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에 대한 생각
2012년부터 2022년까지 지난 10년간, 같은 이야기를 반복해서 해왔다. ‘창원에 창원만의 고유한 글꼴이 필요하지 않을까.’
글씨(캘리그래피), 글자(레터링), 글꼴(폰트)은 서로 다르지만, 어린 시절 친구에게 “네 손글씨가 참 예쁘다. 부러워. 나도 너처럼 쓸 수 있으면 좋겠어.”라는 이야기가 내 가슴을 설레게 했고, 2007년에 서울에서 만든 서울 남산체가 창원시 공공 표지판에 사용된 게 싫었다.
그때부터 창원뿐 아니라 전국의 도시마다 전화를 해봤다. 처음 전국에 전화를 다 해보니 우리나라에는 11곳의 도시가 그 도시만의 글꼴을 갖고 있었다.
2022년 10월, 한글날이 다가와 전국을 조사해보니 올해만 도시에 글꼴이 개발되는 곳이 17곳이다. 총 54곳이 도시 글꼴을 만들었거나 만들고 있다.
이 이야기를 더 많은 분들이 알 수 있도록 경남도민일보 주성희 기자님이 적어주셨고, 경남도민일보를 읽은 지인들에게서 오늘 하루 종일 전화가 계속 왔다.
경남 MBC 라디오에서도 “어린 시절, 손글씨를 칭찬해주었던 초등학교 때 친구 분의 이야기를 이 방송에서 해주셨으면 좋겠어요.”라고 경남도민일보 주성희 기자님을 통해 연락이 오셨다.
나의 지난 10년(2012년-2022년)의 이야기는 “부럽다”, “멋지다”, “꾸준함의 비밀이 궁금하다”라는 격려를 받아왔지만 지난 이야기를 앞으로도 계속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미지수다.
‘임대차 계약해지 예고 최종 통보’라는 일상의 파도를 온전히 마주하며 오늘이라는 삶을 매일매일 보내야 하기 때문이다.
이는 단순히 나 개인만의 경제적 어려움이 아니다. 글씨, 글자, 글꼴 분야가 30년 전이나 지금이나. 시장 규모는 정체되어 있다. ‘Good Price’ 즉, ‘Value’를 만들지 못하고 있다.
1989년 문체부에 올린 견적 금액이 한 글자에 4만원이었으니 글꼴(2,350자) 개발 비용은 영문, 특수문자 제외해도 1억원이었다. 그런데 2022년 10월 5일, 경남도민일보 기사를 보니 경남 거제시가 개발하는 글꼴 개발 예산은 3종 이내 2,000만 원 수준이었다. 30년 전에 1억 원이던 가치가 1,000만 원도 안된다는 뜻이다.
글꼴 말고 글씨나 글자는 어떨까? 내가 글씨를 써주고 300만 원 받았다고 하니 어느 캘리그래피 작가는 “아유, 저는 30만 원도 못 받아요.”라고 했다.
이 시장을 혁신하고, 대중화하고 싶지만 나의 뒤통수에 오히려 “뭐가 그리 비싸”라고 말하는 고객이나, ”글꼴 하나 제대로 못 만드는 게”, “서예 필법도 하나 모르면서”, “병호씨는 자기가 뱉은 말 때문에 언젠가 미끄러질 거야.”라고 말하는 업계의 사람들을 마주하면 더 자신이 없어진다.
그럼에도 오늘. 내 집 앞엔 소복이 선물 상자들이 쌓여있고, 내가 나온 신문을 찍어 보내주고, 전화 주고, 밥을 사주시는 분들로 가득했던 하루다.
“당신이 잡초에 관해 관심을 가지면 그 잡초는 꽃이 된다”
- 앨런 알렉산더 밀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