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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ong O Aug 19. 2021

사과를 사는 일에서도

뭐가 이렇게 억울하나요(현수 외침)

날씨가 좋았던 어느 일요일이었고 바다 뷰가 예쁜 카페에서 일요일을 만끽하고 집으로 돌아오던 길이었다.


“현수야! 우리 사과 사서 나눌까?!”


집으로 가는 길 가에 세워진 트럭에는 쌓인 것인지 흘러내린 것인지 분간이 안 되는 사과들이 항금 실려있었다.


‘10 만원


“오 그럴까??! 만원밖에 안 해!”

“그럼 여기 차 잠깐 세우고 있어 봐. 내가 얼른 사 올게!”


잠시 후, 사과 한 봉지를 무겁게 들고 차에 올라탄 영진 언니가 말했다.


“야 내 이럴 줄 알았어”

“왜요??”

저기 써놓은  원짜리는 조그맣고 맛도 덜한 거고, 15 이만 원짜리가  크고 맛도 좋대는거야!!”

“헐!! 역시 장사꾼이구만!!!”

“응 그래도 이왕 먹는 거 맛있는 거 먹는 게 나으니까 그냥 이만 원짜리 샀어”

“잘했어요(ㅋㅋㅋ) 원래 이만 원짜리 팔려고 저렇게 써놓았구먼…”

“그니까..”



“근데.. 인생이 저런 거 같지 않냐..”

“응?”

“왜.. 난 이만큼만 대가를 치르면 될 거라 생각하고 시작했는데 막상 해보면 실제론 내 예상보다 훨씬 많은 대가를 치러야 얻을 수 있는 일들이 많은 것 같아... 방금 사과처럼”



생각해보니 그랬다. 정말 갖고 싶었던 것을 내가 생각한 만큼만 내어주고 가져본 적이 있었나?

90점을 받기 위해 10시간 공부하면 될 거라 생각했지만 실제로는 20시간으로도 모자랐던 적.

우아한 발레 자세가 나오는데 1년이면 될 줄 알았는데, 막상 10년을 해도 될까 말까라는 걸 알았던 적. 계약했던 연봉을 받기 위해 주 5회 하루 8시간씩만 일하면 되는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a'의 노동과 시간을 더 투입해야 함을 알게 된 적. 책 3권 정도 읽으면 똑똑해지고 내 것이 되는  알았는데 그러기 위해선 최소 그 두배는 읽어야 함을 알게 된 적.

(어디 읽는 것뿐이랴, 읽은 것을 다시 생각하고 기록하고 난리부르스를 쳐야 내 것이 될랑 말랑한데..)


억울하다고 외쳐봐도 소용없는 일이다. 반짝반짝 빛나는 가치 있는 것들, 그래서 정말로 갖고 싶은 것들은 절대로 제 값을 흥정해주는 법이 없다. 얼마나 도도한지 내가 가진 한정된 자원을 투입하고, 그걸론 어림도 없어서 더 들이붓고 퍼부어야 얻을 수 있다. 조금 내어주고 많이 가졌을 때, '이 정도면 완전 거저잖아?!'라는 생각이 드는 순간들도 물론 있었겠지만 그것들이 오래도록 내 것으로 남아있었나? 그것들이 반짝이던 순간은 아주 찰나이다. 머지않아 빛을 잃고 내게 소중한 무언가로 남아있지 않음을 알게 된다.


사람이 귀하게 여기는 가치들은 아주 똑똑해서 제 값이 어느 정도인지 아주 잘 알고 있는 것 같다. 그걸 얻는 사람들은 그 가치가 부르는 값만큼을 지불하는 사람들일테다. 열을 갖기 위해 여 서일곱 정도 내면 되겠지?라는 생각을 버리지 않는 이상 우리는 갖고 싶은 것 앞에서 영원한 을이 될 수밖에 없지 않을까.


억울하다고 외쳐도 소용없는 걸 안다. 하지만 앞으로의 삶에서도 마찬가지 룰이 적용될 것을 아는 나는, 귀한 것은 다 가지고 싶고 노력하는 것에는 게으른 나는, 오늘도 나의 노력과 반짝이는 저 귀한 것 사이의 괴리감에 괴로워하고 울부짖는다. 좋은 것을 싼값에 얻으려는 욕구는 당근 마켓에서만 충족할 수밖에 없는 거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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