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와의 마지막 순간들 : 돌이킬 수 없는 후회와 배움
1923년생, 어머니의 백수를 맞이하며 우리 형제자매는 하느님께 감사의 기도를 올렸다.
곧 환갑을 맞을 막내부터 여든을 바라보는 맏딸까지, 여덟 남매를 품으셨던 어머니. 비록 인생의 중턱에서 남편을 하늘로 떠나보내셨지만, 그 이후의 시간은 한 송이 꽃처럼 어머니의 손길로 피어나던 날들이었다.
가만히 돌아보니, 지나온 세월은 마치 오래된 사진첩을 넘기는 것처럼 선명하다.
그 속에는 눈부신 햇살 아래 웃고 있는 얼굴들, 손을 맞잡고 서로를 위로하던 순간들, 그리고 아무 말 없이 곁을 지켜주던 그림자 같은 어머니의 사랑이 있었다. 때로는 아팠던 기억도 있지만, 그조차도 어머니의 품 안에서 치유받았음을 이제야 깨닫는다.
흩어져 있던 사진들을 하나로 모으며 알았다. 어머니는 우리 가족의 거대한 뿌리였다는 것을. 깊이 박힌 뿌리에서 끊임없이 올라오는 생명력이 우리의 삶을 키워왔다는 것을. 그 뿌리는 세월의 무게를 견디며 흔들림 없이 서 있었고, 우리가 자양분을 얻어 성장할 수 있도록 모든 것을 내어주셨다.
사진첩은 단지 사진들의 모음이 아니다. 그것은 한 사람의 삶과 그 삶을 관통했던 시간, 그리고 그 시간을 살아낸 영혼의 흔적들을 담아낸 한 권의 서사시다. 사진 속의 얼굴들은 단순히 과거의 이미지가 아니라, 삶의 굴곡과 감정을 품은 표정들이다.
그걸 펼칠 때마다 우리는 단지 과거를 되짚는 것이 아니라, 삶의 본질과 사랑의 의미를 다시 묻게 된다. 무엇이 우리를 이렇게 살아가게 했을까? 무엇이 우리가 서로를 붙들고, 함께 이 시간을 견디게 했을까?
사진 속 한 순간들은 지나갔지만, 그것이 품고 있는 정서는 여전히 우리 안에서 살아 숨 쉰다.
사진은 기억을 붙들어 매는 장치일 뿐 아니라, 그 기억 너머의 무언가를 상기시키는 매개체다. 한 장의 사진을 볼 때, 우리는 단지 그때의 모습을 떠올리는 것이 아니라, 그때의 온기와 향기, 그리고 삶의 깊이를 체감하게 된다. 그것은 우리가 어떤 사랑을 받고 어떤 사랑을 나누었는지에 대한 증언이다.
따라서 사진첩은 한 개인의 삶을 넘어선다. 우리가 누구였고, 어디에서 왔으며,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를 되새기게 하는 철학적 묵상의 도구이기도 하다. 우리를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로 잇는 시간의 다리이자, 삶의 영속성을 깨닫게 하는 조용한 교훈이다.
“어머니의 풍경은 곧 우리의 뿌리입니다. 그것은 가족의 중심이 되어 흐르는 시간 속에서도 변치 않는, 고요하고 견고한 사랑의 모습입니다” 이렇게 조용히 읊조려본다.
어느 날, 아직 어머니 정신이 흔들리지 않을 때 물었었다.
“어머니, 살면서 가장 즐거웠던 때가 언제였어요?”
어머니는 잠시 생각하시더니 뜻밖의 대답을 꺼내셨다. 어린 시절, 친정동네 와레기에서 보낸 이야기들이었다. 시집오기 전 살았던 그 동네 이름이 와레기였다. 이야기 속의 어머니는 낯설었다. 내가 알던 삶의 무게를 지고 묵묵히 살아오신 어머니가 아니었다. 와레기의 어린 소녀, 웃음 많고 야무진 그 소녀가 있었다.
문득 깨달았다. 어머니께도 누군가의 딸로 사랑받으며 자란 시절이 있었고, 꿈과 희망으로 가득 찬 소녀의 시간이 있었음을.
그런데, 그 어린 시절을 제외한 나머지 시간들—열아홉 어린 나이에 시집오고, 80여 년을 살아내신 긴 세월의 기억들은 어디로 간 걸까?
“너무 많아서 다 생각나질 않는다.”
어머니의 짧은 한마디가 마음 깊은 곳에 아릿하게 남았다. 수많은 날들이 기억의 먼지 속으로 가라앉고, 빛바랜 사진처럼 흐릿해져 가는 것이 삶의 이치인가 보다. 그렇게 소중했던 순간들조차 세월 속에서 조용히 사라져 가는 것이겠지. 그것이 우리가 어머니의 기억들을 한 권의 사진첩으로 담아 드리기로 했던 이유이기도 하다.
몇 장의 사진으로 어머니의 모든 삶을 담을 순 없겠지만, 한 장 한 장을 넘길 때마다 어머니의 모습이 새롭게 살아난다. 첫 딸을 품에 안고 환히 웃던 사진에서는 당신의 자부심이 빛나고, 아버지의 부재 속에서도 묵묵히 가정을 지키셨던 중년의 모습에서는 삶의 무게와 인내가 느껴진다.
그러나 나이 들어 여행을 떠나 친구와 날아가는 포즈를 취하며 환히 웃고 계신 사진 속의 어머니는 누구보다 낙천적이고 삶의 즐거움을 사랑했던 진짜 모습이었다.
그 무렵 갈수록 쇠태해지는 기억을 붙잡기 위해 나는 자주 질문을 했다. 사진을 보면서 누군가를 물었고 그때 어땠는가를 물었다. 어느 땐 신나게 기억을 더듬다가도 이내 지쳐서 입을 다물어버리는 어머니... 그러나 그대로 물러날 수는 없다. 기억상실에는 자주자주 회상시켜 주는 가족들의 도움이 가장 좋다고 하지 않던가.
그림을 그리자고 했다. 크레파스와 물감을 사고 스케치북을 가져와 어머니에게 내민다. 조금 전 얘기한 걸 그려달라고. 그렇게 해서 얻은 어머니의 크레파스 스케치 그림 8점이 있다. 왜 더 계속하지 못했는지는 아마 이후 바로 건강이 더 악화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함께 과거를 회상하려 애썼던 기억은 나에게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다. 그것은 단순한 대화 이상의 의미를 담는다. 어머니와의 유대감을 지속적으로 확인하며, 어머니의 기억을 얼마나 소중히 여기는지를 아마 본인도 느꼈으리라.
여기에 어머니의 평생의 역작그림 8점을 싣는다. 사진보다도 내게는 더 소중한 함께했던 순간의 흔적이다. 조금 남은, 마지막 혼신의 힘을 다해 기억의 줄기를 따라가며 어머니는 어릴 적 자랐던 집 주변 풍경, 뛰어놀던 뒷동산의 소나무와 그 밑동에서 피어나던 서리버섯, 그리고 친구들과 추석날 뛰던 널뛰기 풍경을 그려냈다. 그림을 배워본 적이 없는, 당연히 아이 수준의 선위주 그림이었으나 나중에는 조금씩 그림이 발전하기도 했다. 당신이 쓰던 모자와 재봉틀과 화병의 꽃, 그리고 맨 나중에 그린 꽃다발은 크레파스를 힘껏 눌러 색감을 끌어내려고 애를 썼다.
“어머니, 그때 모습은 참으로 멋졌습니다.
김설희 여사님, 당신의 모든 날들에 찬사를 보냅니다— 白壽 만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