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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썰 Oct 05. 2024

허물

20241005/토/가을가을한

작품명 : 허물, 타일 바닥 위에 jeans & flip-flops, 아들 作


허물

1. 살갗에서 저절로 일어나는 꺼풀.

2. 파충류, 곤충류 따위가 자라면서 벗는 껍질.

3. 잘못 저지른 실수.

4. 남에게 비웃음을 살 만한 거리.


아들이 돌아왔다. 녀석의 트레이드마크인 허물 벗어놓기가 시작되었다. 오랜만에 보는 거라 반갑기까지 하다. 미술을 전공하고 있으니 행위예술과 설치미술 그 중간쯤에 놓인 작품으로도 보인다.

아들의 허물이 허물인 시절이 있었다.

쟤는 누굴 닮아서 옷을 저렇게 벗어 놓지?

주로 부정적인 버릇과 습관의 원인은 내 차지가 된 지 오래다. 세밀하게 따져서 서로의 지분을 찾는 과정도 부질없고, 누가 봐도 빼박인 것들이 많아지면서부터는 그래, 다 내 탓이오~.

말없이 허물을 치워 허물을 덮어주는 게 아들의 인생에 긍정적이지 못할 거라는 판단에 잔소리를 해댔는데 때론 찐으로 감정이 실리기도 했다. 서로에게 좋을 게 없는 소모전이다.  

아내의 경우, 결혼 초에는 치약을 중간부터 눌러 짜서 쓰는 걸 이해할 수 없었다. 세월이 흘러 치약의 허리부터 눌러 짜내는 게 남북분단의 원인도 아니고 조국통일의 방해요소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면서 잔소리를 거뒀다.

침실에 화장실이 달린 집으로 이사한 후 공간적 분리로 자연스레 해소된 경향이 크지만, 요즘도 가끔 침실 화장실을 쓰고 나면 말없이 허리가 잘록해진 치약을 아랫부분부터 엄지로 쭈욱 밀어 올려 통통하게 해 두고 나오긴 한다. 그냥 그걸로 끝.  


장기적 상호작용이 수반되는 가치관이나 공공의 이익에 반한 습관 등은 교정에 힘써야 하지만, 소소한 것 들은 내버려 두는 게 낫다는 생각이다. 물론 어릴 적 습관이 결혼 후 아내를 불편하게 하고 아내로 인해 개선된 경우가 있는데 어쩌면 이 게 순리다. 어릴 적 부모님이 잔소릴 안 했을까? 바뀌어야 할 때가 돼야 바뀌는 것들이 있다.


허물에 대한 편견과 선입견을 허물 필요가 있다. 내 기준과 방어기제라는 성벽을 허물면 지긋지긋하게 못 고치는 아들 녀석의 허물 벗기가 작품처럼 보이고 그리워질 날이 온다. 내 허물에 집중하고 남의 허물에 관대하게, 남의 것을 허물기보다 내 것 먼저 허물기.


허물다

1. 쌓이거나 짜이거나 지어져 있는 것을 헐어서 무너지게 하다.

2. 꼿꼿하고 방정한 표정, 자세, 태도 따위를 그대로 유지하지 아니하고 구부리거나 느른하게 하다.

3. 사회적으로 이미 주어져 있는 규율, 관습 따위를 없어지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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