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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브라이스와 줄리 Mar 26. 2021

잘 쉬다 갑니다!

육아휴직을 하고 나서 좋은 점이 있다면 부산 고향집에 자주 갈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전엔 길어야 주말, 만 이틀도 못 채우고 허겁지겁 올라오기 바빴는데 휴직 덕분에 아이와 한번씩 일주일 정도 머물다 온다.


서울보다 일찍 봄이 찾아온 부산은 벌써 벚꽃이 피기 시작해 만개한 나무도 꽤 있었다. 포근하고 따뜻했다. 스무살 때부터 부모님과 떨어져 살아서인지 고향집은 그 자체로 내게 '쉼'이었다. 엄마밥을 실컷 먹을 수 있고 치우지 않아도 되고 한껏 늘어질 수 있는 곳. 그다지 긴장하지 않으며 산다고 생각했는데 집에 가면 확실히 그동안 입고 있던 무언가를 내려놓고 가벼워지는 느낌을 받곤 했다.


특히 최근에는 아주 평범하고 사소한 일상을 부모님과 나눌 수 있어 좋았다. 예를 들면 집에 오는 길에 붕어빵을 사와서 나눠먹는다든가, 엄마랑 그날 먹을 찬거리를 함께 사온다든가 또는 과일을 깎으며 일일드라마(주말드라마 말고!)를 본다든가 하는 식의 일들 말이다. 별일 아닌 것 같은데 같이 살지 않으면 하기 힘든 일들이다. 


엄마 아빠는 매일 아침 6시가 되면 아침 산책을 나가고 아빠는 산책 후 곧장 동네 목욕탕을 가며 엄마는 한창 엑셀을 배우기 시작했다는 사실도 새롭게 알게 되었다. 엄마가 이제 와인 한 잔 정도는 마실 수 있게 되었고 아빠는 저녁 식사가 끝나면 자연스럽게 고무장갑을 끼고 설거지를 하는, 집안일꾼이 되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이번에 엄마와 갔던 공원. 사람이 거의 없는 넓은 벌판에 앉아 도란도란 얘길 나누었다. 가장 좋았던 순간이었다.


주말에 잠깐 올 때는 그 자체가 이벤트가 되어서 외식도 많이 하고 '딸이 좋아하는 것을 반드시 해먹여 보내야한다!!'와 같은 사명감 때문에 특식을 해주시곤 했는데 꽤 긴 시간 머무르다보니 오히려 자연스러운 시간들을  보낼 수 있어 더 편하고 좋았다. 


물론 집에 와 있는 동안은 육아와 집안일로부터 해방될 수 있다는 것도 좋은 점 중 하나!(사실은 집에 내려가는 가장 큰 이유다..ㅎㅎ) 남편도 우리가 보고싶어 어떡하냐며 울상을 짓는 듯 했지만 입꼬리는 헤어질 때까지 끝내 내려가지 않았고... 어쨌든 모두에게 윈윈이었던 친정나들이었다.


그래도 결혼하기 전과 달라진 점이 있다면 고향집이 편하고 아늑하긴해도 '우리집'은 더이상 부산 부모님집이 아니고 남편과 아이, 우리 셋이 함께 살고 있는 지금 집이라는 것. 어렸을 때 엄마가 외할머니댁에 가서 '잠은 우리집 가서 자야지~'라고 하실 때마다 이해가 가지 않았다. 오랜만에 친정에 왔는데 잠을 집에 가서 잔다고? 나같으면 엄마(외할머니)랑 자고 싶을 것 같은데- 했는데 이제는 엄마 마음을 좀 알 것 같다. 어쩌면 그래서 친정을 좋다고 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며칠 실컷 쉬다가 다시 돌아가서 열심히 살아갈 힘을 주니까.


복직 전까진 고향집에도 자주 가고 이 시간들을 더 소중하고 귀하게 생각해야겠다. 그러고보니 부모님께 생화를 직접 사서 드려본 적이 없는 것 같다. 가까이 살지 않아서 해보지 못하는 것 중 하나인 듯 하다. 다음엔 싱그러운 꽃을 한아름 사서 드려봐야지. 힘들고 무기력할 때도 더러 있지만 그래도 아이를 낳고 일을 잠시 쉬게 되면서 얻는 것도 참 많다. 감사한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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