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생각하는 잘 사는 방법 중 하나는 위성과 안경을 오가는 것이다. 위성은 우주에 있다. 등 뒤의 아득한 광활함을 느끼며 지구를 내려다 본다. 하지만 위성의 시야에 인간사는 너무 작고 흐릿하다. 그래서 어떤 일도 의미가 없다고 느껴진다. '그래봐야 우주의 먼지 같은 일...' 하는 생각이 들며 초연해진다. 그저 명이 다할 때까지 흘러가는 대로 공전할 일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안경의 시야에는 인간사가 또렷하게 보인다. 코앞에서 놓친 버스, 상대방의 살짝 찡그린 눈썹, 웃으며 다가오는 얼굴, 그 모든 것이 크게 느껴진다. 안경은 눈 앞에 닥친 일만 보기 때문에 내가 속한 조직, 상황에 매몰되기 쉽다. 위성과 우주는 각각의 특징과 위험성이 있다. 그래서 두 관점 다 갖고 필요에 따라 자유롭게 오갈 수 있어야 한다.
일을 할 때도 안경을 쓰고 이 일이 인간적인 관점에서 왜 중요한지 이해해야 한다. 그래야 몰입하고 의미를 찾을 수 있다. 그러다 보면 일에 지나치게 일희일비할 때가 온다. 조직에서 나의 위치, 남들이 나에 대해 하는 평가가 전부인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그럴 땐 안경을 잠시 벗어 놓고 위성을 타고 올라가야 한다. 사무실도, 서울도, 한반도도, 지구도 아주 작아질 때까지 올라간다. 그곳에서 나의 존재는 아주 미미함을 상기한다. 모든 일이 별 의미가 없다는 허무가 주는 모순된 평안함을 안고 다시 지구로 내려온다. 그럼 내가 닥친 상황은 변함이 없지만 내 마음은 조금 편안해졌음을 느낄 수 있다.
반대로 '이렇게 아등바등 살아 뭐하나' 하는 생각에 밤새 뒤척인다면 위성에서 내려와 안경을 써야 한다. 나의 마음을 가만히 휘저었던 일들을 떠올려본다. 심야영화를 보고 집에 돌아오던 찬 밤, 수분과 흙 냄새가 섞인 공기, 방과 후 놀이터에서 보던 주황색 하늘. 한 사람 한 사람을 무의미에서 구원하던 그 농담들, 웃음들, 감정의 동요들, 이해 받는 순간들, 이야기들. 그런 것들에서 뭐든 하고 싶다는 의욕을 찾는다.
두 관점 중 뭐가 맞는지 궁금해하던 때도 있었다. 하지만 사실 두 관점은 한 팀이다. 적절한 때에 서로 교대하며 보완해주어야 한다. 그런 팀워크를 발휘할 때 조금 더 괜찮게 살 수 있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