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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nby Nov 17. 2024

일단은 떨어지는 가을 속으로 걷자

하늘에 나무가 걸려있다. 짙은 하늘에 별은 없고 은행나무만 노랗다. 불 켠 듯 선명한 나무를 보며 편의점으로 향했다. 지구의 건강 이상으로 나무들은 평년보다 늦게 물들었다. 웬일일까. 이렇게 포근한 가을이라니. 간절기 옷을 다 입어보지도 못하고 다시 넣을 줄 알았던 그 계절이 잘금잘금 이어지고 있다. 내심 고마우면서도 점점 한 치 앞도 모르는 채 이렇게 살아가는 게 괜찮나 싶기도 하고... 저만치 달려 나가는 걱정을 불러 세운다. 그러면 삶이란 게 언제는 예상대로 흘러간 적이 있었냐고. 흐드러진 봄꽃의 향연도 예전만치 못하다 여기던 마른 감성이 새삼 은행잎에 물들어버릴 줄도 몰랐는데. 그 고약한 은행 익는 냄새조차 내 코를 비껴갔으니 이 얼마나 절묘한 낭만인가. 편의점 선반에는 설탕에 조린 밤을 넣은 한정판 과자, 빵들이 미리 약속이라도 한 듯 모여있다. 제법 비슷한 이름, 비슷한 단풍 그림을 달고. 혹시 나만 말고 세상은 다 알았으려나 올가을이 이렇게 길 줄.


온 동네가 노란색 퍼레이드를 하고 있다. 누가 말하길 은행나무가 멸종 위기종이라고, 그 귀한 나무를 우리나라에서만 가로수로 심어서 천대하고 있다나. 나만 보아도 그렇다. 그간 눈길 한번 주지 않다가 이제야 탄복하고 있는 걸 보면. 요즘은 구태여 그 길로 걸으려고 멀리 돌아 돌아다니니 사람이란 참 유난하고 방정맞지. 나무야 너로 사는 것도 좀 쓸쓸한 일이겠다고 들리지 않을 위로를 하면서 차들이 늘어선 횡단보도를 건넌다. 어느새 길바닥에도 노란 잎이 깔리고 있다. 일단 걷고 걸으며 이 순간을 주워 담는다.


@pexe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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