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 워킹맘 인터뷰 시리즈 ‘메디블록' CMO 민보경 님 편
스타트업에서 일하는 여성들은 고민합니다. 남들이 그려놓은 지도를 따라가는 것이 아닌, 새롭게 길을 개척해나간다는 게 나에게 어떻게 전문성을 가져다 줄 것인가? 과연 이 길의 끝에 나는 직업인으로서 어떤 차별점을 얻을 수 있을까?
그런데 여기 누구나 선택하지 않는 길을 가는 것이 오히려 ‘나만의 커리어 패스'가 된다고 이야기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블록체인 기반 의료 정보 플랫폼을 만드는 메디블록의 CMO이자 두 아이의 엄마, 민보경 님입니다.
인터뷰 진행 및 편집: 스여일삶 박민정 & 김지영 에디터
Q. 안녕하세요. 민보경 CMO님, 먼저 간단한 본인 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내년에 초등학교 취학을 앞둔 아들과 갓 돌이 지난 둘째 딸을 키우고 있는 워킹맘이자, 블록체인 기반의 의료 정보 플랫폼을 만드는 ‘메디블록’에서 홍보/마케팅을 총괄하고 있는 민보경입니다. 공식적인 자리에선 소속과 직책으로 저를 소개하고, 유치원 엄마들을 만나면 앞쪽만 소개하다가 두 개를 같이 엮어서 소개하니까 새롭네요.
Q. 스여일삶은 둘 다 궁금해요, 엄마 보경님의 이야기와 ‘메디블록' CMO로서 보경님 모두요. 차차 이야기 해주시면 좋을 것 같고요, ‘메디블록’을 처음 들어보셨을 분들을 위해, 회사 소개부터 해주세요!
<메디블록>은 블록체인 기반으로 환자 중심의 의료 정보 플랫폼을 만드는 곳이에요. 크게 세 가지의 서비스를 운영하고 있어요. 블록체인 기술의 솔루션으로 의료 정보 플랫폼을 구성하는 ‘패너시어’가 있고요, 그 위에 ‘닥터팔레트’와 ‘메디패스’라는 서비스들이 올라가 있어요.
<닥터팔레트>는 의료 정보의 생성부터 공유까지 하는 EMR 차트입니다. EMR 차트는 병원 가면 의사 선생님들이 쓰시는 차트있죠? 그거에요. 지금까지는 병원 안에 서버를 구축해서 사용하는 형태였죠. 비유하자면 ‘엑셀’이나 ‘워드’ 개념에 가까웠다면, 저희는 그것을 ‘구글 스프레드 시트’처럼 클라우드로 구축했어요. 웹 베이스로 접속하면 언제 어디서든 의사 선생님들이 차팅 하실 수 있죠.
그리고 의료 기관에서 생성된 정보들을 환자가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플랫폼을 만들고 있다고 말씀드렸는데요. 환자가 자신의 의료 정보를 가지고 보험 청구 등에 활용할 수 있는 모바일 앱이 <메디패스>입니다. 환자 중심의 의료 정보 모바일 앱 서비스라고 보시면 돼요. 그 안에서는 세브란스 병원과 삼성 서울 병원 등의 진료 내역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메디패스를 통해서는 내가 언제 어디서 어떤 교수님한테 어떤 검사를 받았는지 상세한 내역을 볼 수가 있어요. 이 기록을 가지고 보험사에 직접 디지털 서류를 전달해요. 실손보험 청구 해보셨나요? 병원에서 보험 청구를 위해 서류를 돈 주고 떼야해요. 그걸 보험 설계사한테 직접 전달해야 하죠.
그러나 메디패스를 이용하면 디지털 형태로 의료 기록을 환자가 앱으로 직접 전달할 수 있어요. 진료 끝나고 집 가는 길에 버스 안에서 몇 번의 클릭만으로 바로 보험 청구가 완료되는 편리한 서비스입니다. 메디패스는 누적 다운로드 50만까지 달성을 했고 앱 평점도 4.9점대로 유저의 만족도가 매우 높은 서비스입니다.
