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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브라이스와 줄리 Aug 22. 2021

마지막 밤을 보내며

지난주, 회사에 사직서를 내고 왔다. 오랜만에 만난 동료들은 너무나 반갑게 맞이해주었고 또 아쉬워하며 섭섭해하기도 했다. 그러나 진심으로 응원했고 따뜻한 말들을 전했다. 이들과 함께 했던 지난 시간들이 떠오르며 나도 정말 아쉬웠다.(순간 사직서 찢을뻔...) 얼마 남아있지 않았던 내 짐들을 챙기고 돌아오며 잘한 선택일까 다시 한 번 곱씹었다.


하지만 이미 이직을 하기로 결정한 이상 잘한 선택인지 고민하는 일은 더이상 의미가 없겠지. 사실 휴직 중에 이직을 할 생각은 전혀 없었다. 그동안 이직을 여러번 했지만 이제 아이도 있고 당분간 회사를 옮기는 일은 여러모로 내게 부담이 되는 일이었기에 몇 년은 그냥 지금 자리를 지키자고 생각했다.


그러다 한 달 전 쯤 학교 선배로부터 연락이 왔고, 선배의 친한 지인이 스타트업을 운영하는데 여기서 일해보지 않겠냐는 제의를 받았다. 마침 그 회사가 집과 그리 멀지 않아서 일단 한 번 만나보겠다고 했다. 일 년 가까이 쉬면서 몸은 바쁘지만 크게 자극 없는 일상의 연속이었던지라 오랜만에 새로운 사람을 만나서 리프레시나 해보자 싶었다.


하지만 그곳에서 적극적으로 여러 조건들을 제시했고 마침 그 조건들이 내가 속해 있던 회사에서 갈증을 느끼던 부분을 채울 수 있는 요소들이었다. 여러가지로 바쁘고 정신은 없겠지만 그래도 그 속에서 무언가를 직접 쌓아보고 바꿔볼 수 있는 그런 분위기와 환경들. 내가 기존 회사에서 가장 답답했던 부분.. 

경력도 인정해주었고 처우도 괜찮았다.


그때부터 한 달 가까운 시간 동안 정말 많이 고민했다. 지금까지의 이직 중에서 가장 오랫동안, 가장 많이 고민했다. 나는 이미 여러번 이직을 했고 아이가 돌이 되기 전에 일을 시작하는 것에 대한 부담도 있었다. 무엇보다 기존 회사는 아이를 키우는 동료들이 많은 회사여서 일과 육아에 대한 이해도와 포용도가 확실히 높았고 이는 내게 큰 장점이었다.


그러나 가장 큰 고민은 갑작스럽게 온 기회에 대해 너무 성급하게 결정한 게 아닐까, 이 기회가 아니더라도 나중에 복직하고 다시 다른 기회들을 신중하게 노려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스스로에 대한 확신없음이었다. 결국 한 달 가까운 시간 동안 결국 자기확신과 명분을 얻기 위한 고민을 거듭했던 것 같다.


내가 여러 이직을 거쳐오면서 결국 궁극적으로 하고 싶었던, 이루고 싶었던 목표점이 무엇이었는지부터 다시 생각했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 어디에 있는 것이 더 나을지 어떤 커리어를 계속 해서 쌓아야할지에 대해서도 고민했다. 오랜만에 10년 전 처음 일을 시작할 때부터 중간 중간 거쳐왔던 결정의 순간들을 돌아보았다.


또 현실적으로 일을 하면서 아이를 키우기에 '좋은' 여건은 아니더라도 육아와 일을 병행하는 것이 '가능한' 환경인지도 살펴봤다. 남편과도 오랫동안 대화했고(남편은 처음부터 새로운 곳에 가봤으면 하는 쪽이었다. 그래서 어떻게 보면 더 고민이 됐다. 반대했다면 남편을 핑계로 그냥 안 간다고 얘기할 수 있으니까.) 어쩌면 정말 마지막이라는 마음으로(실제로 마지막은 또 아니겠지만...) 가보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기존 회사도 분명 좋은 부분이 많았던 곳이었고 또 개인적으로 계속 도전해보고 싶은 영역이어서 잘한 결정인지 아직도 가끔은 돌아보게 된다. 그리고 아이에 대한 부분도 남편을 비롯해 주변 도움을 받기로 했지만 마음 한켠에 여전히 큰 무거움으로 자리해있다. 


