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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화 -"어쩌든지 요양원은 가지 말자"라고?

엄마와의 마지막 순간들: 돌이킬 수 없는 후회와 배움

by 김원자 Dec 14. 2024

내가 어머니 간병을 위해 하던 일을 접고 어머니 집으로 합류하게 된 것은, 어머니가 고관절 수술을 받은 후로도 한참 지난 뒤의 일이었다. 

그동안 재가복지센터의 지원으로 가정요양보호사가 하루 시간 정도 어머니를 돌보아 주셨다. 아침 식사 후에 와서 설거지 등을 도와주고 점심을 챙겨놓고 퇴근하셨던 것 같다. 그러나 수술 이후 근육 단련이나 재활 운동은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했다고 들었다.


어느 날, 손위 오빠와 올케로부터 전화가 왔다. 어머니가 이상하다는 것이었다. 전자레인지에 음식을 넣어둔 채 외출하신 뒤, 온 집안에 연기가 가득 차고 소방서까지 출동하는 난리가 났다는 소식이었다. 그 순간, 나는 직감적으로 알았다. ‘아, 이제 더 이상 홀로 지낼 수 있는 상태가 아니구나.’


어머니는 밤 시간에도 종종 두려움을 호소하셨다. 그래서 밤에만 함께 지내는 요양보호사가 따로 있었는데 그 비용 역시 만만치 않았다. 처음에는 어머니를 돌본다는 것이 나에게 큰 부담으로 다가왔다. 이미 건강이 좋지 않은 어머니를 온전히 돌볼 수 있을지 두려웠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이 마지막 시간인데, 누군가는 곁에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어머니가 어린 시절 우리를 돌봐주셨던 모습도 잊을 수 없었다. 더 이상 망설일 여유가 없었다.


나는 결국 하던 일을 접고 어머니 곁으로 왔다. 이 결정은 단순한 책임 이상의 의미를 담고 있었다. 어머니의 마지막 순간을 사랑으로 함께 하고 싶다는 소망에서 비롯된 것이었고 어린 시절 어머니께 받았던 사랑을 떠올리며, 지금이 그 사랑을 되돌릴 때임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가족과 사회가 협력하여 노인 돌봄의 가치를 높이는 미래를...가족과 사회가 협력하여 노인 돌봄의 가치를 높이는 미래를...


어머니는 경로당에서 친구들과 자주 #“우리 어쩌든지 요양원에는 가지 맙시다”라고 말씀하셨다고 한다, 

그 말속에는 깊은 정서와 시대적 맥락이 담겨 있었다. 어머니 세대는 평생 자립심과 책임감을 가지고 살아오셨다. 요양원으로 간다는 것은 자신이 쌓아온 독립성과 존엄을 잃는 일로 느껴질 수 있었다.

 또한 요양원에서의 생활은 가족과 떨어진다는 것을 의미하기에, 이는 어머니 세대에게 큰 두려움이자 외로움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고령 노인이나 환자를 돌보는 일은 단순한 간병 이상의 깊은 헌신이 요구된다. 누군가는 해야 할 이 역할에서 나는 망설였지만 한편 적임자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결국 요양보호센터에 나가 등록을 하고, 그동안 맡아주었던 다른 요양보호사를 보내드렸다. 어머니는 내가 옆에 있으니 한결 편안해 보이셨다. 

어린 시절, 나를 큰 품으로 안아주시던 어머니를 떠올리며, 이제는 내가 어머니의 손을 잡아드려야 할 때임을 깨달았다.


 전통적인 유교적 가치관이 강했던 한국 사회에서, 부모를 모시는 것은 자식의 당연한 도리로 여겨져 왔다. 그러나 이는 자식들이 요양원으로 부모를 보낼 수밖에 없는 현대의 가족구성원 해체와 얽혀 자주 충돌하는 부분이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그런 어르신들의 소망을 이해하고,  뜻을 존중하며, 현실적이고 정서적인 최선의 선택을 함께 고민해야 할 의무가 있다. 만약 요양원을 원하지 않는 마음이 분명하다면, 집에서나 가까운 환경에서 돌봄을 받을 수 있도록 체계와 자원을 마련해 드리는 것이 하나의 방법이다. 

가족으로부터 받는 정서적 유대감보다 큰 위로는 없을 것이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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