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개업 변호사로 활동하던 시절에는 말 그대로 정글에 내팽개쳐진 나약한 인간과도 같았다. 하루하루가 생존의 연속이었고, 어떻게든 나를 속여 내가 가진 것을 빼앗으려는 살쾡이들이 득실거렸다. 덕분에 4년이란 시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를 정도로 아드레날린이 가득 찬 삶은 흥미진진했고, 수많은 인간 군상을 경험하며 세상 돌아가는 이치를 뼈저리게 느끼기도 했다.
내가 개업을 할 때만 해도 1인 개업 변호사면 높은 자율성과 독립성이 주어질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나 그것은 착각이었다. 먹고사는 문제가 직결되면 나의 신념과 상충하는 행동을 해야 할 경우가 점점 많아지고, 자율성과 독립성은 점차 의뢰인의 요구와 필요성에 따라 축소될 수밖에 없었다. 물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 떠다니는 해파리라도 붙잡아야 하는 심정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피로감이 코로나와 겹쳐서 한계에 봉착했고, 마침 시민권을 취득하며 연방 공무원 지원 자격이 되자마다 공무원 자리에 지원을 했다. 여러 번의 인터뷰를 거쳐 최종적으로 두 곳에서 오퍼를 받았고, 고민 끝에 현재 근무하고 있는 기관에 몸담게 됐다.
정부 관료로서의 생활은 온실에 비유할 수 있다. 바깥세상에 비가 오거나 천둥이 치더라도 온실 안은 평안하다. 누군가 내 밥그릇을 호시탐탐 노리고 있는 것도 아니고, 내일은 과연 식탁에 먹을거리를 올릴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을 할 필요도 없다. 매주 더도 덜도 아닌 40시간만 채우면, 2주마다 개업 시절 새로운 사건을 수임한 만큼의 돈이 통장에 찍힌다.
덕분에 쓸데없는 모임에 나가거나, 친하지 않은 사람에게 친한 척을 할 필요도 없다. 굳이 새로운 인간관계를 만들 필요도 없었다. 매일 세상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특히 사람들과 어떤 대화를 이끌어가야 하는지 알기 위해서 신문이나 뉴스를 찾아볼 필요도 없어졌다. 결과적으로 내 삶은 단순해졌고, 사회적 활동반경도 줄어들었다.
결론적으로 나는 이 생활에 만족한다. 소시민적인 생각이라고 할 순 있겠지만, 그 어느 때보다 만족하고 행복하다. 특히 변호사로서 높은 자율성이 주어지기 때문에 직업적 만족감이 크다. 나는 이제 거의 10년 차 변호사지만, 공무원 사회에서는 거의 막내 취급이다. 아무래도 젊은 변호사들 사이에서는 공무원이란 직업이 별로 인기가 없어서 그런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밖에 있을 때보다 훨씬 많은 권한이 주어지고 내 신념과 믿음에 따라 업무를 처리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국가와 국민을 위해 봉사한다는 자부심은 덤.
쉽게 말하면 소위 "고고한 삶"을 추구할 수 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