Q. 비슷한 형태의 의료 서비스는 그동안 많이 있었잖아요. 여기에 ‘블록체인'이 더해져 있다는 게 차별화 포인트 같은데, 블록체인이라는 기술과 의료 정보가 결합되면 어떤 좋은 점이 있는 건가요?
의료 기록들이 가치라는 것을 가지려면 의료 기록에 데일리 라이프 로그 데이터까지 통합되어야 해요. 그러나 지금까지는 병원에만 의료 기록들이 존재했어요. 예를 들면, 어렸을 때 기록은 반포동 소아과에 있고 청소년기에 여의도에 살았다면 청소년기의 기록은 여의도 내과에 있는 거죠.
이렇게 환자들의 기록이 산발적으로 있는 게 비효율적이잖아요. 하지만 기술적으로 의료 기록들을 통합하는 일이 어려웠어요. 일단 누군가가 주체가 돼서 이 기록들을 모아야 하고 이후에 보관과 활용을 할 수 있도록 만들어줘야 하는데 부담이 매우 큽니다. 의료 기록 같은 경우는 개인 정보 중에서도 가장 가치가 높은 데이터니까요. 그렇게 가치가 높은 데이터를 한군데다가 모아두기가 굉장히 부담돼죠.
왜냐하면, 해커들이 그 서버를 공격해서 개인 정보를 유출시킬 수도 있으니까요. 그런 리스크 때문에 정부도 기업도 선뜻 나서지를 못해요. 실제로 싱가포르에서는 몇 년 전부터 정부에서는 국민 데이터를 모으려는 시도를 했는데 그 서버가 두 번이나 해킹을 당했어요. 그러다 보니까 중요한 정보들을 한군데에 모으는 게 맞느냐 너무 위험한 거 아니냐는 말들이 많았죠.
그래서 메디블록은 환자가 직접 자신의 모바일에만 의료 정보를 쌓는 형태를 제시한 거예요. 이렇게 되면 중앙화된 서버가 없으니 해커들이 정보를 털려면 모든 모바일을 다 털어야지 가능한 거잖아요. 보안의 리스크가 훨씬 줄어들거라 생각한거죠. 그렇게 구현한 게 메디패스인 거예요. 환자들이 직접 자신의 데이터를 모바일에 보관하고 활용할 수 있게 해준 거죠.
블록체인이 이 과정에서 어떤 역할을 하느냐를 좀 더 설명해드릴게요. 앞서 환자가 자신의 데이터를 쌓고 이를 활용할 수도 있다고 했잖아요. 여기서 가장 큰 문제가 발생해요. 그 데이터의 진위를 어떻게 판단할 것인가? 보험금 청구할 때도 서류를 내잖아요. 그 영수증에 0 하나 더 그린 건지 아닌건지 보장할 수 없죠. 이런 보험 사기를 예방하기 위해서 전세계에서 1년에 몇 백조의 돈이 투자돼요.
블록체인은 이 때 쓰일 수 있어요. 예를 들어 민보경의 진료 기록이 A라는 병원에서 7월 1일에 생성됐다고 칩시다. 이걸 aaa라고 도장을 찍어줘요. 그게 ‘해시값'인데요, 그러면 블록체인은 ‘aaa라는 서류가 민보경 모바일로 들어갔다. 그걸 보험사가 확인했다.’라는 흐름을 기록해요. 보험사 입장에서는 aaa라는 데이터가 진본이 맞는지 도장만 비교해보면 되는 거죠.
여기서 블록체인의 특성을 활용할 수 있는데요, aaa라는 도장이 찍혔잖아요. 그렇게 찍힌 원본 서류를 중간에 글자 하나라도 바꾼다 치면 aaa가 아니라 xyz 같은 전혀 다른 서류로 인식되어버려요. 이러면 보험회사는 ‘aaa에서 중간에 서류가 xyz로 바뀌었네?’ 하고 바로 알 수 있죠.
그 외에도 정보를 제공한 사람이 진짜 민보경이 맞는지, 신원 인증도 되어야겠죠? 그 때도 블록체인 기술이 쓰일 수 있습니다. DID(Decentralized Identity)라는 기술로 신원 인증이 가능해요. 이 두 가지 측면에서 블록체인이 의료 정보 서비스와 결합된다고 보시면 돼요.
