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트예 담 지음, 한울림어린이
아이들이 전학을 가서 혹은 입학을 해서 새 학교에 처음 가는 날이 힘든 것처럼 교사도 새 학교에 처음 가는 날, 처음 아이들을 만나는 날은 쉽지 않다. 특히 나처럼 기간제여서, 아는 사람 한 명 없는 학교에 3월2일 던져지자마자 업무를 시작해야 하는 경우라면 더욱 그렇다. 도서관 문을 열자마자 아이들은 쏟아져 들어오는데, 개학날부터 도서관을 찾는 도서관 단골손님들은 대부분 전임사서선생님을 그리워한다. 당연하지만 비교당하는 것 같아 더욱 긴장된다. 책을 찾아달라는 아이들에게 '나는 오늘 처음 이 학교에 왔으니 더 오래 다닌 너희가 나보다 잘 알걸? 한달쯤 지나면 그땐 선생님이 더 잘 알 거야.'라고 뻔뻔하게 대답하기도 한다.
긴장감을 숨기고 억지로 웃어서 입근육이 혼자 떨릴 즈음, 한 친구가 "선생님! 혹시 ** 초등학교에서 오시지 않았어요?"라고 묻는다. 2년 전에 있었던 학교에서 만났던 동선이. 이 학교에 전학와서 벌써 6학년이라며 활짝 웃어준다. 그 순간 가슴 한쪽부터 서서히 따뜻한 기운이 퍼지는 느낌이 들면서 갑자기 내 편이 생긴 듯한 든든함이 생긴다. 처음 인사간 시댁에서 동창을 만난 기분이랄까? 나중에 내 편이 아니라는 걸 알게될 수도 있지만 그 순간만큼은 일단 비빌 언덕 하나쯤 생긴 느낌이다.
내 몸에 따뜻한 기운이 퍼지는데 이 책 <색깔손님>(안트예 담 지음, 한울림어린이)이 퍼뜩 떠올랐다.
책에 나오는 엘리제 할머니는 겁이 많아서 밤이나 낮이나 집안에서만 지낸다. 날마다 열심히 청소하지만 밖에 나가지는 않는 분이다. 그런데 어느 날 청소하느라 유리창을 열자 종이비행기 하나가 훅 들어온다. 할머니는 종이비행기를 태워버린다. 마치 흔적을 없애버리려는 듯하다.
다음날 아침, 지금까지 그런 적이 한 번도 없었는데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난다. 그리고 어제의 그 종이비행기처럼 훅 들어온 아이는 집안을 돌아다니는데 처음에 흑백이었던 그림은 아이가 지나가는 곳마다 컬러로 바뀐다. 할머니의 마음일 것이다. 읽는 나도 마음이 점점 따뜻해진다. 그림책의 면지도 센스있게 만들어져 있다. 앞부분은 흑백인데 뒷부분은 컬러이다.
나도 누군가의 마음에 따뜻함을, 색깔을 주고 싶다는, 나도 누군가에게는 비빌 언덕이 되어주고 싶다는 생각을 하면서, 오늘도 교실에 가지 않고 하루종일 도서실에서 책을 읽는 5학년 B군을 보고도 꾹 참는다. 교실이 싫다는데 어쩌겠누. 그렇게 도서실에서 책이라고 읽으면 다행이지. 이곳에서라도 비비고 정 붙이면 참 다행이지. B군이 어른이 되어 초등학교를 떠올릴 때 도서실에라도 예쁜 컬러가 입혀졌으면 정말 다행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