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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빵떡씨 Jun 18. 2023

타투공개쑈

"짜잔~ 나 타투했다!"

"..."

짜잔~은 커녕 짜게 식은 부모의 반응에 나는 걷었던 팔을 주섬주섬 내렸다. 아빠는 아휴 아휴 하며 자리보전하고 누웠다. 타투는 쳐다 보지도 않으셨다. 속이 안 좋다며 저녁도 먹는 둥 마는 둥하고 식탁을 떴다. 내 시나리오 상으로 이렇게까지 엄숙한 분위기는 아니었는데... 으이그~ 아빠가 하지 말라고 했잖아, 그거 뭐 좋다고 하니? 응? 정도로 마무리 될 거라고 생각했다. 내가 누굴 때린 것도 아니고 발가벗고 뛰어다닌 것도 아니고 그냥... 팔에 그림 하나 생겼을 뿐 아닌가.


엄마가 숙연해진 분위기를 바꿔보고자 이런저런 얘기를 했다.

"빵떡 아빠 내일 임플란트 심기 전에 많이 먹어 둬야죠."

"뭘 심는 거야 그게! 그냥 본 뜨러 가는 거지!"

"... 아니에요. 내일 심는 것까지 하는 거예요."

"아니야! 알지도 못하면서 말이야."

아빠는 한숨을 크게 쉬고 거실로 갔다. 임플란트를 심든 키우든 재배하든 그게 그렇게 중요한가. 당연히 별로 중요하지 않다. 아빠에게 거슬린 건 엄마의 말이 아니었다. 바로 나였다. 아 나는 그제서야 기억이 났다. 아빠가 기분이 나쁘면 어떤 식으로 표현하는지. 내가 어릴 때부터 아빠는 화가 나면 절대 삐진 이유를 말해주지 않는 연인처럼 굴었다. 신경이 날카로워져서 문을 쾅 닫고 물건을 세게 내려 놓고 짜증을 내고 괜히 시비를 걸었다. 마치 시위를 하듯이. 그럼 온가족이 아빠 눈치를 봤다. 내가 사회생활을 한 후 몇 년간은 그런 일이 없었는데, 그 버릇이 다시 나온 것이다.


나는 집 분위기가 숨이 막혀서 친구들한테 카톡을 했다.

'얘들아, 나 엄마 아빠한테 타투 공개했는데, 지금 집 분위기 조졌음'

'쿨토시하고 가지'

'쿨토시 미쳤냐 ㅋㅋㅋ 아 서울 가고 싶다'

'그래도 용기 냈네.'

'용기 내지 말걸...'

'ㅋㅋㅋㅋㅋㅋㅋ'

이렇게 ㅋㅋㅋ이 오가는 카톡을 하다 보면, 내가 처한 상황이 별로 심각하지 않은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시트콤의 한 회차 에피소드 정도인 것 같은 기분. 하지만 팔에 그림을 그린 일이 별 거 아닌 세상과 내가 존재하는 이 집은 전혀 다른 세상처럼 느껴진다.


새벽 4시. 부스럭거리는 소리에 잠에서 깼다. 아빠가 새벽에 일을 하러 나가는 소리다. 엄마와 아빠가 얘기하는 소리가 들렸다.

"아유 그만 좀 해요."

"내가 뭘? 내가 화를 냈어 뭘 했어."

쾅 하고 문이 세게 닫히는 소리가 났다. 엄마는 작게 한숨을 쉬었다. 나는 가만히 누워있었다. 잠이 달아나서 눈만 깜빡거리고 있는데 어떤 기억이 떠올랐다. 내가 초등학교 4학년 정도였을 때. 그때도 이 집에 살았다. 아침에 학교에 가려고 현관에서 신발을 신었다. 문 손잡이를 잡는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 문을 열고 나가는 게 불행할까 열지 않고 여기 있는 게 불행할까. 학교에는 친구가 별로 없었고 남자애들은 뚱뚱하다고 자주 놀렸다. 집에서는 언제 화낼 지 모르는 아빠의 눈치를 봐야 했다. 문을 열든 열지 않든 나는 행복할 길이 없었다. 그렇게 잠시 손잡이를 잡고 서있었다. 나는 오랜만에 다시 그 현관문 앞에 선 기분을 느꼈다.


토요일에는 거의 방에만 있었다. 아빠는 계속 냉랭했다. 그런데 가만 생각해보니 옛날과 달라진 점이 있었다. 아빠는 내게 직접적으로 화를 내지 않았다. 대신 엄마에게 짜증을 내고 화풀이를 했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언젠가 책에서 읽었던 내용이 생각났다.

'우리는 우리가 비난을 해도 가장 너그럽게 보아주리라 확신하는 사람에게 화를 낸다. 주변에 있는 가장 다정하고, 가장 동정 어리고, 가장 충성스러운 사람, 즉 우리를 해칠 가능성이 가장 적으면서도 우리가 마구 소리를 치는 동안에도 우리 곁에 머물 가능성이 가장 큰 사람에게 불만을 쏟아놓는 것이다.'

아빠가 내가 아닌 엄마에게 화를 내는 이유가 이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예전과 달라진 점은 이제 내가 아빠를 떠날 수 있다는 것이다. 나는 일요일 오후가 되면 본가를 떠날 거고, 내가 마음만 먹는다면 아주 오랫동안 아빠의 곁에 돌아오지 않을 수도 있다. 나는 그 점이 다행이면서도 슬펐다. 엄마는 30년 동안 아빠의 성질을 모두 받아주었고, 아빠는 엄마가 앞으로도 그래주리라 믿고 있을 것이다. 이렇게 불합리한 이유로 아빠의 화는 엄마를 향했다.


일요일 아침. 아빠는 회사에 나가고 없었다. 엄마는 아침을 먹으며 말했다.

"너네 아빠는 열 중에 아홉을 잘해놓고 성질머리 하나 때문에 다 망치는 사람이야. 너네한테는 말할 것도 없고 장인어른 장모님한테도 저렇게까지 잘하는 사람 없거든. 근데 이렇게 한 번씩 성질을 내서 다 망치지. 엄마가 젊었을 때 성질머리를 좀 잡았어야 하는데... 그래도 너네 아빠 젊었을 때 비하면 성질 많이 죽었지. 엄마 양쪽 어깨 다 수술했을 때, 그때 성격이 좀 많이 유해졌지."

나는 밥을 씹으며 가만히 얘기를 들었다. 아홉을 잘해놓고 하나 때문에 다 망치는 사람보다, 하나만 잘하고 아홉은 그냥저냥인 사람이 낫다고 생각하면서. 또 죄수의 딜레마를 생각하면서. 한 인간과 한 인간의 최선이 전체의 최선이 아닌 경우는 얼마나 많은가. 생각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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