Q. 보경님은 그럼 원래 블록체인 쪽 커리어가 있으셨나요? 아니면 의료 쪽에서 일을 하셨나요? 두 쪽 다 쉽지 않은 분야인데 어떻게 메디블록에서 일하게 되셨는지도 궁금해요.
저는 이전에 정부 기관 - 복지부 쪽에서 일을 했어요. 기존의 의료 시스템의 한계와 보수적인 분위기를 너무나 잘 알고 있었죠. 그러다 메디블록에서 글로벌 마케터를 뽑는다는 소식을 듣고 대표님을 만나게 되었는데 설명을 듣다보니 제가 봤던 한계를 해결할 수 있을 것 같다는 확신이 들더라고요. 그렇게 메디블록 마케팅 팀의 1호 멤버가 되어서 지금까지 일하고 있어요.
말씀하신 것처럼 블록체인 기술은 어렵고, 의료 쪽은 따분할 수 있죠. 마케터의 입장에서 재밌는 분야라고 볼 순 없어요. 의료 산업은 보수적이고 조심해야 할 것도 많죠. 그런데 저는 이렇게 어려운 부분들이 많기 때문에 더더욱 도전해볼만하다고 생각했어요.
제가 처음 메디블록에 왔던 2017년도만 해도 한국에 블록체인에 관련된 자료 자체가 많지 않았어요. 블록체인 회사가 어떻게 홍보하는지 벤치마킹을 하려면 해외 사례들을 찾아봐야만 했죠. 무엇보다 소비자들이 블록체인이 무엇인지 개념 자체가 없었던 때라 블록체인에 대한 설명, 거래소 사용 방법 같은 기초적인 정보들과 가이드를 일일히 다 만들어야 했어요.
그런데 그렇게 고생을 하면서 만들어 놓으니 후발 블록체인 회사들이 저희의 가이드를 참고해서 홍보를 하는 게 눈에 보이더라고요. 일종의 기준이 된 거죠. 그게 저에게는 성취감이 되었어요. 앞으로도 메디블록이 만드는 게 업계의 ‘기준'이 될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을 갖고 일하려고 해요.
Q. CMO로서는 어떻게 일하고 계신가요?
CMO가 되면서 가장 크게 바뀐 제 업무의 중심은 아무래도 매니징일 것 같아요. 팀원들과 업무를 나누고 조율하는 일을 가장 많이 하죠. 제가 단독으로 하는 일은 언론 홍보나 대관 업무, 예산을 따오는 일 정도네요. 팀원들이 큰 업무에 집중할 수 있도록 서포트함으로써 능력치를 키워주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저희 팀이 일을 하는 방식에 대해 설명 드리자면, 주 담당과 부 담당이 나눠져 있어요. 항상 코워킹을 하면서 서로 피드백을 하죠. 저에게 어떤 업무에 대한 제안을 가지고 왔는데 완벽하게 서로 피드백이 되어 있지 않으면 주 담당 책임이 아니라 부 담당에게 물어요. 무조건 내 일이라고 생각하고 피드백을 서로 주고 받으라는 의미죠. 그러다보니 굉장히 적극적으로 서로 피드백을 하면서 일을 하는 편이에요.
팀원들을 대할 때는 담당자로서 저보다 더 많이 알고 있을 거고, 더 많은 고민을 했을 거라는 전제를 가지고 이야기를 들어요. 그 전제 하에 무엇이 최선의 선택인지를 알려달라고 요청하죠. 그걸 기준으로 맞다, 아니다를 팀장으로서 판단해줄 뿐이라고요. 그렇게 최대한 팀원들의 의견을 존중해주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Q. 보경님은 스타트업에서 일하는 여성으로서 어떤 꿈을 꾸고 있으신가요?
가까운 미래에는 메디패스가 잘 되어서 건강 의료 앱도 트렌디하다는 걸 보여주고 싶어요. 올해 초부터 지금까지 차근차근 의료 앱 1위로 올라왔거든요. 어렵고 힘든 분야지만 그만큼 도전할 가치가 있다는 것을 제 성과로 보여주고 싶어요.
