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의 장례식은 조용히 병원 장례식장에서 치러졌다. 몸이 불편해 몇 년간 참석은 못했지만 어머니는 생애 마지막 30년 동안 천주교 신자로 살았기에 신부님을 초청해 가톨릭 장례미사를 봉헌했다. 정중하고 무게감 있게, 삶의 완결성을 담아드리고자 한 것이다. 장례식 내내 오랫동안 다니셨던 성당의 연도회 회원들이 번갈아 가며 기도를 해주었고 성가를 불러주셨다. 아마도 우리가 마지막으로 해드릴 수 있는 가장 잘한 일이었을 것이다.
슬픔에 파묻혀 있던 그때, 한 친구가 페이스북에 이런 글을 올려 나를 위로해 주었다.
“친구의 102세 모친이 마침내 영면에 드셨습니다. 8남매를 두셨기에 장례식이 번잡하리라 여겨 우리는 지난달에 마지막 인사를 다녀왔습니다. 어머니는 모든 수분을 몸에서 배출해 내며 생을 다 태우고, 촛불이 꺼지듯 고통 없이 떠나셨다고 들었습니다. 천수를 누린 호상이라 하지만, 자식에게는 언제나 이별이 큰 슬픔일 뿐이지요. 친구는 오랫동안 어머니를 정성껏 돌봤습니다. 몇 번의 위급한 고비를 넘기며, 밤낮으로 간병에 힘썼습니다. 우리는 농담처럼 말했죠.
"너는 어머니가 돌아가셔야 비로소 자유로워질 거야."
"망자는 떠나셨지만 산 사람은 또 살아가야 해. 무덤 위의 지초처럼. 얼음이 녹아 물이 되고, 물이 다시 얼음이 되듯, 생사란 돌고 도는 것이니까."
어머니를 떠나보내고 돌아오는 길, 온 산야에는 꽃이 만발해 있었다. 그 꽃들은 모두 사라지고 이제 산에는 앙상한 가지들만 남아있다. 여기저기 하얀 눈으로 덮여있다. 그런데 이 추운 날, 햇빛이 비추는 따뜻한 베란다 화분에서는 시도 때도 없이 꽃이 피어난다. 어머니가 아끼던 화분들이다.
야래향. 밤에만 피는 꽃. 어머니가 길러온 야래향 꽃 피었다. 베란다 가득 아찔한 향기 퍼진다. 어젯밤 다녀가셨나?
어머니가 사랑하시던 연분홍 나리꽃도 피었다. 여름에 네 송이나 피었던 꽃이,
지금 또 한 송이 피어난다. 어머니 떠나신 집 그리워 잠깐 얼굴을 내미셨나.
사람들은 어머니가 천국에 가셨을 거라고 말한다. 그러나 천국은 너무 멀지.
어머니 손끝서 예쁜 꽃 피어나던 이곳, 마법처럼 죽은 뿌리 살아나던 이곳.
이곳이 바로 천국 아닌가.
어머니와 내가 함께했던 기억이 뒤섞여 있는 곳. 삶과 사랑이 머물렀던,
지금도 어머니의 향기가 흐르는 이곳이.
그날 이후, 열심히 오가며 연도를 추진해 주신 성당 연도회 회장님의 권유로 나는 가톨릭교리공부를 시작하게 되었다. 삶과 죽음의 문제를 풀 수 없기에 저 높으신 분의 도움을 받기로.
드디어 세례를 받는 날, 며칠사이에 피워 올린 분홍 나리꽃. 그 송이를 잘라서 나는 부케를 만들었다. 어머니가 보내 주는 축하의 꽃다발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