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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요즘 아이들에 관한
솔직한 보고서

Chapter 1. 공부 역전을 위한 준비 과정

  공부는 머리가 좋은 사람이 해내는 것이 아니다. 오랫동안 책상에 붙어 앉아 있는 사람이 해내는 것도 아니다. 머리는 좋은데 공부로 성공하지 못한 사람, 하루 종일 책상에 앉아 있어도 성적이 그대로인 사람을 너무나도 많이 봐왔다. 공부는 궁극적으로 아래 질문에 대한 답을 찾은 사람이 해내는 것이다.


‘나는 왜 공부를 해야 하는가?’


  공부는 해야만 하는 이유가 더 큰 사람이 이기는 게임이다. 반에서 마음에 안 드는 친구가 있는데, ‘기필코 이번 시험에서 코를 납작하게 만들어 주겠다’고 눈에 불을 켜고 공부하는 학생이 ‘이번 시험이 끝나면 뭐 하고 놀까?’를 고민하면서 공부하는 학생에게 하늘이 두 쪽이 나도 질 리가 없다. 반대로 ‘80점만 넘으면 된다’는 생각으로 친구들과 문자를 하고 게임을 하면서 공부하는 학생이 ‘100점이 안 나오면 죽겠다’는 각오로 공부하는 학생을 절대 따라잡을 수 없다. 여기서 어른들이 섣불리 개입하면 일을 그르친다. 어른들의 생각에 공부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얘기를 아이들에게 해준다. 아이들이 먼저 조언을 구하지도 않았는데 말이다.


“공부 열심히 해라.”

“최선을 다해라.”

“나 때는 공부 그런 식으로 안 했다. 공부는 목숨을 걸고 하는 거야.”

“수학은 말이야, 그렇게 하는 게 아니야. 이리 줘 봐.”


  흥미로운 점은, 조언을 하는 대부분의 어른들은 학창 시절에 공부를 썩 잘하지 못했던 사람들이다. 사실 잘 모르면서 도와주려고 하는 것처럼 방해가 되는 경우가 없다. 문제는 어른들이 요즘 아이들을 잘 모른다는 것이다. 어른들이 알고 있는 아이들은 옛날 본인들이 살았던 ‘구석기’ 시대의 아이들이다. 더 큰 문제는 실제로 모르고 있는데 안다고 착각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요즘’ 아이들이 공부에 대해서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알아보자. 초등학교 6학년부터 고등학교 3학년까지 80명 정도를 설문했다. 결과를 분석해 보니 학년 별로 공통점이 존재했다. 현재 대한민국에서 살고 있는 아이들은 공부에 대해서 어떠한 생각을 가지고 있을까? 먼저 아이들의 상태를 정확히 파악해야 도움을 줄 수 있지않겠나.



어른들의 생각으로 세뇌당한 아이들

  아래 설문지를 보면, 초등학교 6학년 학생이 공부하는 이유가 굉장히 어른스럽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 보면 조금 이상하다. 과연 좋은 대학, 자아실현, 공부 아니면 할 게 없고, 많이 배워서 똑똑해지고 싶다는 초등학교 6학년 학생의 말이 자연스러운 것일까? 참고로 나는 초등학교 6학년 때 먹고 노는 것으로 하루를 채웠다. 공부 아니면 할 게 없다니? 초등학생이면 사실 노는 게 직업이다. 마치 본인들의 생각을 말하는 게 아니라 어른들이 듣고 싶은 말을 하는 것 같다. 맞다! 이것은 아이들의 생각이 아니라 어른들의 생각이다.

  그럼 왜 아이가 이런 생각을 가지게 되었을까? 주위 어른들이 끊임없이 이런 얘기를 하니까 세뇌가 되어버린 것이다. 초등학교 6학년이면 서투르더라도 자기 생각이 생기기 시작할 나이이다. 한 나라의 대통령이 되고 싶다거나 부와 명예를 누리는 톱스타를 갈망하는 시기이다. 혹은 나쁜 범인을 찾아내는 탐정이 멋져 보여서 셜록홈즈를 꿈꾸거나, 뜬금없이 투명인간이 되고 싶어 할 수도 있다. 속세의 틀에 갇힌 사고방식이 아닌 다양한 생각들로 미래를 그리기 시작할 나이다. 다소 엉뚱하더라도 괜찮다. 아이들은 어설픈 것이 정상이니까. 그런데 아이들의 생각이 자라나기도 전에 어른들의 생각으로 아이들의 머릿속을 꽉 채워버린 것은 아닐까?

  어려서부터 어른들의 생각으로 머리를 꽉 채운 아이들은 중학생이 되어서도 다른 생각을 하지 못한다. 부모님이 공부를 하라고 해서 할 뿐이다. 물론 이것이 잘못되었다는 것은 아니다. 아마 전국의 대다수 아이들이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있을 테니까.


