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새 모기 한 마리가 귓가를 맴돌았다. 알람이 울기 전에 깼지만, 여전히 눈꺼풀은 무겁고 눈은 뜨여지지 않았다. 기말고사를 치르는 아들에게 넉넉하진 않지만, 아침을 차려줄 의무가 있다. 꾸역꾸역 몸을 일으켰다. 된장국을 데우고, 사과를 반 조각 깎았다. 계란 프라이를 해서 참기름, 깨소금, 그리고 간장을 조금 넣어 계란밥을 했다. 갑자기 배가 아팠다. 아들에게 상을 들고 가라고 하고서는 급히 변소로 달렸다.
신문을 펼치니 이런저런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다. 어제는 123의 1년이라 다시 그 순간을 되새겼다. 말도 아니 상상도 안 되는 어처구니없는 그런 장면에 헛웃음이 났다. 내가 살고 있는 지금은 도대체 어디인지, 그리고 언제인지 말이다. 지구가 온통 쌈박질로 넘치고 있다곤 하지만, 그래도 이건 아니지 않다 싶었다. 신문에도 그런 시민들의 이야기. 그런 정치인들의 이야기가 있었다.
지난밤? 아니 지난 저녁에 동네에서 안타까운 소식이 들렸다. 학부모 단체 모임에 갔는데, 그 자리에서 카톡으로 속보를 받았다. 우리 동네라 더 살폈다. 자세한 사건 경위는 더 알아봐야겠지만, 세상이 참 나빠지긴 했다. 나도 유년기 참 나쁜 짓을 많이 했다. 그래도 다들 보듬어주면서 바로 자랄 수 있게 지도했다. 나 역시 그 잘못을 뉘우치고 살아가면서 조금씩 그나마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 여전히 진행형이긴 하지만 말이다.
아들을 학교에 태워줬다. 고2이나 되는 되는 녀석을 굳이 태워주지 않아도 되지만, 아들과 만나는 시간이 녹녹치 않으니, 아침 한 5분의 시간이 소중하긴 하다. 그 짧은 시간이 거의 유일한 대화 시간이니 말이다. 나도 그랬나 싶다. 하긴 긴 자취 생활에 대화 상대라곤 친구들 밖에 없었으니, 사람 좋아하는 내가 늘 밖으로 돌았던 건 아마 그 때문이었으리라. 지금 돌아보면, 혼자서 즐기는 이런 시간이 정말 좋은데도 말이다.
날씨가 갑자기 차가워졌다. 강원도 인제에서 군 생활하는 큰아들이 생각난다. 하긴 나도 강원도 화천에서 이 추위에 혹한기를 3번 나갔으니, 나름 추운 동네의 습성을 알기에 아들 생각이 더 나는 지도 모르겠다. 아내가 사준 바지가 너무 길어서 단을 줄이러 세탁소에 들렀다. 옷을 맡기는데 참 처량하다. 언제나 바짓단을 줄여야 하는 슬픈 신체 구조가 말이다. 집에 와서 교도소 수업 준비를 잠시 했다. 점심때는 국수나 한 그릇 먹고 수업을 가야겠다. 교도소-우체국-경문선관위-라온-진해중앙시장. 오늘의 일과는 이것으로 끝이다. 물론 일이 끝나고 나면 나머지 결과 보고 서류는 언제나 새로운 일거리로 온다. 그게 제일 힘든 점이다.
그래도 잠시 앉아서 이렇게 오늘을 살펴보는 여유를 즐기는 이 여유가 최고긴 하다. 바지를 맡긴 지 한 시간이 지나면 다시 가야지. 오늘은 조금 따뜻한 바지를, 나름 정장 바지처럼 보이는 옷을 입고 갈 수 있겠다. 때와 장소와 상황에 맞는 옷차림을 한다는 것이 쉽지 않다. 자유롭게 입다가 격식을 갖추는 건 쉽지만은 않다. 그래도 세상에 섞여 살려면 그래야지. 아니 산이나 바다에서 살아도 그에 맞는 옷이 필요한데. 우리는 그렇게 세상에 맞게 옷을 맞춰 입고 살아야 하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