이직을 하기로 결정한 후, 아이와 놀다가 '내가 아이 걷는 모습을 보는 첫번째 사람이 아닐 수도 있겠구나'라는 생각이 순간 들어 눈물을 왈칵 쏟은 적이 있다. 우연인지 모르겠으나 아이가 내 눈물을 보고 난 후 며칠간 지금까지 보인 적 없는 껌딱지 모습을 보였고 불안해했다. 그 후로 아이에게 불안한 마음을 보이지 말자고 다짐했고 노력하고 있지만 가끔은 나도 모르게 마음이 확 무너지는 것 같은 기분이 들 때가 있다. 평소 복직과 아이의 어린이집 생활에 대해선 쿨한 편에 속한다 생각했는데 역시 쿨한 건 없다.


어쨌든 최종 결정을 내리고 아이도 지난주부터 아침 9시부터 오후 4시까지 풀로 어린이집에 있어보고 남편과도 앞으로 어떤 루틴으로 아침 저녁을 보낼지, 주말엔 어떻게 집안일을 할지 등등 정말 지극히 현실에서 필요한 부분을 적용하고 연습해보는 시간들을 거쳤다. 다행히 아이는 7시간씩 있음에도 아주 잘 적응해주었고 선생님께서도 두 시간 더 늘리는 건 문제가 없을 것 같다고 하셨다.(아이 하원은 남편이 6시에 해주기로 했다)


그리고 마지막 숙제였던 회사에 찾아가 사람들과도 작별인사를 나눴다. 이전에도 누군가와 헤어질 때면 늘 아쉬웠지만 나이가 들어서인지 이별 앞에 괜히 더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다. 특히 내 복귀를 기다렸던, 나보다 아이를 조금 먼저 낳고 조금 먼저 복직해 있던 언니, 친구들이 정말 너무, 너무.. 아쉬워하며 왈칵하는 모습을 보였을 땐 나도 마음이 정말 좋지 않았다. 아무래도 비슷한 시기에 아이를 낳고 여러 경험과 감정들을 공유하며 서로에게 의지할 시간들만 기다렸기에 마음이 더 그랬던 것 같다.


이제 내일, 바로 당장 내일 첫 출근을 시작한다. 남편은 옆에서 틈틈이 "이제 출근까지 20시간 남았네?" 몇 시간 후에 "오 이제 출근까지 16시간 남았네?"라고 깐족 아닌 깐족을 부리고 있고... 나도 어제 오늘 주말엔 아이와 남편과 좀 더 밀도 있게 시간을 보내고 싶어 집에 머무르며 더 열심히 놀고 산책도 하고 밥도 해 먹었다.


이직을 여러번 해서일까. 사실 엄청 설레지도 엄청 두렵지도 않은, 그냥 덤덤한 느낌에 가깝다. 그래도 일 년 만에 일을 하는 건 확실히 좀 떨리긴 하다. 남편에게 나 엑셀 버튼도 못누르는거 아니냐고 너스레를 떨었는데 한편으론 진짜 머리가 굳어서 빠릿빠릿하지 못하면 어쩌지, 걱정이 되기도 한다. 그러다가도 일이 뭐 다 똑같지, 지금까지도 연관성 1도 없는 산업군으로 이직하면서 적응하고 또 적응했는데 내 짬을 믿자 싶다가도 갑자기 잘 할 수 있을까 어깨가 축 처지는... 그런 상태?


일단 일찍 자야지. 그리고 미리 생각해둔 옷을 꺼내 입고 오랜만에 화장도 하고 아이와 '엄마 잘 다녀올게. 우리 아이도 오늘 하루 정말 누구보다 즐겁고 행복한 하루 되길!'이라고 외쳐주고 남편과도 오랜만에 따뜻한 포옹으로 출근길을 배웅해야지. 새출발 할 수 있도록 지금까지 잘 도와준 남편과 아이, 그리고 응원해준 모든 내 사람들에게 감사함을 다시금 새기며, 굿나잇이다....(흑....... 굿나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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