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과 번아웃을 치료해보자 feat. 의사보다 정리전문가
정신과 방문 뒤, 가을과 겨울을 거치며 우울감은 줄어들었다가 깊어졌다가를 반복했다.
신경줄이 끊어지기 직전이 됐고 뛰어내리고 싶음+길 가다 차에 치이고 싶음의 단계까지 왔을 때
비로소 퇴사를 결심했다.
우울과 함께한 이후부터는 뭘 진득하게 할 수가 없는 내 자신이 슬퍼질 때가 많았는데,
영혼을 갈아서 지금의 인생을 만들어놨더니 더 나아갈 수 없는 내가 되어있다는 것이 가장 슬펐다.
남은 것이라고는 상실된 인류애와 분노, 그토록 되고 싶었던 나, 그리고 다 타들어간 내가 보인다니.
이렇게 되버린거 뭐라도 남아서 다행인가 싶다가도, C8... 그냥 죽고 싶은데 이제와서 뭣이 중헌가싶다.
가족의 죽음을 경험해봤기 때문에 나는 죽고싶지 않다. 죽음이라는 것이 얼마나 허망한지.
그리고 남은 사람들에게 어떤 지옥같은 경험을 남기는지 너무나도 뼈저리게 잘 알기 때문에.
그런데도 죽고 싶어서 멈출 결심이 섰다. 상담이고 나발이고 약을 먹어야겠다는 생각이 그제서야 들었다.
그 후 주변 가까운 일부 사람에게 우밍아웃(우울증 고백)을 살짝 했더니 '의지로 극복' 타령 시작되서
그 순간 창 밖으로 뛰어내리고 싶은 충동이 엄청났다.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이런 생각을 하면 안되지만, 정말 너도 살다가 꼭 한번쯤은 우울해져서 '의지로 극복해보렴'이라고 들어보는 경험을 했으면 좋겠다고 기도할만큼 인성이 파탄났다. C818. 개같은 의지 타령. 다시 생각해도 빡치네. 의지가 없었으면 진작에 뛰어내렸지. 에라이. 18... 괜히 말해서 가뜩이나 힘든 인생에 분노조절장애까지 생겼다.
다시금 느꼈다. 의사고 주변인이고 뭐고 사람은 나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하니, 나의 치료 의지에다가 약의 힘을 더해 의존해볼 수 밖에. 세상에 존재하는 그 어떤 사람도, 신도 나를 구원할 수가 없다. 무수한 세월을 기도했지만 여전히 나는 우울을 견딜 수가 없다. 이제는 오로지 내 자신만이 스스로를 구제해 줄 수 있다. 실패한다면 정말 죽을 수도 있겠지만 이렇게라도 버티면서 살아야지 어쩔 도리가 없다.
간바레, 내 인생.
죽기 전까지는 해보자.
아 맞다. 내 몸 하나도 어찌 못하는 상황이라 집도 개판이어서 정리 전문가의 도움을 빌렸다. 우울증에는 청소랑 정리가 좋다더니 진짜인 것 같다. 쓰레기장에 있는 것보다는 기분이 한결 나았다. 돈은 적지않게 들지만 그만큼 만족스럽다. 또 나름대로 위안이 된 것은, 우울한 사람들이 정리 전문가의 도움을 많이 받는다고 하셨다. 나 말고도 살아보려고 몸부림 치는 사람들이 있다는 걸 아니까 조금 위안도 되고 연대감도 든다. 나에겐 정신과 의사보다 정리 전문가가 훨씬 낫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