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어머니께서 의식이 남아 계실 때의 일이다. 어머니의 침대 식사판 위에서 쑥을 다듬고 있었다. 3월이 되어 아파트 주변 나무 밑 여기저기에서 새파란 쑥잎들이 올라왔고, 나는 별다른 생각 없이 그걸 뜯어와 다듬고 있었던 것이다. 잠이 드셨다고 생각했던 어머니가 갑자기 눈을 뜨셨다. 어머니는 잠시 나를 바라보시더니 쑥을 들여다보셨다. “웬 쑥인가?” 하는 듯한 표정으로 한참을 보시더니, 손을 들어 쑥을 한 움큼 잡으셨다. 그러고는 그것을 코 앞에 가져가 한참 동안 지그시 생각에 잠기신 듯했다.
“이게 쑥이야. 알겠어?”
어머니는 고개를 끄덕이셨다. 왜 쑥을 모르시겠는가. 어머니가 젊은 시절을 보낸 고향 마을에선 봄이면 온 들판, 밭과 논둑에 쑥이 지천이었다. 어머니는 그 쑥을 캐다가 삶고, 말려서 식구들과 함께 음식을 만들어 드셨던 추억을 떠올리셨을 것이다. 어머니의 표정 속에는 그런 기억이 고스란히 스며 있었다. 잠시 후, 어머니는 손을 놓고 천천히 눈을 감으셨다. 나는 어머니가 아마도 젊은 시절, 동네 여인들과 어울려 노동과 삶의 중심에 머물던 그 황홀했던 순간들을 떠올렸을 거라고 믿는다.
그 무렵, 아파트 주위에는 벚꽃이 만개하기 시작했다. 어머니가 사시던 아파트에는 유난히도 오래된 벚나무가 많아 봄이면 벚꽃이 장관을 이루었다. “어디 멀리 갈 필요 있냐? 우리 동네 벚꽃이 최고지.” 어머니는 늘 자랑스럽게 말씀하시곤 했다. 벚꽃이 만개한 날, 나는 어머니 침대 곁에 벚꽃가지를 가져다 놓았다.
그것이 어머니께서 생애 마지막으로 보실 벚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마음이 아팠다. 하지만 이 벚꽃이 어머니 마음 깊숙이 스며들어 따뜻한 기억으로 남기를 간절히 바랐다.
사람은 죽으면 무엇을 가지고 떠나는 걸까?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코로 맡으며 느꼈던 모든 사랑스러운 기억과 추억을 정말 다 놓고 가야만 하는 걸까? 나는 그것을 믿고 싶지 않았다.
어머니와의 마지막 시간 동안 내가 후회하지 않는 것이 하나 있다면, 그것은 어머니께 작은 일이라도 많이 하게 했던 일이다.
마늘을 깔 때면 어머니에게 하나라도 까 달라고 졸랐고, 멸치 속을 분리할 때도 어머니 손을 빌렸다. 시장에서 나물을 사 올 때마다 다듬어 달라고 부탁했고, 가끔은 예쁜 조약돌을 가져와 공기놀이를 권하기도 했다.
어머니는 그 작은 일들 속에서 미소를 띠셨고, 나는 그런 어머니를 보며 마음 한구석이 따뜻해지는 것을 느꼈다. 먼 나라로 떠나야 할 어머니가 그곳에서 공깃돌을 가지고 놀 수는 없을지라도, 마지막 순간 기억 속에 남은 그 작은 행복들이 어머니를 미소 짓게 해 주길 바랐다.
가끔 쑥향기가 어머니를 떠올리게 한다. 고향의 따뜻한 봄날을 떠올리며 쑥을 다듬던 어머니의 손길이, 나를 감싸 안는 듯하다. 어머니는 몸은 떠났지만, 쑥향기와 벚꽃향으로 내 삶에 오래도록 머물러 계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