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라이킷 14 댓글 공유 작가의 글을 SNS에 공유해보세요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8화 - 작은 신호, 큰 후회

엄마와의 마지막 순간들: 돌이킬 수 없는 후회와 배움

by 김원자 Dec 18. 2024


고령 노인의 치아, 청력, 시력 상실은 단순히 감각의 문제가 아니다. 이는 신체적, 정신적 건강에도 깊이 영향을 미친다. 나의 어머니는 정확히 어느때부터인지 모르게 한쪽 청력을 잃으셨고, 황반변성으로 왼쪽 시력을 잃으셨다. 치아는 거의 다 상해 결국 틀니를 하셔야 했다. 손자 손녀 돌보기를 끝내고 혼자서 독립해서 사시는 동안에 일어난 일이다. 

자녀들이 어머니의 건강관리에 결코 소홀했던 것은 아니다. 주치의를 두어 정기적인 진찰을 했고, 장기나 혈관과 관련된 중요한 병증들은 끊임없이 체크를 했다. 그런데 정작 감각기관의 문제를 놓쳤던 것 같다. 왜 이런 실수를 했을까? 어머니는 왜 불편을 참고 시력 청력치료를 받지 않으셨을까?


 어머니 세대들은 어지간한 불편을 참아내며 사시는게 당연시 되었다. 스스로를 돌볼 여유가 없으셨고, 자식들에게 짐이 되고 싶지 않으신 것이 이유라면 이유다. 우리는 어머니의 그런 마음을 제대로 헤아리지 못했다. 작은 신호들을 놓쳤고, 더 빨리 손을 내밀지 못했다. 돌이켜보면 어머니의 불편함은 단순한 신체적 고통에 그치지 않았다. 감각기관의 약화는 어머니의 일상과 정서에도 깊은 흔적을 남겼다.  

어머니는 청력이 약화된 후로 여럿이 모이는 장소에 가기를 거부하셨다. 경로당에도 어느때부터인가 발을 끊으셨다. 여럿이 함께 어울리는 상황에서 들리지 않는 대화가 부담스러웠을 것이다. 시력도 마찬가지였다. TV에서 좋아하시던 야구 경기를 더 이상 보지 않으셨던 이유가 약화된 시력때문이 아니었을까 이제야 깨닫는다.


이런 아쉬움은 나만의 이야기가 아닐 것이다. 많은 이들이 부모님의 감각기관 건강을 간과하며 살아간다. 하지만 부모님의 감각기관 건강은 그분들의 삶의 질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친다. 이 작은 변화들이야말로 노년의 삶을 크게 좌우한다는 사실을, 나는 어머니를 떠나보낸 뒤에야 깨달았다.


어머니의 경험을 통해, 자식으로서 우리가 어떻게 부모님을 더 잘 돌볼 수 있을지 고민하게 되었다.

첫째, 정기적인 건강 점검이 필수적이다. 치아, 청력, 시력 같은 감각기관은 시간이 지날수록 자연스럽게 약화되기 쉽다. 정기적으로 검진을 챙기고, 문제를 조기에 발견해 치료할 기회를 놓치지 않아야 한다.

둘째, 불편함을 털어놓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부모님 세대는 대개 자식들에게 짐이 되고 싶지 않아 불편을 숨기곤 한다. 

“불편하시면 꼭 말씀해 주세요. 도울 수 있는 기회를 주세요”라는 메시지를 꾸준히 전하며, 자연스럽게 대화를 나눌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

셋째, 작은 신호를 놓치지 않는 세심함이 필요하다. 부모님이 음식을 남기거나 텔레비전 볼륨을 과도하게 높이는 작은 변화들이 건강 문제의 신호일 수 있다. 일상 속에서 부모님의 표정, 행동, 말투를 유심히 살펴야 한다.

감각기관 문제로 인한 심리적 고립감을 줄이는 노력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어머니가 야구 경기를 즐기시던 시절로 돌아갈 수 없었지만, 다른 즐거움을 찾는 데 도움을 드렸다면 조금 더 밝은 일상을 보내셨을 것이다. 자식으로서 어머니의 마음을 편안하게 만들어 드릴 방법을 고민했어야 했다.


우리 사회가 점점 고령화됨에 따라, 부모를 돌보는 일은 더 이상 개별 가족의 책임만이 아니다. 돌봄 노동이 사회적 가치를 인정받아야 하며, 요양보호사들이 자긍심을 가지고 일할 수 있는 환경조성도 필요하다.

어머니의 경험은 나에게 단순한 후회만을 남기지 않았다. 노인을 돌보는 데 있어 가족과 사회 모두가 함께 노력해야 함을 깊이 깨닫게 해 주었다. 돌봄은 사랑이다. 그러나 그 사랑이 오래 지속되려면 혼자가 아니라, 함께해야 한다.

어머니의 작은 신호를 놓친 그날들의 후회를 통해 나는 지금, 더 나은 돌봄의 길을 배우고 있다.

작가의 이전글 7화 - 사라진 기억, 놓쳐버린 만남

브런치 로그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