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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eautifulsunnyday Jun 17. 2019

둘째 임신, 회사 인사부장이 건넨 말

진급 후 이른 둘째 임신, 스웨덴 회사 인사부장이 건넨 성숙한 인사말

첫째를 낳고 회사에 복귀하니 회사생활의 재미는 말로 이룰 수 없었다. 육아 휴직 중 집에 있으면서 내가 일에서 갖는 의미를 다시금 확인하는 계기도 되었고, 하루종일 아이와 살림만 하다 밖에 나와 내 이름이 불리어지니 그리 재미있을 수가 없었다. 마침 아빠가 집에서 육아휴직을 이어가고 있어 마음도 편하고, 내 육아휴직도 마음편하게 쓰게 해 준 회사도 고마웠다. 그래서 재미있게 즐기며 일했고 얼마 안 있어 진급도 하게되었다. 진급은 여러 책임을 의미하는 것 이였고 또 조직이 원하는 그 책임을 다 잘 해내고 싶었다. 그러나 긴 프로젝트들 앞에서 개인의 숙제가 남아있는 기분이 들었다. 너무 늦지않게 우리 첫째의 동생을 만들어줘야하는 숙제. 그리고 얼마 후 나는 둘째를 임신하였다.


아무리 스웨덴이라지만 회사에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임신을 해도 출산까지 일을 해 주지만 사람이 바뀌면 조직에 무리가 가는 것은 사실이니 진급의 기회까지 매니져에게 조심스레 소식을 전달하였다. 그러자 매니져는 너무 축하한다며 근래 내가 간식을 부쩍 늘린 것을 보고 짐작하고 있어다며 눈을 찡긋하였다. 나는 솔직하게 주어진 업무가 많은데 약 6개월 후 인사이동이 있을 것이 미안하다고 말했다. 그러자 바로 지금까지 잘 해 주었고, 절대 임신 기간 중 회사 생각으로 건강에 무리 있게 일하지 말라고 전해줬다. 


다음은 인사부장- 즉 공식적으로 회사 이사회에 말할 시간이였다. 매니져는 가정이 있고 아직 젊은 나이라 나의 상황을 이해해 주는 것이 어느정도 생각했던 바다. 그러나 인사부장 및 회사 이사회는 자녀가 다 성장하였거나 없는 사람들이 많이 있어 진급까지 한 내가 불과 반년 후 임신 사실을 전한다는 거에 크게 기뻐하지 않을거라 생각하였다. 물론 스웨덴 법이 있어 절대 불합리한 대우를 하리라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이제 자리잡고 나아갈 팀에 기대가 꺽이는 건 사람이라면 비슷하게 느낄 것 같았다. 그래서 더 조심스레 인사부장에게 둘째 임신사실을 알렸다. 그런데 인사부장의 답변은 내가 기대한 것이 아니였다. 인사부장은 단숨에 환호를 지르며 "내가 맞았어! 요즘 너 휴게실에서 보고 임신했을거라 짐작했었는데 내가 맞았어! 너무 축하해, 첫째 동생 생기는 구나! 이렇게 좋은 소식 너무 오랜만에 듣는다. 그리고 내 짐작이 맞아서 난 더블로 기뻐!" 라고 말하는게 아닌가. 그래도 조금은 서운한 기운을 느낄 수 있을거라 생각했던 나는 어안이 벙벙해 먼저 미안하다는 말을 하게 되었다. "너무 고마워. 그런데 나 진급한지 반년도 안되었고 프로젝트도 여러개 인데 회사가 준 기회를 늦추는 거 같아 미안한 생각이 들어." 그러자 그때 인사부장이 내게 한 말, 이 말은 평생 잊을 수가 없을 것 같다.

"우리 다 가정이 있는 개인이야. 일과 회사 중요한 삶의 부분이지. 하지만 우리가 회사에서 열심히 일 하는 이유는 가족들을 위한거 아냐? 개인과 가족이 먼저고 그 다음이 일과 회사야. 절대 미안할 필요없어."


이 말 한마디를 듣고 인사부장 방에서 나오는데 마음에 있던 돌이 내려가는 후련함, 고마움, 애사심, 자랑스러움 등 여러 감정이 들었던 생각이 난다. 솔직히 이 한마디는 단순한 급여인상보다도 효과있게 내 애사심을 증대 시켰다. 출산 전 해야 할일들은 최대한 마무리 짓고 후임자에게 인수인계도 하여 팀원들이 크게 인사변동을 느끼게 하고 싶지 않았다. 육아휴직 후 꼭 돌아와서 하던 프로젝트들도 성사시키리라 생각하였다. 또한 직장에서 인간적으로 존중받았다는 이 느낌의 효과를 직접 느꼈으니 앞으로 긴 내 회사생활에서 타인이  내 자리에 있다면 잊지않고 똑같이 인격적으로 대해주리라, 다짐까지 하게 되었다. 그리고 난 매니져와 인사부장이 말 한대로 건강에 무리가지 않는 선에서 출산때 까지 일을하고 프로젝트 진행하고 인수인계하고 멋지게 퇴장하였다.  


육아휴직은 스웨덴 조직에서도 쉽지만은 않은 제도이다. 인사변동이 생기면 그 어떤 조직도 적응기가 필요하고 루틴이 변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스웨덴 회사에는 조금 불편해도 팀원들이 조금씩 도우면 조직은 돌아간다고 믿는다. 종종 팀원들이 누군가 긴 휴가를 가거나 휴직을 하면 "우리는 해낼꺼야, 걱정마" 라고 말해주는 것을 듣는다.  불편해도 돌아가는 것이 조직이고, 만약 한 개인의 부재로 조직이 돌아가는 것에 크게 문제를 일으킨다면 그 조직 균형 자체에 문제가 있는 것이니 그 계기로 문제점을 진단하고 수정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생각하는 것이다. 


직원들의 충성심, 애사심을 높이고 싶은가-  그렇다면 그 개인의 삶을 존중해 주는 기업문화를 정착하면 어떨가 싶다. 출산과 육아 정책은 많이 공론화 되어가고 있으나, 정책이 현실에서 잘 적용되지 않는 이유는 문화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멋진 정책을 만드는 국가나 회사만큼 중요한것은 보통의 사람들이 -아래에서부터 위까지 조직 전체가- 서로의 개인과 가정을 존중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스웨덴의 좋은 육아 정책이 있어도 회사에서 내 임신과 출산을 이렇게 성숙하게 축하해 주지 않았다면 내 육아휴직의 퀄리티는 훨씬 낮았을 것이다. 내 작은 이야기가 몇몇 개인들에게만이라도 생각의 전환점이 되었으면 하는 작은 바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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