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요양보호사의 일정은 방문활동이 아니고 함께 거주하는 가족의 일상을 돌보는 일이기에 출퇴근이 없다. 현관문 앞에 설치된 전자체크기에 시작시간을 체크하고 주어진 시간 범위에서 부족하지 않게 끝나는 시간을 체크하면 사무적으로는 하루 일정이 마무리된다. 그리고 주 1회 환자의 건강상태와 특이한 변화를 기록해 요양센터에 보고하는 일이 있다. 공식적으로는 이게 다지만 그 사이에 일어나는 일, 이뤄져야 할 일은 천태 만상이다. 요양보호사는 원칙적으로 의료행위는 할 수 없지만 식사를 만들어 제공하고 치우는 일, 급한 심부름이나 은행일을 보는 것도 활동에 포함된다. 목욕서비스가 따로 제공되지 않는다면 목욕이나 마사지 등 신체 돌봄도 함께 이뤄져야 한다. 함께 사는 가족요양은 이것이 일상으로 이뤄진다는 것이다.
10여 년 전, 나는 친구로부터 노인요양보호사 제도에 대해 듣고, 노령화 시대를 맞은 우리 사회에 꼭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자격증을 따기 위해 한 달간 이론교육을 받고 실습에 나섰다. 그 과정에서 가족 돌봄을 받지 못하는 시설 어르신들의 삶을 처음으로 접하며 큰 충격을 받았다. 언젠가 우리 모두가 겪을 일이기에, 나는 실습에 무척 몰입해서 임했던 기억이 난다. 그때 깨달은 것은, 고령 노인을 돌보는 일은 단순한 직업의식만으로는 부족하며, 헌신과 노력, 그리고 깊은 공감이 필요하다는 점이었다.
노인 돌봄은 단순히 신체적 케어를 넘어, 인간적 연결과 공감을 바탕으로 한 심리적 지원과 치매 관리, 그리고 노인성 질환에 대한 전문 지식이 요구되었다. 무엇보다 돌봄 대상자가 단순히 도움을 받는 존재가 아니라, 한평생 독립적으로 삶을 살아온 사람임을 이해하는 태도가 중요하다. 이를 위해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공감하는 시간이 필요하지만, 현실은 부족한 점이 매우 많다. 혼자 살기 어려운 세상에서 서로 돕고 함께 살아가는 사회만이 지속 가능하다고 믿기에, 요양보호 제도가 제대로 정착되어야 한다는 확신을 갖는다.
언젠가 일본의 노인 홈케어 현장을 방문하면서 깊은 인상을 받은 적이 있었다. 당시 일본은 집단시설 중심의 요양에서 벗어나, 10명 이하의 노인을 가정집을 개조한 공간에서 돌보는 소규모 시스템으로 전환 중이었다. 한 할아버지가 자신의 서재에서 가져온 책과 물건들로 꾸민 방에서 생활하는 모습은 매우 인상적이었다. 이는 단순히 공간을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개인의 기억과 정체성을 존중하는 맞춤형 케어의 대표적 사례로 평가받을 만했다.
일본의 커뮤니티 케어 사례
일본은 2000년대 초반부터 노인들이 익숙한 환경에서 자율성을 유지하며 살아가도록 지원하는 커뮤니티 케어(community care) 철학을 채택했다. 대규모 요양시설 대신 지역사회 내 소규모 그룹 돌봄으로 전환하며, 맞춤형 노인복지가 정착될 수 있도록 정책적·행정적 지원을 강화했다.
대표적으로, 10명 이하의 치매 환자나 노인을 대상으로 하는 '그룹 홈(group home)'은 가정적인 환경에서 돌봄을 제공하며 일상의 연속성을 보장한다. 노인들이 자신의 물건을 가져와 집처럼 꾸민 공간에서 생활하도록 설계되어, 심리적 안정과 정서적 만족을 높이는 효과를 보여준다. ‘생애 주기별 사회보장’을 통해 노인의 사회적 연대와 자아 존중감을 강화하는 정책을 시행했으며 북유럽 국가들 역시 개인화된 돌봄 서비스를 통해 노인의 일상을 존중하고, 그들의 경험과 지혜를 사회에 환원하는 시스템을 구축했다.
우리나라에 적용 가능한 모델
우리나라도 일본의 사례를 참고해 소규모 가정형 돌봄 시스템을 도입할 수 있다. 이를 위해 시범적으로 작은 돌봄 시설을 운영하고 성과를 분석해 전국적으로 확산할 수 있는 모델을 개발하는 것이 중요하다. 대규모 요양원 중심에서 벗어나 소규모 그룹 홈이나 가정 개조형 시설을 확대하려면,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정책적 지원과 사회적 인식 전환이 필수적이다.
노인의 개인 공간에 대한 존중과 맞춤형 서비스 제공은 돌봄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여는 핵심이다. 이러한 변화는 노인의 삶의 질을 높이고 가족의 부담을 줄이는 데 크게 기여할 것이다.
요양시설이 단순한 관리 공간을 넘어 어르신들이 꿈꾸는 따뜻한 쉼터로 자리 잡기 위해서는, 요양보호사들의 근로 환경 개선과 처우 향상이 필수적이다. 나아가, 노인의 삶은 끝까지 존중받아야 한다는 철학적 신념이 바탕이 되어야 한다. 이는 단지 돌봄을 넘어, 노인의 존엄성을 지키고 삶의 질을 향상하는 사회적 책임이자 의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