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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제우스는 딸을 저승의 신과 결혼시켰을까?

처음 시작하는 그리스신화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고, 제우스의 난봉꾼 기질은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았다. 급기야 누이 중 한 명인 농업의 여신 데메테르에게 손을 대 페르세포네(Persephone)라는 딸을 얻었다.


데메테르는 외동딸인 페르세포네를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정도로 애지중지하며 금이야 옥이야 보살폈다. 그런데 제우스는 페르세포네를 자신의 형이자 지하에 있는 사자의 왕국을 다스리는 하데스의 왕비로 간택하려는 꿍꿍이를 품고 있었다. 


어느 날, 들판에서 꽃을 따던 페르세포네는 약간 떨어진 곳에서 흐드러지게 핀 수선화를 발견했다. 그 꽃은 제우스와 하데스와 공모한 대지의 여신 가이아가 페르세포네를 꾀어내기 위해 특별히 공을 들여 아름답게 피도록 만든 덫이었다.

Walter Crane (1845–1915)

페르세포네가 그 수선화에 다가가자 갑자기 대지에 커다란 균열이 생기더니, 그 균열에서 황금 마차를 탄 하데스가 날아올라 비명을 내지르는 페르세포네를 납치해 망자들이 사는 지하세계로 데려갔다. 

Nicolas Mignard (1606-1668)

하데스에게 끌려가던 페르세포네가 내지른 비통한 울부짖음은 당연히 어머니인 데메테르 여신의 귀에 들어갔다. 귀한 딸의 신변에 좋지 않은 일이 생겼음을 직감한 데메테르는 집에서 뛰쳐나와 아흐레 동안 횃불을 치켜들고는 한숨도 자지 않고 한시도 쉬지 않고 세계 곳곳을 누비며 딸의 행방을 수소문했다. 


열흘째 되던 날 아침, 데메테르는 태양이 동쪽 하늘로 떠오르는 모습을 보고 태양이라면 페르세포네에게 무슨 일이 생겼는지 알 리라고 생각했다. 예상대로, 태양은 페르세포네가 하데스에게 사로잡혀 저승으로 끌려갔다고 가르쳐주었다. 


그리고 하데스에게 그녀를 납치하라고 부추긴 사람이 제우스라는 사실도 넌지시 일러주었다. 딸의 행방을 들은 데메테르는 제우스에 대한 걷잡을 수 없는 분노에 사로잡혀 주먹을 불끈 쥐고 복수를 다짐했다. 


제우스에게 도움을 청하는 테메테르(양 손에 횃불을 들고 있다)

데메테르는 신들의 세계에서 벗어나 인간 여자로 모습을 바꾸어 지상을 이리저리 떠돌아다니기 시작했다. 긴 방랑 끝에 데메테르는 아티카의 엘레우시스(Eleusis)라는 고장에 이르렀다. 인간으로 변장한 여신이 샘가의 나무그늘에서 쉬고 있자니 마침 엘레우시스의 왕 켈레오스(Keleos)의 네 딸이 물을 길러 왔다. 


데메테르를 발견한 아가씨들은 친절하게 말을 건네며 아버지의 궁으로 가서 여독을 풀고 가라고 권했다. 데메테르는 살갑게 말을 거는 아가씨들의 마음씀씀이를 어여삐 여겨 켈레오스 왕의 궁으로 따라갔고, 메타네이라(Metaneira) 왕비는 딸들이 초대한 낯선 여인을 극진히 대접해주었다. 


오르페우스의 음악을 듣는 하데스와 페르세포네

데메테르는 왕비의 정성 어린 환대를 받아들여 아직 갓난아기였던 데모폰(Demophon) 왕자의 보모가 되어 당분간 켈레오스 왕궁에 머물러 살기로 했다.


켈레오스 왕궁에 살게 된 데메테르는 왕의 일가에게 받은 친절에 보답하기 위해 데모폰 왕자를 불사의 몸으로 만들 계획을 세웠다. 여신은 신들을 불사로 만드는 신의 음식 암브로시아(Ambrosia)를 갓난아기의 피부에 바르며 자신의 입김을 불어넣었다. 그러다 밤이 되면 아기를 불 속에 넣어 몸에서 불사가 아닌 부분을 조금씩 태워나갔다. 

그러던 어느 날 밤, 메타네이라 왕비가 그 광경을 보고 말았다. 왕비는 소중한 아들을 불에 태워 죽이려는 파렴치한 범죄로 착각하고 큰소리로 울부짖었다. 자신의 뜻을 헤아리지 못하고 궁전이 떠나가라 수선을 떠는 왕비 때문에 심기가 불편해진 데메테르는 데모폰 왕자를 바로 불에서 꺼내 불사로 만드는 과정을 중단했다.


그리고 여신의 모습으로 돌아가 메타네이라 왕비에게 정체를 밝히고는 자신을 위한 신전을 엘레우시스에 세우라고 명령했다. 


데메테르

신전이 완성되자 데메테르는 그 속에 틀어박혀 농업의 여신이 모름지기 해야 할 일에서 모조리 손을 놓아버렸다. 농업의 여신이 직무를 방기하자 온 세상에 이변이 일어났다. 사람들이 땅을 갈고 씨를 뿌려도 대지는 아무것도 내어주지 않았다.


난처해진 제우스는 데메테르의 신전으로 여러 신들을 파견해 토라진 여신의 마음을 돌려보려 했다. 
“데메테르 여신이여, 부디 화를 거두시고 제우스와 화해해 신들의 세계로 돌아와 주소서.” 
하지만 그 어떤 신이 찾아가 아무리 간곡하게 부탁해도 데메테르의 대답은 한결같았다.

비탄에 빠진 데메테르 (by Jynette Tigner)

“딸을 돌려주지 않으면 신들의 세계로 돌아가지도 않을뿐더러 그 어떤 땅도 소출을 내지 못하리라.” 
제우스는 하는 수 없이 헤르메스를 저승으로 보내 하데스에게 전갈을 전했다. 
“페르세포네를 데메테르에게 돌려주거라.” 


하데스는 페르세포네를 납치했을 때와 같은 황금 마차에 태우고 “지상으로 데리고 돌아가라”고 헤르메스에게 명령했다. 


그런데 페르세포네를 돌려보내기 직전에 하데스는 어머니에게 돌아갈 수 있게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기뻐하던 페르세포네의 입에 석류 한 알을 넣어주었고, 기쁨에 들뜬 페르세포네는 아무런 의없이 석류를 받아먹었다. 

헤르메스는 페르세포네를 데메테르의 신전으로 데려갔고, 어머니와 딸은 얼싸안고 재회를 기뻐했다. 하지만 황천에서 망자의 음식을 먹은 페르세포네는 저승과의 인연을 완전히 끊을 수 없었다. 
“페르세포네는 하데스와 결혼하여 저승을 다스리는 여왕이 되어야 한다. 다만 일 년의 삼 분의 일을 저승에서 보내면 나머지 삼 분의 이는 지상에서 어머니와 살아도 좋다.” 

돌아온 페르세포네. Frederic Leighton (1830 – 1896)

제우스는 모두 만족할 수 있는 해결책을 마련해, 데메테르와 하데스에게 전했다. 데메테르는 공정한 판결에 승복해 기근을 멈추었고, 신들의 일원으로 복귀해 농업의 여신으로서의 직분을 다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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