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나기

20240820/화/오후에 비

by 정썰
#먹구름 #소나기

5살(반십세) 무렵 천자문 한 권을 외웠다는 설이 있다.

내 기억엔 없지만 지금도

하늘천 따지 검을 현 누루황 天地玄黃… 여기서부터

집우 집주 넓을홍 거칠황 宇宙洪荒

날일 달월 찰영 기울측 日月盈昃

별진 잘숙 벌릴렬 베풀장 辰宿列張

찰한 올래 더울서 갈왕 寒來暑往

가을추 거둘수 겨울동 감출장 秋收冬藏...

여기까지는 중얼중얼 입에 남았다.


일월영측. 해와 달이 차고 기운다. 과학적 무지에서 나온 관찰의 결과지만 오후에 무겁게 버티던 먹구름의 둑이 터지면서 쏟아져내린 빗줄기를 보며 떠오른 구절.

차면 기울고, 차면 비우고, 차면 피하고(이건 개드립)

한바탕 소나기가 지나고 풍경은 맑아졌다. 조금 가벼워지고, 조금 신선해졌다. 라운지 실내 온도가 1도 내렸다.

'소나기' 하면 '선재 업고 튀어'보다 '부활'이 떠오르는 아재의 감성을 제대로 적셨다.


한참 피어나던 장면에서 넌 떠나가려 하네

벌써부터 정해져 있던 얘기인 듯

온통 푸른빛으로 그려지다

급히도 회색빛으로 지워지었지

어느새 너는 그렇게 멈추었나

작은 시간에 세상을 많이도 적셨네

시작하는 듯 끝이나 버린

소설 속에 너무도 많은 걸 적었네


웅얼웅얼 입에 남은 가사와 만나 본 적도 없지만 개울에서 돌 던지던 소녀 생각에 심장 쪽이 간질거리는 저녁. 바깥 기온은 그대로지만 기대해 본다.

차면 기울고, 차면 비우고, (더위가 가득) 차면, 곧 차가운 바람이 불어오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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