먼 미래의 제 개인적인 목표 중 하나는 ‘세바시' 같은 곳에서 아이들을 앞에 앉혀놓고 강연해보고 싶어요. 저의 일은 아이들한테 설명해주기가 굉장히 복잡하잖아요. 하지만 끝까지 해낸 모습을 떳떳하게 보여주고 싶어서요. 예전에 세바시 강연장에 갔을 때 초등학교 6학년 자녀를 데리고 오신 연사 분이 있었어요. 저도 그런 사람이 되고 싶더라고요.
그리고 스여일삶에서 이렇게 인터뷰 하는 것도 저에게는 평소에 생각해왔던 마일스톤 중 하나였어요. 저도 스타트업 여성들의 이야기를 보면서 좋은 의미와 영감을 많이 받았거든요. 그래서 이 시간이 굉장히 뜻 깊습니다. 앞으로 이뤄나가고 싶은 꿈들도 모두 차근차근 해나갈게요!
Q. 스타트업에서 임신, 출산을 한다는 것 자체도 부담일텐데 보경님은 CMO이기 때문에 오히려 더 고민이 많이 되셨을 것 같아요. 둘째를 임신하셨을 때 어떻게 회사에 이야기 하셨고, 출산 휴가를 보내셨는지 궁금합니다.
맞아요. 스타트업은 업계 특성상 변화의 속도도 매우 빠르고 회사 자체도 급성장을 하기 때문에 한두달만 자리를 비워도 부담이 되는 것이 사실이죠. 게다가 저는 C레벨, 임원이다 보니 더더욱 그랬어요. 많은 스타트업들이 비슷하겠지만 저희 회사도 기혼 여성이 거의 없고, 육아 하는 여성은 저 혼자이기 때문에 더 고민이 많았죠.
솔직히 이야기하자면 이런 이유들로 둘째 생각은 한동안 못 했고, 또 둘째가 생기고 6개월이 될 때까지도 대표님들께 말씀을 못 드렸어요. 처음 회사에 임신 사실을 알린 날, 엄청 떨렸는데 대표님 두 분 다 굉장히 축하를 해주셨던 기억이 나요. 두 분 다 남성이신데 모두 자녀가 있으셔서 그런지 바로 이해를 해주시더라구요.
이렇게 회사에 이야기하고 나니까 출산 휴가 동안의 공백기를 더 잘 준비하고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대표님들과 계속 이야기 나누면서 앞으로 몇 달 동안 해야 할 일들을 리스트업 했어요. 팀원들한테도 상황을 공유하고요, 팀장 대행을 할 팀원도 미리 선임해서 인수인계 했죠. 다행히 팀원들이 저 없이도 모든 일들을 잘 수행해주었고, 타 팀에도 미리 커뮤니케이션을 잘 해두고 간 덕분에 3개월간의 공백이 크게 느껴지지 않았어요.
사실은 출산 휴가를 가기 직전까지 불안한 마음에 출산 휴가를 다 쓰는 게 맞나 고민을 계속 했어요. 근데 저희 팀원이 그러더라고요. 회사의 여성 중에 처음으로 출산 휴가를 가시는데 당연히 다 사용해야 하는 문화를 만들어주셨으면 좋겠다고요. 그런 말을 팀원이 먼저 해줘서 굉장히 놀랐어요.
제가 여성 임원이자 첫 여성 출산 휴가 대상자 이기에 저의 케이스가 앞으로의 케이스가 될 수 있고, 이게 앞으로의 문화가 될 수 있겠더라고요. 저의 눈치나 욕심이 향후 누군가에게는 당연히 보장받아야 하는 권리에 큰 방해가 될 수 있다는 것을 그때 깨달았어요. 그래서 출산 휴가 3개월을 모두 사용하고 복귀했어요.
Q. 하지만 아이 둘을 키우면서 열정적으로 일하는 것 자체가 쉽지 않을 것 같아요. 보경 님의 원동력은 무엇인가요?
특별한 원동력이 있다기 보다는 하루하루 해야 할 일들이 무엇인가 그 자체에 집중하는 편이에요. 그리고 내가 꼭 해야 하는 일들에 대한 책임감 때문에 그렇게 움직일 수 있는 것 같고요. 집에서 아이들을 돌보는 것도 그렇지만 회사에서 팀을 매니징하는 것에서도, 계속해서 To do list를 정리하고 점검하고 나아가는 형태로 일과 삶을 꾸리고 있어요.
