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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TAYTRUE Aug 23. 2018

봄날은 간다

허진호식의 사랑에 대한 화법은 꽤나 흥미롭다.



매년 찾아오는 봄처럼 그저 스쳐가는 사랑이었다고 해도 우리는 그 짧은 시간의 이야기에 오래도록 마음 아파한다.


상우의 봄과 은수의 봄은 닮은 듯 닮아 있지 않다. 멀리 사라져가는 은수가 점점 흐려진 초점으로 담아지고, 벚꽃이 흐드러지게 핀 길에 남은 건 상우뿐이다. 처음이나 마지막이나 상우는 의도한 것처럼 늘 그 자리에 있다. 상우는 돌아서 가는 은수의 뒷모습을 보며 어떤 말들을 삼켰을까. 어떤 마음으로 자신을 위로했을까. 카메라도 아쉬운 듯 쉽게 움직이지 않는 것이 더 마음을 아프게 한다.



유지태가 부른 ‘그해 봄에’에 담긴 가사처럼, 사랑한 기억들이 아스라이 또 다른 기억으로 덮여지고, 사라지진 않더라도 결국 세월에 묻히게 된다. 헤매이지 않고 사랑할 이가 어디 있을까. 조금 멀리 가도 괜찮으니 후회하지 않으면 된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는 이번에도 봄을 잘 견디어 냈다고.



어떻게 사랑이 변하냐고 묻던 상우는 사랑은 변한다는 것을 깨닫는다. 둘의 사랑이 좋은 쪽으로든 나쁜 쪽으로든 변한 게 사실이고, 상우는 그것을 받아들일 나름의 자세를 취했다고 생각한다.


봄에 풍성하게 피어났던 벚꽃잎이 봄의 끝자락에 다시금 바닥으로 떨어져 마지막 최선을 마감하는 때, 상우는 또 한 단계 성숙해진다.


대나무들이 바람에 흔들렸듯이 은수로 인해 상우의 마음이 흔들렸었고, 흐르는 냇가의 물처럼 상우의 마음에 흘러들어왔던 은수, 바람결에 따라 흔들리는 보리밭 속에서 그 흘러가는 것을 받아들이는 상우의 모습은 사랑의 생성과 소멸에 대해 잘 나타내고 있다. 우리가 이 둘의 사랑에서 포착해야 할 것은, 이기적인 사랑이나 미련한 사랑이 아닌 그 어느 순간의 사랑의 아름다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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