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말글손 Oct 23. 2024

공생과 경쟁

경남도민일보 아침을 열며 칼럼

공생과 경쟁     

최선(最善)의 선택과 행위의 결과를 수용하는 사회

불편한 경쟁을 위한 공생보다 공생을 위한 정당한 경쟁을


  “한국에서 노벨문학상 수상자가 나왔습니다.” 온라인과 지면을 덮은 한강 작가의 노벨상 수상 소식. 세계가 떠들썩하다. “부럽다”라는 말은 솔직하고, “정말 축하하고, 자랑스럽다”라는 말은 어울린다. 스웨덴 한림원(깃털로 만든 붓의 숲)에서 행복한 소식을 전해주어 참 기분 좋은 가을이다. 그렇게 가을이 익어간다. 모든 것은 변한다고 하지만, 과거에 비해 사계절의 맛이 초라하다. 기후 재난이 눈앞에 온 듯하다. 인간의 이기적인 경제 성장 욕망이 만들어낸 사계절의 맛이 씁쓸하기까지 하다. 

  그 와중에도 차고 넘치는 가을 행사 소식에 천지가 난리이다. 가야만 하는 곳과 가고 싶은 곳이 일치하지 않으니 속상하다. ‘이러한 일상의 놀이조차 결정해야 하나?’ 하는 생각에 심경이 복잡하다. 그럴진데, 생존을 위해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하고, 행동해야 할까? 최선(最善)의 선택과 집중, 그리고 선택의 결과를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한다고 배웠는데, 그따위 도덕과 윤리는 개밥그릇에 떨어지고 말았다. 공생을 위한 정당한 경쟁이 아닌, 경쟁을 위한 불편한 공생이 만연한 세상이 되고 만듯하다.

  진화론자들은 하나의 개체가 집단을 위해 희생하는 집단 선택설과 각 개체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 집단의 이익은 신경 쓰지 않는 이기적 존재인 개체 선택설을 주장하며 인간은 어떤 존재인가를 고민했다. 경쟁이 나쁜 것만은 아니라고 본다. 그렇다고 공생이 무조건 우선시 되어서도 안 된다고 생각한다. 공생은 협력과 공존을 촉진하고, 경쟁은 자원의 효율적 배분과 진화의 기틀을 마련하기 때문이다. 생명은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해 선택을 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선택은 반드시 결과를 가져온다. 이 과정에서 우리는 공생을 위한 정당한 경쟁을 하거나, 경쟁을 위한 불편한 공생을 하게 된다. 그리고 도덕적 동기와 윤리적 행위의 결과를 이기적이거나 이타적이라고 판단한다. 그 판단 역시 개체의 선택이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이미 복잡하고, 갈수록 더욱 복잡해진다. 수많은 연결망은 우리의 관계를 더욱 복잡하게 한다. 자연히 생존을 위한 경쟁도 치열해지고 있다. 경쟁에서 도태되면 부족한 사람이 되고 만다. 자신만의 길을 가라고, 이웃과 함께 살아가라고 가르치고, 배우면서도 정작 현실은 인기 있는 길, 돈 되는 길을 선택하고, 이웃보다 잘나야 한다고 암묵적으로 강요하고 있다. 그사이에 세대 갈등, 계층 갈등은 심해지고, 교육계의 갈등, 노사갈등, 지역 갈등, 정치 갈등은 갈수록 심해진다. 개인의 심리적 갈등이야 그렇다손 치더라도 국가 간의 갈등도 갈수록 치열해진다. 경쟁만을 위한 공생이 기생(寄生)의 형태로 나오기도 한다.

  하나의 현상에 익숙해지면 그 현상을 당연하게 여기게 된다. 이제라도 익숙한 낯섦을 찾아봐야 한다. 공생을 위한 도덕적 경쟁은 지속 가능한 성장을 이끄는 윤리적 결과를 낳을 것이다. 경쟁만을 위한 공생은 편협한 선택과 졸렬한 행위로 귀결될 것이다. 우리는 경쟁을 위한 공생을 할 것인가, 아니면 공생을 위한 경쟁을 할 것인가 스스로 자문해야 할 일이다. 오늘도 나 스스로 어떤 마음으로 어떻게 행동했는가를 돌아보지만, 늘 결과를 아쉬워하며 과정을 되씹어본다. ‘내일도 같은 일을 반복하겠지’ 하면서.

 필자가 생각하는 도덕과 윤리

*도덕 : 마음속에 이는 신념이나 관념(초등학교에서 배운다)

*윤리 : 행위를 할 때 지켜야 할 규범(고등학교에서 배운다)

매거진의 이전글 탱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