불평등한 권력을 만든다. 그러나 (아동 보호에 관한 어느 조사 프로젝트의) 방에서 낯선 사람들 사이에서 권력이 공유되는 느낌과 연결을 감지할 수 있었고, 그로부터 이미 긍정적인 행동이 나오는 것을 보았다. 서로의 이야기를 들으며, 부모와 지역기관이 자신의 취약성을 기꺼이 드러냄으로써, 새롭고 역동적인 힘과 더 깊은 신뢰가 생겼다.(관련 기사의 한 문장: "세션이 끝날 무렵 우리는 '사회복지사'나 '서비스 사용자'가 아니라 그저 '사람'이었습니다.")
일상적인 공감*의 실천은 정서적으로 강화되고 전염된다는 연구가 있다. 기버(=공감을 실천하는 사람)에게 긍정적인 경험일 뿐만 아니라, 리시버(=공감을 받는 사람)이 이를 다시 전파할 확률이 높다. 심리학자들이 '친사회성(prosociality)'이라 부르는 것을 리시버가 거울처럼 반영하고, 본보기로 삼고, 자신의 주변 사람들에게 전달한다.
세상에는 항상 전통적인 (데모나 캠페인 등을 하는) 활동가들이 필요할 것이다. 그러나 영국 카네기 재단의 3개년 프로젝트가 강조**한 것처럼 친절, 정서, 인간관계가 공공정책의 맹점이라면, 관계 행동주의는 가장 기초적이고 근본적인 차원에서 그 공백을 채운다. 인간적이고 공감하는 관계는 우리가 닿을 수 있는 세상의 긍정적 변화를 돕는다. 그리고 개별 행동의 집합이 전체적으로 더해지고 의식된다면, 이 변화는 더 넓은 사회적 변화를 일으킬 것이다. 관계 행동주의는 우리 시대의 가장 큰 사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대중에게 꼭 필요한 시민 사회 재생산의 길과 우리 자신의 고착을 푸는 법을 희망과 행동으로 제시한다.(요약 끝)
* 공감의 원문은 Compassion이고, 사전적 해석은 '연민'이나 '동정심'인데, 이 글의 맥락에서 관계 행동주의자의 Compassion은 상대방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라기보다는, 스토리쉐어링을 통해 서로의 입장을 깊이 이해하며 일어나는 '자발적이고 역동적인 공감과 연민'에 가까울 것 같습니다. 이럴 때 저는 가슴이 열리고 연결되는 느낌이 들며 때로는 눈물이 났었네요.
** 최대한 정확한 내용의 전달과 출처 표기를 위해, 칼럼 원문과 양혜란 사단법인 타임뱅크 코리아 사무국장님의 번역본, 그리고 원문 본문에 링크된 글들을 참고하였습니다. 그 와중에 원문 마지막 문단의 카네기 재단 관련 링크(Carnegie Trust)가 다른 콘텐츠(일상적 관계의 힘에 관한 글)로 잘못 연결된 것을 발견하여, 정확한 콘텐츠(공공정책의 맹점에 관한 글)로 정정하였습니다.
▼ (원문) 관계 행동주의로 고착 상태에서 벗어나기(Becoming Unstuck With Relational Activism by Becca Dove & Tim Fisher)
https://ssir.org/articles/entry/becoming_unstuck_with_relational_activism#
* 이 칼럼의 한글 번역본을 처음 본 곳은 손서락 타임뱅크코리아 대표님의 페이스북이었습니다. 타임뱅크코리아는 관계행동주의에 딱 맞는 예로, 한국에서 그 활동을 시작하고 확장해가시는 모습을 존경하고 응원합니다^^
#관계행동주의 #관계행동주의자 #relationalactivism #relationalactivi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