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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unemployment Dec 02. 2021

싱숭생숭 떠나기 전 D-3

마포구 안녕-!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아쉽고 슬프고 또 두려운 감정들이 휘몰아 쳐서 자꾸 맘이 두근거린다.

2018년 3월, 첫번째 회사 퇴사를 마음먹고 해야할 일은 잔뜩 대출을 받아 집을 나오는 거였다.

그때는 회사만 그만두면 뭐든 할 수 있을 줄 알았다.그 땐 전세대출이 내 탈출 계획을 완벽하게 실현시켜줄 마지막 관문이었다. 그해 봄여름 여의도에서 퇴근을 거의 합정으로 했다. 강남 지역도 알아봤지만 원룸을 소개해주는 사람들이 순 사기꾼들 같았다. 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나랑은 어울리지 않는 곳이었다. 합정 전세집을 거의 탈탈 털다시피했다. 합정에 살아야겠다고 생각했던 건 사실 2017년 겨울 엄청나게 눈이 오던 밤이었다. 좁은 내 방에 누워 인스타를 보다가 내 눈을 홀린 바깥풍경이 있었다. 좁다란 골목길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곳이었다. 어떤 건물인지 모르겠으나 주황색 가로등불빛 아래 하얀 눈이 소복이 쌓였고 눈으로 눈을 보는 데 눈오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그리고 포스팅에는 합정이라고 적혀 있었다. 언젠간 꼭 이 풍경을 바라볼 수 있는 집에 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근 3개월간 합정에 나온 매물을 싹싹 뒤졌지만 내가 인스타로 본 풍경은 절대 볼 수 없었다. 내 예산이 적었거나 그런집은 엄청 비싼 월세집이었거나. 내 예산으로 살 수 있는 집은 잠깐만 머물러도 너무 슬퍼지는 집이었다. 혼자 사는게 못 견디게 싫을 것 같았다. 예산을 아주 조금 올렸고 그래도 내 예산을 뛰어 넘는 이 집을 보자마자 알아차렸다. 이 집이. 그 인스타에서 봤던 건물이라는 것을. 이런 집은 전세로 절대 나오지 않는다는 것을. 몇날며칠 고민하다가 예산을 훌쩍 뛰어넘는 이집을 계약했다. 사실 예산은 뛰어넘었지만 은행이 해줄 것. 내가 준비해야 할 추가 예산은 천만원정도. 그 정도는 낼 수 있었고 퇴사는 할 것이었지만 한달에 십만원정도는 더 부담할 수 있었다. 아무래도 좋았다. 이집에서 그 눈오는 풍경을 볼 수있다면.

2018년 7월 독립하고 한 달뒤 회사에 퇴사를 고하고, 두달 후 퇴사를 했다. 

즐겁고도 혼돈 그 자체였던 백수생활, 프리랜서 생활을 했다. 

삼년 간 이집에서 참 많은 고민을 했다. 이 공간에서 이전에 없던 전혀 다른 생각도 많이 했고 이 공간 덕에 이전의 나의 삶과 완전히 다른방식으로 사는 사람들도 더 쉽게 만날 수 있었다. 새로운 도전을 할 동력을 얻었고 서울 중심가에 산다는 것이 어떤 삶인지도 간접체험하게 됐다. 돈이 모이는 곳은 화려함도 있지만 다양함도 포용할 수 있었고 재밌는 문화도 생겨났다. 곳간에서 인심이 나는 거다. 너무 당연한 얘기지만 실제로 몸으로 체험하는것은 완전히 다른 차원의 얘기였다. 


일을 하다가 혹은 너무 답답한 일이 있을 때는 가만히 일렁이는 여의도 불빛을 바라보는 것도 너무 좋았고 골목길을 내려다보며 사람들이 두런두런 걷는 모습도 좋았다. 중심가지만 조용햇고 중심가여서 모든게 가까웟다. 출퇴근 시간에 너무 에너지를 많이 쏟는 덕에 정말 이골이 날 지경이었는데 이집이 그 고통에서 해방시켜주었다. 그래서인지 생리전 증후군, 호르몬 불균형으로 인한 피부트러블도 눈에 띄게 줄었다. 건강검진 결과도 3년 전 보다 훨씬 낫다. 모든 면에서 다 좋아졌다. 심지어 키도 컸다. 


잠에서 깨어 침대에 누워서 눈을 뜨면 창문밖 파란하늘이 한눈에 들어왔고

겨울에는 늦게 해가 떠서 7시쯤 햇빛이 내방 창틀에 내려앉는 아룸다움 덕에  

오늘 하루를 제게 허락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라는 말이 절로나왔다.

커피를 사들고 아침에 다시 현관문을 열면 겨울 따뜻한 햇살이 현관문 앞까지 들어왔다. 

난방을 하지 않아도 햇살이 금방 내 방을 따뜻하게 데워주었다.

비오는 날은 빗소리가 너무 좋았고 눈오는 풍경을 내다보는 것도 너무 행복한 일이었다. 

밤에 일렁이는 도시 불빛에 둥둥 떠있는 것도 너무 행복했다.

매번 창밖을 내다보며 감사하다는 생각을 했다. 매분 매순간 여기에 살게 된건 정말 행운이라는 생각을 항상 했다. 


지금 이런 미칠듯한 나의 집을 향한 애정과 사랑이 나중에 어떤 것이 되어 나에게 돌아올지는 모르겠다. 근미래에는 이 집을 그리워하게 할 것이고 장기적으로는 이 동네에 다시 오고 싶어서 돈을 더 빠르게 모으는 법을 고민할지도 모른다. 이렇게 진하게 대상을 좋아한 경험이 없다. 아마 이 강렬한 경험이 나를 더 강하게 키우면 좋겠다. 


조금 두려워도 좀 밀고 나가는 힘이 생겼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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