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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ong O Dec 31. 2020

통제받는 삶 - 현수 이야기


“둘이 같은 날 휴가를 써? 싸가지 없이”

같은 부서의 선배와 내가 집에 급한 일이 있어 같은 날 휴가를 쓰게 됐을 때 들은 말이다. 

업무에 차질이 발생하지 않도록 조치를 해놓았음에도 불구하고 싸가지 없는 사람이 되어야 했다.

       

“이건 매일 하는 루틴이니까 빨간 날에도 나와서 해야 하지 않겠어?”

“공휴일마다 나와서 이걸 하라고요..? 이게 필수업무인가요..?”

“안 한다고 큰일 나는 건 아니지만 관례니까. 그게 책.임.감.이지”

공휴일에 무급 출근을 하라는 상사에게 싫은 내색을 했다가 책임감 없는 사람이 되어야 했다.   

  

이밖에도 팀장의 기분에 따라 좌우되는 나의 업무량과 퇴근시간이 정해지는 매일들, 치료를 요하는 분노조절장애 상사와 함께 일해야 하는 것도, 불합리 덩어리인 관례들과 시스템들에 군말 없이 따라야 하는 순간들 모두

어김없이 내 삶이 회사로부터 과한 통제를 받고 있다고 느껴지는 순간들이다.     

안위를 유지하기 위해, 내일의 하루도 침묵하며 무사히 보내기 위해 강자에게 약하고 약자에게 강해지려는 내 게으름에게, 내 인생에 대한 예의를 차리라고, 나의 존엄을 나의 힘으로 지켜내라고, 누군가 궁뎅이를 빵 하고 차주는 순간들이기도 하다.  




옆 부서에 경력직으로 입사한 J대리님이 있었다. 나랑 나이 차이가 많지도 않았지만 그는 일찍이 결혼하여 이미 아이가 셋이었다. 업계에서 굵직한 대기업 계열사들을 몇 군데나 옮겨 다녔었다. 모두 계약직이 아닌 정규직이었다. 업무 특성상 지역을 옮기며 일해야 해서 가족들과 떨어져 있는 시간이 많았던 그는 가족들이 있는 곳에 정착하기 위해 아예 발주처인 우리 회사로 이직해온 것이었다. J대리님은 야근 없이 그에게 의무 지워진 근무시간 내에 그가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깔끔하게 처리했다. 그의 업무분야에서는 그보다 잘 아는 사람이 없었다. 아랫사람, 윗사람 관계없이 똑같이 존댓말을 쓰고 눈앞의 사람을 존중했으며, 내가 모르는 부분에 대해서 물어보면 귀찮은 내색 없이 내 눈높이에서 알아들을 수 있는 설명을 주었다. 그는 약자에게 약하고 강자에게 강한 사람이어서 그렇게 하지 못하는 비슷한 직급과 나이의 우리들은 모두 그를 신기해했다.

                

어느 날 임원이  J대리님이 있는 부서에 일견 불합리해 보이는 일을 시키려고 회의를 소집했다. 그 부서의 리더는 또다시 침묵했다. 아랫 사람인 J대리님은 그 일을 왜 할 수 없는지, 그 일을 하게 되면 그가 속한 부서 본연의 업무에 어떤 문제가 발생하는지, 지금까지도 얼마나 많은 불합리를 실무자들이 견디고 있는지, 그래서 회사가 발전이 없는 이유까지, 우리 모두가 우리 안위를 위해 목구멍 밖으로 꺼내지 못했던 말을 쏟아냈다. 자신의 권위에 도전하는 것을 참지 못하는 임원은 화가 나서 그가 말을 하는 도중에 문을 쾅! 닫고 나갔다. 그 문소리는 내가 7년간 회사를 다니며 들어본 가장 큰 문 닫는 소리였다(심지어 문이 반동으로 다시 열렸다). 우리, 실무들은 평소에도 그 대리님을 존경했지만, 지금도 그 순간을 진정한 "사이다 한 박스 드링킹"이었다고 입을 모아 말한다.                


