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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화 -그리움의 기억 저편

엄마와의 마지막 순간들 : 돌이킬 수 없는 후회와 배움

by 김원자 Dec 23. 2024



어머니의 눈동자가 세상의 빛을 붙잡지 못했던 순간이 왔다. 반짝이던 눈빛은 점차 흐려졌고, 낯익던 사람들의 이름도 희미해져 갔다. 우리는 그것을 '인지 기능 저하'라 부르지만, 어쩌면 이는 살아온 긴 세월 동안 너무 많은 것을 담아 둔 기억의 궤적이 천천히 닫히는 과정이었는지도 모른다.


사람의 기억은 마치 나무의 나이테와 같다. 한 해 한 해 새겨진 경험과 사랑, 그리고 아픔이 겹겹이 쌓인다. 그러나 삶의 마지막 즈음에는 그 깊이 자리 잡은 것들만 남고, 얕게 그려진 기억들은 바람에 날리는 낙엽처럼 사라진다. 이것은 잊히는 것이 아니라, 깊은 곳으로 스며드는 일종의 귀향일 것이다.


어머니가 부축을 받으면서도 아파트 운동장을 걸으실 때, 한 걸음 한 걸음 힘겨웠을지언정 그 걸음마다 작은 기쁨이 있었다. 그러나 거동이 더 불편해지면서, 어머니는 사람들과의 거리는 물론 삶의 작은 즐거움들에서도 멀어져 갔다. 집에 계신 시간이 길어질수록, 어머니의 마음은 세상과의 연결고리를 하나둘 놓아가기 시작했다. 누워 계셨던 마지막 시간들을 떠올리면, 그것은 자연의 순리였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의 몸은 흙으로 돌아가고 기억은 먼지가 되어 바람 속에 흩어지며, 마음은 어느 따뜻한 곳으로 귀속되는 것. 그 흐름 속에서 인지의 멈춤이란 어쩌면 삶이 완결되어 가는 하나의 방식일지도 모른다.

브런치 글 이미지 1

노년에 밀어닥치는 치매나 인지 능력 상실은 여전히 의문이고 대화의 화두다. 과학자들은 수명과 인지 능력의 상관관계를 연구하며 다양한 이론을 제시해 왔다. 그중 특히 주목할 것은 기억과 학습을 담당하는 뇌의 해마(hippocampus)다. 해마는 나이가 들면서 크기가 자연스럽게 줄어들고, 이로 인해 기억력과 인지 능력도 점차 감소한다. 연구에 따르면, 해마의 건강을 유지하려면 꾸준한 신체적, 정신적 자극이 필요하다. 특히 정서적 지지와 사회적 연결이 해마의 기능에 긍정적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은 많은 연구에서 확인되고 있다.


지난 시간을 되돌아보면, 여러 가지 방법으로 그분의 인지 기능을 조금 더 지켜드릴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어머니와 함께 더 많이 대화하고, 더 많이 웃고, 더 많이 걸었다면, 조금 더 많은 날을 함께 잠을 자면서 마음을 나눴다면, 어머니의 해마를 자극할 기회가 더 많지 않았을까?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정서적 연결은 단순히 위로 이상의 것이다. 그것은 어머니의 기억 속 작은 불씨를 오래도록 지켜주는 힘이 되었을 것이다.


삶의 끝자락에서 우리는 노화와 죽음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운명이다.

운명이라는 개념은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세상 이치를 표현하는 것이며 죽음 앞에서 운명을 떠올리는 것은 두려움보다는 삶을 받아들이기 위한 준비일지도 모른다. 마지막 시간 속에서도, 어머니는 그 흐름을 온전히 수용하며 자신의 운명을 담담히 마주하신 것처럼 보였다.

기억의 깊은 곳에 스며든 사랑, 어머니가 걸으셨던 그 한 걸음 한 걸음은 결국 우리가 살아가야 할 길 위에 오래도록 남아 우리를 인도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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