문제는 이런 생각을 가지고 공부를 하는 아이들이 결국에는 학업을 포기하는 지경에 이른다는 것이다. 5, 6, 7, 8, 9등급에 있는 고등학생들이 다 이런 생각으로 공부를 시작했던 아이들이다. 다시 말해 이러한 세뇌 교육으로 공부를 시작할 수는 있지만 공부를 완성할 수는 없는 것이다. ‘엄마가 원해서’, ‘아빠가 원해서’라는 이유로 고3까지 열심히 공부할 수 있다면 전국은 우등생들로 넘쳐날 것이다. 이러한 세뇌의 효과는 초등학교 때까지 잠시 지속되는 듯하다가 중학교에 올라가면 순식간에 증발해 버린다. 물론 이는 우리나라만의 특성은 아니다. 외국의 연구를 보더라도 아이들이 공부하는 이유가 ‘공부를 하지 않으면 부모님, 선생님에게 혼난다’는 것이다.


좀 더 커서 중학교 2학년이 되면 공부를 하는 이유가 한마디로 압축이 된다. 바로 ‘돈’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이 있으면 인간답게 먹고사는 것이고 돈이 없으면 거지가 된다. 틀린 얘기는 아니지만 쓴웃음이 난다. 이 역시도 아이들이 경험적으로 체득했기보다는 어른들의 생각이 주입된 결과이다. 공부하는 이유가 ‘돈’ 때문이라는 중학생들의 모습과 일하는 이유가 ‘돈’ 때문이라는 어른들의 모습이 묘하게 겹친다. 결국 아이들은 원하든 원치 않든 어른들의 모습을 닮아가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아이들도 중학교 3학년이 되면 고민의 정점에 달한다. 학생들을 여러 해 동안 가르쳐 보니 그 나이에 보여주는 아이들의 행동양식이 꽤 비슷하다는 것을 알았다. 중1 아이들은 지나치게 해맑고, 중2 아이들은 감정 기복이 심하고, 중3 아이들은 얼굴이 굉장히 어둡다. 마치 고등학생이 되면 성적이 곤두박질칠 것이고, 거기서 올라가지 못하면 괜찮은 대학교는 갈 수 없고, 평생 힘들게 살게 될 것이 본인의 운명인 것처럼. 이런 중3 아이들의 특징을 한마디로 정의하면 ‘불안’이다. 중3은 불안하다. 그래서 공부에 관한 얘기만 나오면 입을 다물고 무기력해진다. 고통을 회피하는 건 모든 생명체의 본능이다.


아이들이 게임과 카톡에 매달리는 이유 

어른들은 이런 아이들을 볼 때마다 “공부해라”라는 말만 앵무새처럼 반복한다. 그리고 아이는 아이대로, 어른은 어른대로 푸념한다.


“요즘 애들은 말을 안 들어.”

“어른들하고는 말이 안 통해.”


  중3의 다른 이름은 예비 고등학생이다. 대한민국의 고등학생, 공부 이외에는 어떤 것도 허락되지 않는 신분이다. 아이들은 이러한 시기를 앞두고 본인의 상황을 잘 파악한다.


“나 조금 있으면 고딩인데, 큰일이다.”

그리고 미래도 예측한다. 꽤 정확하게.

“나 이대로 가다가는 틀림없이 망할 텐데.”


  어른들은 성적 때문에 발생하는 이 불안감을 아이들이 공부를 열심히 해서 해소하길 바란다. 그런데 아이들은 어른들의 생각과는 전혀 다른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한다. 바로 현실을 등지고 가상현실로 가는 것이다. (몇몇 아이들은 현실을 등지고 하늘나라로 가기도 한다.)


  여기서 남자와 여자가 선택하는 방법이 약간 다른데, 남자는 주로 게임을 하고 여자는 주로 대화를 한다. 남자의 DNA에는 경쟁을 통해서 승자가 되고 싶은 욕구가 있다. 그래서 현실에서 승자가 될 수 없는 아픔을 게임에서나마 승리하여 대리만족을 느끼는 것이다. 현실에서 1등이나 1등급을 받는 학생이 게임중독에 걸린 사례는 없다. 현실에서 이미 승리에 대한 욕구를 채웠기 때문이다. 수준별 이동수업 D반의 현실과 게임 속 레벨 99의 캐릭터 중에서 아이들은 늘 레벨 99의 삶을 갈망한다. 바로 이것이 남자아이들이 틈만 나면 게임을 하는 이유다.


  역시나 어른들은 이러한 아이들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고 “공부해라”라는 말을 반복한다. 게임에 열중한 아이에게 “게임 좀 그만하고 공부 좀 해라”라고 말하는 것은 ‘한 부대를 통솔하는 장군에서 공부 못하는 D반 학생으로 돌아가라’는 말이다. 아이들이 돌아가고 싶을까? 이와 다르게 여자는 입장이 비슷한 친구들과 대화를 하면서 서로 공감하고 위로한다.