나는 그 대리님이, 그런 대응을 할 수도 있다는 것을 우리에게 보여줘서 얼마나 고마웠는지 모른다. 시간이 더 흐르고 흘러 그는 다시 이직을 한다고 했다. 그가 이 회사에 있을 수 없는 사람이란 것을 일찍이 알고 있었기에 놀라진 않았다. 그는 임원과의 마지막 면담에서도 이 회사가 직원들에게 가하고 있는 불합리한 통제를 조목조목 말했다. 그의 퇴사 사유에 대해 임원이 더 윗선으로 보고한 메일을 우연히 전달받아 보게 되었는데, '조직생활 부적응'이라고 적힌 것을 보고 나는 또다시 퇴사 욕구를 느꼈다. 그가 퇴사하고 난 후, 노동부에 어떤 신고가 접수되어 조사를 나온다고 했다. J대리가 신고한 것이 아니었음에도 윗사람들은 J대리가 그가 맡고 있던 파트의 몇 가지 사항을 신고한 것 아니냐며 걱정한다는 소리가 조용히 들려왔다. 그때 나는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것이란 이런 경우를 두고 하는 말이구나 싶었다. 아이들이 아버지의 영향을 받고 자랄 테니, 새삼 그가 아이를 하나나 둘이 아닌 셋이나 두었다는 사실이 고맙다.      




내가 창살 없는 감옥에 갇혀있는 건 아닌가 싶을 정도로 통제당한다고 느낄 때, 당장에 뾰족한 수는 보이지 않을 때, 하지만 살기 위해 희망은 필요할 때, 나는 영화 '쇼생크 탈출'을 튼다. 주인공 앤디가 쇼생크에서 어떻게 자신의 세상을 만들어 나갔는지 보고, 그가 자신의 자유를 구하는 긴 여정을 함께 하고 나면 이 창살 없는 감옥을 인정하고 침묵하려는 나의 게으름도 일말의 희망 같은 것을 생각하게 되기 때문이다.


회사생활이란 원래 다 그런 것, 힘들고 더러운 꼴 참고 견디는 것, 윗사람이 내게 염병을 해대도 회사가 내게 돈 주니까 까라는 대로 까는 것, 나중에 내 자식이 같은 이유로 힘들어하고 같은 불합리를 겪어야 해도 원래 그런 것이라고 징징대지 말라고 말하는 것. 이런 생각들을 아무 의심 없이 받아들이는 것에 딴지를 거는 나만의 방식이다.     


쇼생크 안에서 희망을 말하는 앤디에게 레드는 정색을 하며 말한다. 

    

"희망. 한 가지 얘기해줄까? 희망은 위험한 거야. 희망은 사람을 미치게 할 수 있어. 이 안에선 아무 쓸모도 없어. 그 사실을 받아들이는 게 좋아"   


끝내 자유를 찾고야 만 앤디가 레드에게 쓴 편지에서 그는 말한다.   

  

기억하세요 레드, 희망은 좋은 겁니다
가장 좋은 것일지도 몰라요
                       좋은 것은 절대 사라지지 않아요                        


J대리님의 이야기를 한 건, 그처럼 용감하게 살자는 것은 아니다. 다만 희망을 말하고 싶었다. 그는 내 눈앞에 실제로 존재한 앤디였으며, 희망을 상상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희망을 눈 앞에서 보여준 사람이었다. 회사의 불합리에 길들여지지 않았던 그가 자신의 자유를 지키는 방법을 우리에게 보여준 것만으로도 우리는 희망이 있다는 것을 실감했으니까.     


J대리님과의 마지막 식사자리에서 마지막으로 그가 한 말이 기억에 남는다. 

“회사는 좀 불합리 집합소이긴 한데, 다니려면 다닐 수 있어요. 근데 그냥 선택인 거죠.”

못 견뎌서 나가는 것이 아니라 여러 선택지 사이에서 본인이 더 행복할 수 있는 길을 선택했다는 그가 떠난 것은 내게는 슬픔과 동시에 기쁜 일이다. 

쇼생크 탈출 레드의 표현을 빌려 ‘그 깃털이 너무도 찬란하여 새장에 갇혀서는 살 수 없는 새’가 단지 앤디와 J대리님 뿐만 아니라 나에게도 해당되는 이야기이길 감희 희망해본다.

      

거창하게 세계평화를 이룰 것도 아니고, 헬조선을 천국으로 만들 것도 아니고, 금수저로 변신할 것도 아니다. 그저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진 이 삶을, 주어진 환경만 탓하며 꾸역꾸역 '버티는 ‘ 삶으로 살아가지 않도록, 무언가에 끌려가는 삶이 아니라, 내 발 앞을 내가 닦고 걸어가길 희망하며 나는 오늘도 영진 언니에게 카톡을 날린다. 

“언니 나 또 퇴사 뽐뿌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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