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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ong O Jul 31. 2022

내꺼인 듯 내꺼 아닌 것 상실하기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2화에서는 결혼식 당일 신부의 웨딩드레스가 흘러내리는 바람에 결혼식이 엉망이 되고, 파혼을 하게 된 신부 측에서 신랑 측(결혼식을 진행한 호텔을 가지고 있는 그룹)에 10억 원의 손해 배상을 청구하는 에피소드가 나온다. 통상 이런 사건으로 10억 원의 배상을 받아내기는 힘들지만 우리의 우영우 변호사는 기가 막힌 접근을 하여 332억 원을 배상하게 만드는데, 그건 바로 결혼을 할 경우 신랑 측(대현 그룹)에서 며느리에게 332억 원 상당의 도곡동 토지를 증여키로 했던 약속을 이용한 것이다. 이 에피소드를 보고 퍼뜩 떠오른 건 '내 것이 아닌 걸 잃은 것도 상실'이라는 생각이었다.



뜬금없는 생각일 수도 있겠지만 내게는 이런 생각을 떠올릴 만한 일이 있었다. 1년 전쯤 사촌언니와 나눴던 대화였다.


"언니, 지금까지 살면서 경험한 가장 큰 상실이 뭐야?"

"너무 많은데? 난 삶 자체가 상실의 시대야"

"난 상실한 게 하나도 생각이 안 나... 언닌 뭘 그렇게 많이 상실했어?"

"집이 어려웠으니까 중고등학교 다닐 때 용돈이 모자라서 걸어 다녀야 하고 친구들이 피자 먹으러 가자해도 나는 돈이 없어서 포기하고, 혼자 학습이 어려워서 학원 다니고 싶은데 그것도 포기하고 대학가서도 해외 어학연수, 해외여행 거의 다 포기했지. 이런 포기를 어릴 때부터 경험하면서 무기력도 학습하고... 그래서 나는 삶이 상실이야"


당시 나는 언니가 말한 것들이 왜 상실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상실은 뭔가를 잃어버리는 것 아닌가? 잃어버리려면 그전에 우선 가져야 하는 것이고. 다시 말해, 가진 적도 없었던 것은 잃어버리기가 불가능하고. 잃어버리는 것이 불가능한데 어떻게 상실이란 말인가. 언니의 말대로라면 내 삶도 상실의 시대여야 하는데 내겐 뭔가를 상실한 기억이 없었다. 가진 적 없던 것을 어떻게 잃을 수 있단 말인가.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2화를 본 시점과 비슷한 시기에 친구와 대화를 나누게 되었다. 친구는 내게 요즘 행복한지 물었고, 나는 행복한지 안 행복한지 그런 건 생각하지 않는다고 했다. 다만 나를 괴롭게 하는 것은 없어서 편안하다고. 얘기하고 보니 정말 요즘 마음이 편했다. 그런데 그걸 인식하는 순간 깨름찍한 느낌이 들었다. 나 왜 편안하지? 본디 인생에는 편안하기만 한 그런 장면은 없는데? 심지어 부처도 삶의 고(苦)를 제거하고 편안에 들기까지 엄청난 고행과 수행을 하지 않았는가 말이다. 지금 내가 느끼는 이 대가 없는 편안함은 뭔가 수지타산이 맞지 않는다는 생각에 편안했던 마음이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이 편안함의 대가가 뭔지 찾아야 했다. 그리고 그건 오래 지나지 않아 모습을 드러냈다. 



뭐지 뭐지 뭐지 스스로에게 묻고 있는데 머릿속에 떠오른 두 글자, '상실'이었다. 순간 머릿속에서는 갈 곳을 잃어 방황하고 있던 사촌언니의 상실이 이해의 울타리 안으로 슬그머니 들어왔다. 가지지 못한 것도 상실할 수 있구나.. 나를 괴롭게 하는 것이 없는 이유는 그것들을 잃어버렸기 때문이었다. 아니, 잃어버렸다기보다는 내가 놓음으로써 사라졌다는 표현이 더 적절하겠다. 나를 괴롭게 하는 것들, 그건 바꿔 말하면 나를 기쁘게 할 수도 있는 것들이었다. 이를테면 사회가 응당 가지라고 요구하는 것들과 그리하여 사람들이 가지고 싶어 하는 많은 것들 말이다. 그러니까 나의 편안함은 '가지면 좋을지도 모르는 것들'을 상실한 대가였다. 수지타산이 맞는 것은 편안했지만 생각에 없던 상실을 의식하게 되니 씁쓸했다. 




그런 관점으로 보니 일상의 매 순간이 무언가를 상실한 대가였다. 항상 이걸 선택한다는 건 저걸 선택하지 않는다는 것이니까, 저걸 선택함으로써 가지게 되는 많은 가능성들을 상실하고 있는 게 아닐까. 이렇게 까지 상실의 범주를 넓혀 생각한다면 그저 기회비용에 대한 이야기로 흘러가버릴지도 모르겠다. 내가 가지고 있던 소중한 것을 잃었을 때 느끼게 되는 아픔, 그 '상식적' 상실 앞에서 가져본 적도 없는 것을 잃었다고 표현하는 것은 우스운 일일지도 모르고. 하지만 상실감도 주관적 감정이기에 똑같은 상황이 누군가에게는 상실이고 누군가에게는 상실이 아니다. 적어도 나는 상실하지 않으며 사는 예전보단 상실하며 사는 지금이 더 낫다고 생각하고 있다. 당연한 줄만 알았던 일상의 편안함 들을 상실의 대가로 의식함으로써 이따금씩 감사하고, 가슴 아픈 거대한 상실들이 내게도 찾아올 것을 예상하며 한 번씩 겸손해질 수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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