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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이 Jun 12. 2020

까탈스러운 내가 좋아

세상 모든 까탈스러운 사람들을 위하여

계란을 요리할 땐 반숙이 좋아요. 
출처: pinterest


퍽퍽한 삶은 계란은 싫고, 반숙란으로 노른자가 사알짝 흐르도록 익힌 게 좋아요. 계란후라이를 한대도 마찬가지에요. 완숙으로 익힌 건 맛 없어요. 서니 사이드 업(Sunny side up), 아시죠? 노른자를 탁 터트리면 주루룩 흘러내려서 거기에 빵을 찍어 후루룩, 먹을 수 있는 정도. 딱 그정도가 맛있어요. 대신 프라이를 할 거라면 흰자는 바삭바삭하게 익혀야 해요. 흰자 부분은 약간 갈색이 될 정도로 바삭해진다 해도 괜찮아요. 타지만 않는다면. 바삭바삭한 흰자에 덜 익은 노른자 구성이 딱이에요. 빵이랑 먹을 때도 그렇고, 간장계란밥을 해먹을 때도 딱 그만큼이 최상의 궁합이죠. 아, 비빔밥을 할 때에도 꼭 반숙란을 넣어야 해요. 밥을 여러 가지 야채와 무채 등등을 넣고 비비는데, 완숙란을 넣는다고 상상해보세요. 생각만으로도 목이 턱 메이는 기분인데요. 아주 갑갑하고, 퍽퍽하고, 답답한 느낌. 완숙된 퍽퍽한 노른자라면 차라리 먹지 않는 편이 좋겠어요. 


저는 퍽퍽한 게 싫어요. 그런데 또 찐득한 것도 싫어해요. 그래서 떡을 싫어하는데, 떡을 씹을 때 찐득하게 이빨에 달라붙는 그 식감이 별로랄까요. 그리고 먹고 나면 어금니에 잔뜩 달라붙어서는, 잘 떼어지지도 않는 것 같은 그 기분이 별로에요. 떡을 꼭 먹어야 한다면 초록색 개떡, 아세요? 모싯잎을 넣고 쪄서 만든 개떡이요. 그 개떡을 평평하게 눌러서 기름을 두르고 프라이팬에 지져 내면, 겉은 엄청나게 바삭바삭하고 안의 찐득함은 최소화 되거든요. 그 떡은 맛있어요. 저는 꼭 먹어야 한다면 떡을 그렇게 지져서 꿀에 찍어 먹어요. 


출처: pinterest


비슷한 이유로 견과류도 좋아하지 않아요. 견과류의 첫맛 - 뭔가 기름 냄새가 그득한 그 첫맛 - 도 별로고, 아그작아그작 씹고 나면 어금니에 잔뜩 끼는 그 불편함도 싫어요. 우리 나라 음식엔 호두나 잣이 들어간 음식이 참 많아서 어릴 땐 반찬 투정을 한다고 자주 혼나곤 했어요. 엄마는 종종 멸치볶음을 하실 때에도 호두를 그득 넣어 찐득하면서도 딱딱한 멸치볶음을 하곤 하셨거든요. 멸치와 호두가 한데 엉겨 붙어 도저히 떨어지지 않을 정도로 꿀을 가득 넣은 멸치볶음이요. 달달한 맛에 멸치볶음 속 멸치는 좋아하곤 했지만, 호두가 들어간 건 싫어서 멸치만 쏙쏙 골라 먹다 종종 꿀밤을 맞곤 했었죠. 아 맞다, 기름 냄새가 나는 건 망고도 그런데! 생망고 말고, 말린 망고 있잖아요? 그 왜, 비닐같은 봉투에 말린 망고를 편처럼 썰어서 담아서 파는 거. 이상하게 생망고는 덜 그런데 말린 망고에서는 주유소에서 나는 기름 냄새, 가스 냄새가 나요. 제가 말하는 이 냄새를 역하게 생각하는 사람은 아직 못 만나 봤는데, 제가 아무래도 냄새에 민감해서 그런가봐요. 필리핀에 가서 한동안 일을 하면서 살았던 적이 있는데, 망고가 진짜 지천에 널려 있었음에도 저는 도저히 먹지를 못하겠더라구요. 그 냄새가 기억에서 지워지지를 않아서. 


출처: pinterest


왜요, 제가 유별난가요? 다들 예민한 거, 민감한 거 하나씩은 있지 않아요? 저도 딱 그럴 뿐인데. 


그래요, 인정할게요. 저는 좀 까탈스러운 것 같아요. 먹는 거 가지고만 예기를 했지만, 사실 제가 까탈스러운 게 어디 먹는 것 뿐이겠어요. 음식에 대해 이만큼이나 까탈스럽게 구는 제가, 다른 데에는 안 까탈스러울리가 있겠어요? 업무 결과에 대해서도 저만의 기준이 있고, 스스로에 대해서도 저만의 기준이 있죠. 누군가를 사귀고 만날 때에도 저만의 까다로운 기준이 있어서, 주변 사람들은 '너같이 생각해서 연애를 어떻게 하겠니'하고 끌끌 혀를 차기도 했어요. 


출처: pinterest
그런데 신기한 게, 사람은 굶어죽으란 법은 없는 거더라구요. 


제가 떡을 싫어하고 견과류를 싫어하고 퍽퍽한 완숙 달걀을 싫어한다고 해서 굶어죽지 않듯이, 저만의 까탈스러운 기준들을 갖고 산다고 해서 제 인생이 망하는 건 아니라는 말이죠. 오히려 신기하게 이상한 사람들이 걸러지기도 하고, 또 까탈스러운 기준 때문에 되려 이상한 사람을 만나기도 하고 - 그리고 그 때문에 또다시 까탈스러운 기준이 하나 더 추가되기도 하고. 이런 일들이 반복되고 나니 오히려 더더욱 까탈스러워진 내 자신을 발견하게 되기도 하고 - 참 신기하게도 스물이 넘어 서른이 되면서 기준이 하나하나 더 늘어간다는 느낌이랄까요. 


맞아요, 제가 사는 세상, 제가 원하는 것들이 분명해지면서 제가 만나는 사람들의 폭도 좁아지겠죠. 저는 아무래도 제 까다로운 입맛에 맞는 사람들 몇명만 내 주변에 남기게 될지도 몰라요. 그래서 누군가는 저를 싫어하고, 누군가는 저처럼 사는 걸 경멸하기도 할 수도 있겠죠. 이 글을 읽는 여러분들 중에도 누군가는 거북하고 불편하고, 제가 싫어지실 지도 모르겠어요. 


저는 그래도 자신있게 말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까탈스러우면 어때, 나는 까탈스러운 내가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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