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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화 - 나이는 숫자에 불과해!

엄마와의 마지막 순간들: 돌이킬 수 없는 후회와 배움

by 김원자 Dec 22. 2024

어머니는 꽤 오랫동안 아파트 경로당의 부회장이셨다. 연세가 많아 자연스럽게 맡게 되었는지, 오랜 세월 곳에 살며 이웃들과 가까워진 덕분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어머니는 작은 직책을 무척 자랑스러워하셨다.

"우리 아파트 경로당이 제일 씩씩해"

“우리 경로당회장님은 참 훌륭하셔. 뭐 하나 부족한 게 없으셔.”

그렇게 말씀하시며, 종종 회장님과 친구들을 집으로 초대해 음식을 대접하곤 하셨다.

오래전 아버지와 사별하고 자식들 뒷바라지에 평생을 바치셨던 어머니였다. 친구를 사귀는 일도, 이웃과 교류하는 일도 어려울줄 알았는데 경로당을 통해 연세가 드셔서도 오히려  활발하게 성격이 바뀌고,  자연스레 젊은 회원들과도  섞여 지내는 모습이 대단하게 느껴졌다.

브런치 글 이미지 1

어머니는 경로당의 회장님을 진심으로 존경하셨다. 그러나 그 회장님이 먼저 세상을 떠난 날,  몹시 쓸쓸해하던 모습이 생각난다. 친구란 서로의 거울 같은 것.  노년기의 친구란 함께할 날이 길지 않다는 것 때문에 더욱 소중한지도 모른다. 친구란 서로를 응원하며 정을 나누는 빛나는 존재라는 것을, 머니의 사회생활을 보며 느꼈다.


경로당에서는 어머니를 모두 “큰 형님”이라 부르며 따랐다. 그 소리를 들을 때마다 어머니는 웃으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나처럼만 살면 돼. 자네도 오래오래 살 거야.”

장수의 비결이 무엇일까? 어머니의 삶 속에서 그 답을 찾으려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식습관이었다. 어머니는 과식을 하지 않으셨다. 채소를 즐기고, 소박한 음식을 기쁘게 드셨다. 젊은 시절 병약하셨던 어머니는 나이가 들수록 더 건강해지셨다. 그리고 늘 당당하게 말씀하셨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해.”

그 말이 주는 묘한 기운에 웃음이 터졌던 기억이 난다. 마지막 순간까지 당당하셨던 어머니, 그 말 속에는 나이에 대한 두려움을 이겨낸 마음가짐이 담겨 있었으리라.


어머니의 소식은 단순히 음식을 덜 먹는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삶의 태도였다. 과하지 않게, 소박하게 살아가는 방법이었다. 그것이 어머니가 남겨준 삶의 지혜였다. 나이를 먹는 것은 단순히 시간이 지나감을 의미하지 않는다. 무엇을 먹었는지, 어떤 마음으로 하루를 살았는지가 쌓이고 쌓여 결국 나이를 만든다.

어머니는 마지막까지도 이렇게 가르쳐주신다. 나이를 두려워하지 말라고. 숫자에 불과하다고. 그 숫자가 더없이 빛날 수 있도록, 하루하루를 어머니처럼 소박하고 담백하게 살아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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