많은 여성 분들이 그렇겠지만, 과거의 저도 ‘주변 사람들한테 폐가 되면 안 된다'는 생각에 혼자 다 짊어지는 편이었어요. 그런데 요즘에는 가족들이나 팀원들한테 현재 고민이나 어려움을 많이 공유해요. 문제 상황이 다 해결되고 말하는 게 아니라, 그 전에 미리 고민되는 부분들과 힘든 부분을 최대한 공유하려 하죠.
그런데 이렇게 주변 사람들한테 나의 상황과 고민에 대해서 먼저 공유를 해보니까 좋았던 점은, 그 고민을 듣는 사람들이 제 생각보다 훨씬 적극적으로 문제를 해결해주려고 함께 노력한다는 것이었어요. 그런 모습들을 보면서 저도 나를 믿고 지지해주는 사람들에 대한 소중함을 더 느끼고, 그게 원동력으로 더 열심히 일하게 되었어요.
Q. To do list를 정리하는 습관, 주변에 도움을 청하는 것 외에 육아와 일을 함께 하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마인드 컨트롤 같은 게 있을까요?
너무 완벽하게 계획을 세우고 주변 사람들에게 공유하려고 하기 보다는 좀 느슨한 상태로 이야기해보는 것도 괜찮더라고요. 크게 ‘이런 일을 해야 하는데 언제까지 뭘 해줄 수 있어?’라고 팀원들이나 가족들한테 물어보면 적극적으로 협조해주는 모습을 많이 봤어요. 특히 팀원들한테 이런 질문을 하면 부담되지 않을까 걱정도 됐었는데 오히려 본인이 주도적으로 계획할 수 있어서인지 더 열정을 갖고 협조해주더라고요.
그리고 중간 중간 감정 공유를 적극적으로 하면 좋아요. 과거의 저는 회사에서 힘든 일을 팀원들한테 잘 공유하지 않았어요. 오히려 팀의 사기를 저하시키는 일이라 생각했죠.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이런 제 생각을 내려놓고 많이 공유하려고 애썼더니 오히려 팀원들이 위로해주고, 힘을 북돋아주더라고요.
이렇게 공감을 받으니까 서로 신뢰하게 되고 함께 나아갈 수 있게 되었어요. 그래서 이제는 힘든 일이 생기면 이 또한 나에게 좋은 자양분이 될 거라고, 이 이후에 또 성장해 있을 거라고 생각하게 되었어요.
워킹맘들이 가장 많이 가지고 있는 감정이 ‘죄책감'이에요. 아이들, 가족들, 회사에도 늘 미안하고 핸디캡을 갖고 사는 느낌이 들죠. 저도 오기로 회사에서도, 가정에서도 ‘워킹맘이라서 못한다'라는 소리를 안 들으려고 더 열심히 활동하고 애쓰기도 했어요.
하지만 어느 순간 관점을 바꿔봐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예를 들어 회사 일만 하는 민보경이라면 일이라는 영역에서 100점을 맞아야 하는 인생을 사는 거잖아요. 그런데 회사 일도 하고 육아도 한다면, 그리고 그 두 영역이 모두 100점은 안 되지만 적어도 80점 + 80점이 된다면 도합 160점인 인생이라 볼 수 있는 거죠. 모든 걸 다 100점 맞으면서 살 수 없다는 걸 인정하면 위안이 돼요. 나는 160점짜리 인생을 살고 있는 중이니까, 스스로를 코너로 몰지 말자. 그렇게 마인드 컨트롤할 수 있죠.
Q. 스타트업과 워킹맘은 어울리지 않는다는 편견도 있는데요, 보경님이 생각하시기에 워킹맘이라 스타트업에서 일할 때 더욱 빛날 수 있는 장점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효율성을 중시한다는 측면에서 워킹맘이 스타트업에서 더 잘 할 수 있는 부분이 분명 있다고 생각해요. 제 성향 상 더 그렇기도 하지만, 워킹맘들은 1분 1초를 허투루 쓸 수 없는 사람들이에요. 출퇴근 할 때도, 주말에도 집중 해야 할 일들에 확실히 집중해야 하죠. 일할 때도 당연히 효율적으로 해놔야 퇴근 이후의 삶을 챙길 수 있으니까 자꾸만 더 효율적인 방식을 추구하게 되고요.
