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곁을 지나가는 검고 흰 것들이 아는 체하며 서성이면 그 끌림을 거부하지 못하고 기어코 붙잡으려 하던 때. 끝내 잡히지 않던 것들 앞에 가만히 쪼그려 앉아 두 손을 모으면, 보이는 것은 잠깐이고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한 것만 같았다. 힘들었던 여름의 마음을 가을에 기대기에 그 계절은 꽤 초라했다. 내가 그토록 보고 싶어 했던 이를 만났던 그 가을의 끝자락에 이상하게도 내 마음은 전혀 위로받지 못했다. 삼켜야 할 것들이 많아졌다. 소화시켜야만 했다. 넘어가지 않아도 누군가가 건넨 물을 받아 들고 벌컥벌컥 마셔야만 했다. 그래야 삶이 영위됐다. 내 의도와는 다르게 삶이 연장되고 있었다. 마음이 불안정할수록 보이는 것은 많아졌다. 내 뜻과는 달리 볼 수 있는 것들이 늘어가는 게 사실 무서웠다. 하나만을 바라고 바라던 그 길고 길었던 날들이, 둘로 나누어지는 순간에 나는 또다시 희망을 품었음을 고백한다. 꿈에서만 볼 수 있던 사람이, 꿈에서조차 나를 만나 주지 않을 때는 모든 것이 내 잘못인 것만 같았다. 내가 편해지자고 애써 마음 굽히는 일도 얼마나 바보 같은 일인지 알기에 다가서는 일 또한 차마 용납할 수 없었다. 이제 그만할 때가 되지 않았느냐고 모두가 물어보는 듯하지만, 그저 두 눈만 마주칠 뿐이다. 그래 얼마나 더 남았을까. 얼마나 더 견딜 수 있을까. 나를 안아주는 연습, 그 시작조차 되지 않는다는 것이 힘이 든다. 현재 상황을 인정하고 수그리는 것. 대안이 합리화가 되는 것만큼 바보 같은 건 없다고. 하루에도 수십 번씩 농담으로 흩어지는 말들 속에서, 정확한 사랑만이 세상에서 겉돌지 않을 수 있게 하는 힘이자 용기가 된다는 거. 나를 욱여싸던 것들에 의한 소박한 아픔을 이겨낼 수 있는 힘, 이를테면 무지함으로. 모든 것에 따르는 보응을 생각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