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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은 찻잔 Apr 01. 2021

코로나와 카페와 방

카페가 내 방이고, 내 방이 카페가 된 세상


코로나 바이러스 확산으로 요즘 집과 방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아졌다. '디지털 노마드' 세대의 자랑스러운 일원으로 여행이 일상이던 많은 이들에게 코로나는 전세계적 팬데믹이기 이 전, 이동의 자유라는 개인 권리의 침해로 먼저 다가오는 듯 하다.


화장지를 사재기하거나 지나가는 행인과 마스크를 쓰네 마네 실랑이를 벌이고 이름부터 한숨이 나오는 '코로나 파티'를 즐기고 있다는 전세계인들과는 달리 누구보다 놀기 좋아하는 한국인들은 예상외로 비교적 평화(?)롭게 각자 방에서 지내고 있다. 홈카페를 차려 설탕을 잔뜩 때려박은 예쁜 커피를 만든다던가 운동복을 차려 입고 홈트(홈+트레이닝)을 하거나 소소하게 친구들과 줌파티를 즐기면서 말이다.


... 정말 대단한 민족이 아닐 수 없다.


코로나 위기를 마주한 지금, 우리의 '슬기로운' 방콕 생활을 한국 오락 문화의 가장 큰 기둥이라 할 수 있는 '방' 문화로 재해석해보면 어떨까?




한국 도시는 온갖 종류의 방으로 뒤덮여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노래방부터 시작하여 PC방, 만화방, 룸카페, 그리고 방에 들어가는 걸로 모자라 방을 탈출하는 방탈출 카페까지(...) 다양한 테마 방-카페는 우리 유흥 문화를 책임져 왔다. 가족들과 사적인 공간을 공유해야 하는 많은 이들은 잠깐의 일탈과 휴식을 위해 친구들 또는 연인들과 '방'을 찾아 나서곤 했다. 보수적인 한국 사회에서 결혼 전 출가는 흔하지 않으므로 (또 결혼을 해도 자신만의 '방'은 쉽게 생기지 않으므로) 이런 '방'이 한국인의 여가에 큰 부분을 차지하게 된 것은 자연스러운 결과다.


신촌 어딘가에 있는 만화 '방'은 어릴 적 베개와 이불로 동굴을 만들면서 놀았던 이들에게 아늑함을 선사한다.


물론 이런 '방'은 절대 나만의 공간이 될 수 없다. 하지만 시간당 사용 요금이나 공간 대여 명목으로 강매당한 커피의 (불합리한) 가격만큼 그 공간과 분위기는 잠시나마 내 것이 된다. 친구들과 수다를 떨거나 게임을 하고 연인과 사랑을 나누거나 싸우는 등 사적인 일상을 이런 대여 공간에서 보내는 것은 우리에게 전혀 어색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공과 사를 구분하는 공간의 경계가 이미 모호한 한국에서 코로나로 인한 방콕 생활이 비교적 잘 받아들여진 것은 어쩌면 놀라운 일이 아닐 지 모른다.


어딘가 가정집 같은 느낌이 드는 '방'이나, 조금 수상한 구석이 있는 '룸'이 내뿜는 미묘한 올드함은 몇 년 전부터 '카페'로 대체되어 가고 있다. 이런 공간의 보편적인 외관도 유행에 따라 바뀌고 있는데, 예전엔 아늑함을 강조하여 쿠션이나 인형, 천막이 자주 사용되었다면 이제는 편안함과 '힙'함의 교묘한 균형이 중요해지고 있다. 그래서 요즘 많은 카페는 마감이 안된 하얀 벽과 하얀 식탁보, 식물, 그리고 비싼 디자이너 브랜드 의자를 흉내낸 짝퉁 의자로 꾸며져 있는 경우가 많다.


재미있게도 이와 동시에 카페와 비슷하게 개인 방을 꾸미는 것도 유행하고 있다. 'K-방'으로 주변 나라 젊은이들에게도 소소한 인기를 얻고 있는 카페 느낌 인테리어는 내 방 같으면서도 카페 같은, IKEA 카탈로그에서 볼 법한 감성 가득한 공간을 만들어 낸다. 우리의 개인 방도 도시의 '방'처럼 카페로 변해가고 있는 것이다.


서울 어딘가 숨어져 있는 힙스터 카페일까 경기도 어느 힙스터 워너비의 방일까?


가족을 피해 카페에서 시간을 보내던 사람들이 코로나로 카페를 가지 못하게 되자 카페를 집으로 가져오는(!) 창의적인 방법으로 방과 집, 더 나아가 카페라는 공간을 재해석하고 있다. 온몸으로 부딪쳐 자유를 쟁취하기 보다는 앞에서는 말을 잘 듣고 나서 뒤에서는 들키지 않고 놀 궁리를 해온 자랑스러운 내 세대가 얻은 뜻하지 않은 승리라고 본다 (만세).


코로나로 갑작스럽게 달라진 우리 일상으로 도시와 집, 사회와 가정이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거짓 정보와 갈팡질팡하는 정부의 지침 사이에서 많은 사람들이 혼란스러운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커피를 백만 번 휘젓거나 에너지 넘치는 유튜브 스타를 따라 복근 운동을 하며 사부작거리는 동안 만큼은 예전의 평범한 일상으로 잠시나마 돌아간 것 같아 작은 위안이 된다. 우리가 또 어떤 새로운 놀이로 현 코로나 시대와 다가오는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살아갈 것인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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