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 지우고 싶은 기억들이 있다. 자꾸만 떠올라서 나를 초라하게 만드는. 우리가 또 다른 우리로 변모된 것을 깨닫던 때, 내가 그전의 우리를 안쓰러워해도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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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들어있는 줄 알면서도, 차마 열어보지 못하는 상자가 있었다. 알고 있었으면서도, 열고 나서 보게 된 것들에 의해 상처 받은 맘은 좀처럼 회복되지 않았다. 안정과 불안정 그 찰나의 순간, 나는 변화할 수밖에 없었다. 그 때에 자신이 덜 힘들어질 수 있는 법을 아는 이를 만나고 나서는, 내 방식의 전부를 바꿔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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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 사용되면, 주워 담아지지 않는 것은 비단 말뿐이 아니었다. 정성을 담아 꾹꾹 눌러썼던 글자들은 지우기가 너무 어렵기 마련이다. 그러니 지우고 싶은 것이 온전히 지워지지 않는다고 낙심하지 말 것. 천천히, 자연스레 바래질 수 있도록 시간을 둘 것. 내 지난 시간들 속에 있던, 한때는 전부인 듯 소중했던 그 많은 것들을 지운다고 마음먹은 순간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거, 그게 더 슬픈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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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들어진 것들에서 오는 위안, 위로라도 되게 해달라고 기도한 밤에는 누군가에게서 던져진 그 말 한마디가 너무 따뜻하게 다가와서 밤새 잠 못 들기도 했다. 그런 밤을 숱하게 보낸 후에는 조장하는 것들을 조심해야 한다는 생각을 품었었다. 그러나 나를 가장 조장하는 것은 그 누구도 아닌, 나 자신이라는 걸 알았다. 그 이후부터 내 마음속에 거짓 없는 내가 자리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마음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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갖고 있던 기억이 다음까지 버티고 살아갈 수 있는 힘이 되지 못한다는 걸 깨닫는 순간, 나는 다시 흔들렸다. 내가 상처받는 것보다 더 괴로웠던 것은, 내가 누군가에게 상처를 줬다는 것을 깨닫게 될 때였고, 그럼에도 내 상처가 더 큰 것 같다는 바보같은 생각이 들 때였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분노는 부끄러움으로 덮여졌다. 여전한 아픔들 속에서도 다시금 일어날 수 있던 이유가 무엇에서였는지, 깊게 생각해보아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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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누군가에게, 또는 누군가 나에게 고마움을 느끼던 순간들은 그저 찰나에 반짝이고는 기억에서 사라져가기도 했다. 그것을 인정해야 했다. 그러니 지금 이 순간에, 내게 있어 유한한 것들을 품을 용기를 찾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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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럴 수도 있지’라는 생각을 많은 일에 적용하게 됐다. 그럼에도 그 안에 온전히 들어가지 못하고 삐죽 나와 나를 괴롭히는 것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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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자가 경험한 것 이상으로 이해하기란 너무 어려운 거니까. 힘든 거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