“나 어떻게 해. 이번 시험 망했어.”

“어, 정말? 몇 점 나왔는데?”

“몰라, 채점 안 해봤어. 찍은 거 다 맞아 봐야 70점도 안 나올 것 같아.”

“장난해? 나는 39점이야.”

나보다 힘든 사람의 얘기는 나에게 힐링이 된다. 반면에 나보다 잘 사는 사람의 얘기는 나를 더 힘들게 한다.

“나 어떻게 해. 이번 시험 망했어.”

“어, 정말? 나도 잘 못 봤는데. 다행이다. 나 혼자 망한 건 아니었네.”

“찍은 거 다 맞아 봐야 70점도 안 나올 것 같아. 너는 몇 점이야?”

“나 이번에 하나 틀렸어. 만점이 안 나온 적은 처음이야. 아무래도 1등은 못할 것 같아. 큰일이야.”

“…….”


  이래서 전교 2등과 전교 200등이 여간해서는 친한 친구가 되지 않는다. 영화 〈여고괴담〉에서도 전교 2등이 전교 1등을 옥상에서 밀지, 전교 289등이 288등을 미는 경우는 없다. 오히려 289등과 288등은 사이가 좋다. 서로 위로가 되는 관계니까. 하지만 이는 아이들에게서만 보이는 행동양식이 아니다. 퇴근길 지하철이나 버스를 타 보면 알 수 있다. 괴로운 사회생활의 현실을 잊기 위해 휴대폰으로 게임과 대화에 몰두하는 어른들의 모습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어쨌든 중학교를 졸업한 아이들은 드디어 대한민국 고등학생이 된다. 고등학생이 되면 현실은 더욱 냉정해진다. 우리나라에서 고등학생에 대한 모든 것은 이 질문 하나로 평가한다.


“너 몇 등급이냐?”


  이는 마치 도축된 돼지에게 등급을 매기는 것과 유사하다. 본인이 몇 등급인지 죽은 돼지는 말이 없다. 아이들도 본인이 받은 등급에 대해서 어떤 핑계도 대지 않는다. 그저 말없이 받아들일 뿐이다. 모든 말이 변명이라는 것을 고등학생 정도가 되면 인지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공부에 대해서뿐만 아니라 아예 생각이란 걸 하지 않는다. 어차피 답이 안 나오는 현실을 생각하면 괴로우니까. 그냥 사는 것이다. 아무 생각 없이. 공부도 ‘그냥’ 한다.

<정리하면>

공부를 힘들어하는 아이들을 보고 있으면 애가 탄다. 어른들은 뭐라도 도움을 주고 싶어 한다. 그러나 아이들의 공부에 대해서 어른들이 섣불리 개입하면 오히려 일을 그르치는 경우가 많다. 요즘 아이들을 잘 모르면서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앞서기 때문이다. 그래서 요즘 아이들이 공부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조금이나마 살펴보았다.


설문을 종합해 보면, 초등학교 때 아이들은 부모님의 생각에 따라서 움직인다. 시키는 대로 공부를 하지만 당장 중학교만 올라가도 아이들은 부모님의 생각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그리고 모든 아이들이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이 있다. 대학 가서 돈을 잘 벌기 위해 공부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아이들이 경험하거나 스스로 생각해낸 것일까? 아니면 어른들과 사회에서 아이들에게 주입한 것일까? 더 중요한 질문은 과연 이런 주입된 생각이 아이들이 공부하고 균형 잡힌 어른으로 성장하는 데 도움이 되는지이다.


만약 이런 생각이 아이들의 학업과 성장에 도움을 주지 못한다면 어른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 문제점을 바로 인식하고, 우리 아이들을 어떻게 하면 조금이라도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끌 수 있는지 함께 고민해 봐야 하지 않을까?




글 : 홍석철

프로복서 자격증을 가지고 있는 독특한 이력의 영어 강사. 말을 안 듣는 아이들을 체육관으로 불러 스파링을 한 후 공부를 시킨 것은 업계 전설로 남아 있다. 


입시·교육에 관한 정보의 불평등을 해소하고자 ‘펜타킬’, ‘하니샘’과 함께 ‘홍프로’란 닉네임으로 2014년

부터 팟캐스트 〈입시왕〉을 진행하고 있다. 족발을 먹으면서 충동적으로 의기투합하여 시작했지만 현재 100만 명에 육박하는 청취자가 입시왕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 〈입시왕〉은 2016년 대한민국 최고의 팟캐스트 Top 50에 선정되었다. 


『입시왕, 공부를 부탁해』는 2016년 제2회 ‘카카오 브런치북’ 대상 수상작을 받은 <교육컨설팅>을 바탕으로 새로운 글을 추가하여 2017년 3월 단행본으로 출간하였다.


팟캐스트 입시왕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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