또 하나는 빠른 실행력인데요, 뭔가 결정이 되면 꾸물댈 수가 없어요. 바로 추진해야 하죠. 느긋하게 저녁 먹고 야근하면서 일하지 뭐! 그런 게 안 되기 때문에 오히려 더 빨리 일을 할 수 있고, 그게 회사의 입장에서도 장점이 될 때가 많아요.
무엇보다, 엄마로 살다보면 예상치 못한 일들을 경험하는 경우도 많거든요. 그러면서 멘탈이 강해지는데 그게 일터에서 빛을 발할 때가 있어요. 스타트업은 비교적 이른 나이에 팀장이나 임원이 되잖아요. 그럼 외부에 나갔을 때 보이지 않는 압력같은게 생겨요.
근데 ‘난 엄마로서 이런 저런 일도 다 해봤는데, 이거라고 못 해내겠어?!’ 라고 생각을 하게 되는 거죠. 그게 실제로 파트너십 관계에서 손해를 덜 보는 쪽으로 발휘 되더라고요. 팀원들도 제 모습을 보면서 많이 따라하려고 하는데, 저는 웃으면서 말하거든요. “내가 아줌마라서 그래!”라고요. (웃음)
Q. 앞으로 메디블록이라는 회사가 나아가는 방향성은 무엇이며, 보경님은 그에 맞게 어떻게 성장하고 싶으신가요?
우리나라는 의료 시스템이 정말 잘 되어 있어요. 그렇기 때문에 우리나라에서 정말 잘 해서 글로벌로 나아가는 게 목표에요. 저도 국내에 집중하는 마케팅/홍보/브랜딩을 하는 CMO가 아니라 세계 시장에 도전하는 리더가 되어야겠죠.
저희 회사가 궁극적으로 만들고 싶은건 ‘건강 의료 슈퍼 앱'이에요. 단순히 사용자가 많아져서 되는 게 아니라, 다양한 의료 데이터가 쌓여야만 가능한 일이죠. 그 과정이 쉽지 않겠지만 계속 성장해나가는 마케터가 되고 싶습니다.
Q. 마지막으로, 스타트업 여성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책 한 권과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무엇인가요?
게리 켈러 작가님의 원씽(The One Thing) 이라는 책을 추천해요. 1년 전에 저희 대표님이 저한테 선물을 주셔서 보게 된 책인데 하루에 꼭 하나 해야 하는 것, ‘원씽’만 정하면 된다는 내용이에요. 오늘, 이번 주, 한 달, 1년 안에 꼭 해야 할 것 하나만 정하자는 내용이죠.
저에게도 업무를 할 때나 인생의 방향을 설정할 때 아주 큰 도움이 되었어요. 특히 일이나 육아 등등 여러 가지를 병행하는 사람에게 선택과 집중이 너무 어려운 과정일 텐데요. 이런 연습을 하루하루 한다면 인생을 설계할 때 도움이 될 거예요.
우리 모두 ‘여성이라’는 합리화 뒤에 숨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여성이라 더 못하거나 여성이라 더 잘하는 게 아니고, 그냥 ‘나'인 거잖아요. 내가 정한 나의 한계에 갇히지 않고 계속 나아갔으면 좋겠고요, 그 과정에서 나만의 커리어, 개성, 라이프를 주체적으로 만들어나갔으면 합니다!
남들이 가지 않는 길을 도전하는 보경님의 일 이야기, 주변 사람들을 믿고 의지하며 두 아이의 엄마로 살아가는 삶 이야기… 어떠셨나요?
이번 주 인터뷰에서 이야기 했듯이, 혼자서 100점짜리 커리어를 만들려 애쓰기 보다는, 현재 내 상황에 맞게 80점만 하더라도 나머지 20점을 주변 사람들과 함께 채우려 노력한다면, 오히려 100점 이상의 결과물들도 만들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 과정에서 누군가 나의 20점을 채워주었 듯, 나 또한 누군가에게 20점을 더해줄 수도 있을 테고요.
보경님처럼 관점을 바꿔 함께 100점짜리 일과 삶을 만들어나갈 방법을 모색해보는 건 어떨까요? 혼자서 고민했던 것보다 좋은 방법들이 있을 수 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