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글로그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빵떡씨 May 13. 2023

양브로의 정신세계

요즘 자주 보는 유튜브 채널이 있다. 정신과 의사 둘(형제다)이 출연하는 '양브로의 정신세계'라는 채널이다. 둘이서 심리 관련 주제에 대해 두런두런 얘기를 나눈다. 나는 특정 채널의 영상을 여러 개씩 잘 안 보는데, 이 채널의 영상은 30~40개 정도 봤다. 나는 텐션이 높은 사람을 보기만 해도 기가 빨려서 텐션 높은 유튜버의 영상은 많이 못 본다. 그런데 이 채널은 누가 시켜서 억지로 하는 듯한 인트로부터 묘하게 힘아리 없는 텐션까지 나랑 잘 맞는다.


특히 회사에서 힘든 일이 있었던 날이면, 이 채널의 영상을 자동재생해놓고 라디오처럼 들으며 퇴근한다. 왜 유독 힘든 날에 이 채널을 찾을까 생각해 봤다. 회사에서는 내 정신이나 감정이 가장 우선순위가 낮다. 내가 책임져야 하는 일, 원만히 유지해야 하는 관계, 지켜야 할 마감 등이 우선순위가 더 높다. 그런데 이 채널에서는 내 정신과 감정을 가장 우선순위 높게 다뤄준다. 내 정신을 건강하게 하기 위해 이걸 해야 하고, 저게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래서 이 채널을 보면, 마음을 근육으로 친다면, 고강도 노동 후 마사지 받는 기분이다. 또 하나 좋은 점은 이 둘이 하는 얘기에는 '근거 있는 따뜻함'이 있다. 덮어두고 '괜찮아, 잘될 거야'라고 하는 게 아니라 '정신과적으로 봤을 때 이러한 이유로 네 잘못이 아니고,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해주는 것이다. T 맞춤형 위로랄까.


이 채널의 영상 중에 카푸어(car poor)에 대한 영상이 기억에 남는다. 카푸어는 엄청나게 비싼 차를 사는데, 60개월 할부를 해도 여력이 안 돼 버는 돈의 100%, 120%를 할부금으로 내고, 이 돈을 충당하기 위해 또 카드 빚을 내는 사람들이다. 이런 식으로 차를 사면 차가 내 전부, 나 자체가 된다. '나 람보르기니 타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정신을 지배한다. 람보르기니가 없으면 피카츄 없는 지우처럼 힘을 잃는다. 차에만 해당하는 얘기는 아니다. 다른 소비도 그렇다. 내 월급을 넘어서는 명품을 사면 명품을 들고 다니는 게 아니라 모시고 다니게 된다.


양브로는 카푸어 얘기를 하면서 옛날에 떴던 기사 하나를 소개해주었다. 할머니 한 분이 리어카를 끌고 가다가 고급 외제차를 긁었는데, 차주가 나와 좁은 곳에 주차를 해 죄송하다며 할머니에게 사과를 하고 보내드렸다는 기사다. 추측하기로 그 차주는 그 차를 사는 데에 본인 자산의 100% 가까이를 쓰지 않았을 것이다. 차의 흠집을 커버할 수 있는 능력이 있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할머니를 그냥 보내드릴 수 있었던 것이다. 만약 그 차가 60개월 할부로 사서 겨우겨우 할부금을 갚고 있던 차라면 흠집이 난 걸 본 순간 돌아버렸을 것이다. 왜냐면 그 차는 나의 전부니까. 남의 상황을 봐줄 여유가 없을 것이다. 무언가에 내 일부만을 할애한 사람과 내 전부를 쏟은 사람의 차이라고 생각한다.


이건 소비에만 국한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젊음을 바쳐 이루고자 한 꿈이 좌절되면 재기할 수 없을 정도로 망가지기도 한다. 내 모든 걸 쏟아 사랑한 상대가 이별을 통보하면 헤어지느니 죽겠다는 마음이 든다. 자식이 내 뜻대로 살지 않으면 "내가 널 어떻게 키웠는데, 내가 널 위해 무슨 짓까지 했는데!"라며 분노한다. 이 모든 상황의 공통점은 내 전부를 바쳤다는 점이다. 전부를 바쳐 뭔가를 하는 것이 낭만적이고 숭고하게 그려지곤 하는데, 실제로는 아주 위험한 일 아닐까. '난 이거밖에 없어', '난 이거 아니면 안 돼'라고 생각하게 하고, 탈출구 없는 구덩이에 매몰되는 기분을 느끼게 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어떤 것에도 전부를 바치면 안 되는 게 아닐까. 내가 그것의 주인이 되는 게 아니라, 그것이 나의 주인이 되니까.

매거진의 이전글 아코디언 파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